출처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749
증거는 없어도 공안부장이 있다
김형민(SBS CNBC PD) 호수 637 승인 2019.12.06 11:43
1970년 3월, 한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지고 그의 오빠 역시 총상을 입은 사건이 벌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지검 최대현 공안부장이 사건을 맡았다. 최 검사는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에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1973년 6월18일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 (왼쪽)와 정일권 국회의장이 환담을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1970년 3월17일 밤 11시쯤 서울 마포구 절두산 근처의 어두운 밤길에서 총성이 울렸어. 차에 타고 있던 여자 한 명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절명했고 남자 하나는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었지. 죽은 여자의 이름은 정인숙. 한일회담이 열린 것으로도 유명한 요정 선운각의 호스티스였다. 그리고 총 맞은 남자는 다름 아닌 정인숙의 오빠였어.
사건을 맡게 된 경찰은 그녀 주변에 어른거리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렸다. 대한민국 최고 권부를 비롯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그야말로 은하수처럼 정인숙이라는 여성 위에서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지. 경찰은 정인숙의 행적을 살펴보다가 또 입을 벌렸어. 해외여행 한번 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던 시절, 정인숙은 복수여권으로 외국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었던 거야. 당시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은 1회 사용할 수 있는 단수여권을 주로 받았으니 복수여권 소지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었지. 이걸 주선해준 건 자그마치 국무총리실 비서관이었으며, 여기에 필요한 신원조회를 담당한 건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이었단 말이야.
대체 이런 정인숙이 왜 죽었고 범인은 누구인가.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정인숙과 관련된 인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진 가운데,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이 있었어. 다름 아닌 국무총리 정일권이었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회고를 들어볼까. “정인숙 사건이 난 뒤 청와대에 올라갔더니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도 정일권이 다녀갔다’고 했다. 정 총리는 자초지종 죽은 여자와의 관계를 실토하고 ‘각하, 살려주십시오’라고 호소하더라는 것이다(〈중앙일보〉 2015년 7월24일).” 정인숙의 남자관계 가운데에서도 정일권 총리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얘기지. 여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대응한다. “일국의 총리가 여자 스캔들 때문에 수사를 받으면 나라가 얼마나 상처를 받겠나. 국격(國格)이 걸린 문제야.” 박 대통령은 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담아. “서울지검 최대현 공안부장한테 보안 사건으로 취급하라고 지시했어.” 나왔다. 오늘의 주인공 최대현 검사.
원래 살인사건 수사는 형사부 검사의 영역이야. 박정희 대통령은 굳이 공안부장에게 이 사건을 맡겼고 공안부장 최대현은 그 뜻에 기민하게 대응한다. 며칠 뒤 발표된 수사 결과는 몹시 이상했어.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정인숙을 따라다니던 오빠 정종욱이 누이의 방탕한 삶을 훈계하는데 정인숙이 그를 무시하고 폭언을 하자 이에 화가 난 오빠가 말다툼 중에 총을 쏴 죽였다는 것이었지. 정인숙의 몸을 꿰뚫은 것이 문란한 누이의 삶을 계도하려던 오빠의 분노 어린 총탄이라는 것인데, 이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이상한 일은 그 외에도 많았다. 범인으로 특정된 정종욱은 넓적다리의 총상 치료를 이유로 구속을 면하고 입원했는데 간호사가 말하길 “충분히 기동해서 퇴원할 수 있으며 간단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정도(〈동아일보〉 1970년 4월18일)”의 상태였는데도 병원에 머물렀어. “부인 외에 어느 누구의 면회도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수사기관도 최대현 검사의 허락 없이는 출입이 제한되었다”고 해. 후일 정종욱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면회 와서 ‘성일이(정인숙이 낳은 아들) 아버지가 뒤를 돌봐줄 테니 일단 네가 쏘았다고 진술해서 사건의 파문을 진정시켜라’고 말해 거짓 자백을 했다.”
