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70928154404771


기마민족 고구려인의 사랑 덕흥리 고분의 견우직녀도

[고구려사 명장면 29] 

임기환 입력 2017.09.28. 15:44 


필자가 덕흥리고분을 만난 개인적인 기억을 잠시 돌이키고자 한다. 덕흥리 벽화고분이 발굴되고 1981년에 보고서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 보고서가 1986년에 일본에서 일어번역본으로 출간된 것을 어렵사리 구해볼 수 있었다. 벽화의 컬러 사진을 보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한 장의 그림에 그만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앞방 남쪽 천장 벽화의 일부였다.


궁륭 천장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마치 비단폭을 펼쳐 놓은 듯 긴 띠가 물결치듯 흘러가고 있고, 그 띠 중간쯤에 마치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듯이 그려져 있다. 그 왼편에는 잘 차려입은 한 남성이 소를 끌고 걸어가고 있으며, 그 오른편에는 한 여인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 남성을 바라보고 있다. 여인의 오른쪽에는 검은 개 한 마리가 안타까운 모습으로 곁을 지키고 있다. 처음 보는 그림이지만 어딘가 매우 익숙한 장면인 듯했다.


남성의 그림 옆에 적힌 