증거는 그의 자백뿐이었어. 더하여 정인숙의 사고 현장은 잽싸게 치워졌고 결정적 증거라 할 권총조차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종욱이 권총을 버렸다고 ‘자백’한 지점은 “6미터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 권총을 던질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어 쉽게 발견될(〈경향신문〉 1970년 4월15일)” 곳이었는데 말이야. 이 부실한 증거와 정황만으로 검사 최대현은 오빠 정종욱이 “비뚤어진 성격 등으로 동생의 재물을 탐해” 살인을 저질렀다며 사형을 구형한다. 재판에서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지만 정종욱의 목숨은 한동안 밧줄 위의 달걀 같은 처지였지.
중정 부장에게 ‘심복’이라 불린 검사
목숨이라도 건진 정종욱은 그나마 다행이었어. 최대현 검사는 정인숙 사건 이전에 한 역사적 인물의 목을 매달아버린 이력이 있으니까. 언젠가 소개한 북한 출신 귀순자 이수근이 그 사람이야. 이수근은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껴 판문점에서 대담한 탈출을 결행해 남으로 왔지만 남한 정권 역시 이수근의 성에 차지 않았어. 북도 싫고 남도 넌덜머리 났던 이수근은 제3국으로 빠져나가려다가 한국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체포됐는데 이 일로 그는 ‘위장간첩’으로 내몰리게 됐단다(〈시사IN〉 제560호 ‘남·북 어디에도 없던 자유를 찾아’ 기사 참조).
1967년 3월22일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이수근씨(가운데). ⓒ연합뉴스
한국의 정보기관, 즉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을 통틀어 최장수 기관장을 지낸 건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야. ‘멧돼지’라는 별명처럼 우악스럽게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을 때려잡고 얽어매던 그는 이수근을 베트남에서 체포하는 데 수훈을 세운 이대용 전 베트남 주재 한국 공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 “김형욱이 그래요, ‘당신 알죠? 이수근이 간첩이 아니라는 것. 어디 가서 말하지 마세요’(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99년 10월26일).” 이수근 자신은 몇 년 감옥살이나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겠지. 그가 간첩이 아니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데다 도망친 것 외에 아무 일도 한 게 없었으니까. 남한 정권은 그를 죽일 결심을 하고 있었던 거야. 이 살인극의 조역으로 등장한 게 최대현 검사였어.
재판정에서 검찰은 결정적 증거 중 하나로 이수근이 보냈다는 암호문을 제시했어. “배은망덕하고 고향을 떠난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십시오. 이제 잘못을 뉘우치고 사업을 하겠습니다. 여기에 약을 구해놓았으니 인편을 보내주시오.” 이 암호문은 중앙정보부의 최초 발표에는 들어 있지도 않았어. 오로지 검찰 공소장에만 포함됐지. 중앙정보부에서 ‘위장간첩’ 사건을 발표하는데 이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를 빼놓고 했다는 것은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 않았겠니.
그럼 기본적인 형식도 갖추지 못한 엉성한 암호문을 작성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미 김형욱이나 최대현이나 세상을 떠난 마당이니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지. 대신 김형욱이 그의 회고록에서 최대현 검사를 두고 이런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면 좋을 듯하구나.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나의 심복처럼 움직이던 젊고 유능한 검사였다.”
중앙정보부장에게 ‘심복’이라 불리면서 유능하게 움직였던 검사는 그렇게 애먼 목숨을 앗아갔다. 2018년 10월11일 법원은 이수근 간첩 혐의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에서 무죄를 확정하고, “간첩이라는 오명을 쓴 채 생명권을 박탈당함으로써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점에 대해 진정으로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판결했어.
만약 최대현 검사가 이 판결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수근의 백골이 진토되고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이 장발장만큼 옥살이를 하던 그 시간, 최대현 검사는 대검 수사국장을 거쳐 대학교수를 지내고 관세청장까지 역임하며 잘나가셨고, 취미로 우아하게 승마를 즐기시다가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났단다. 탈북한 뒤 “지옥이 있다면 북한이 바로 그곳이다”라고 얘기했던 이수근은 어쩌면 “악마가 있다면 그건 남한 중앙정보부와 검찰이다”라고 말하며 죽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덧붙였겠지. “악마가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곳이라면 그곳이야말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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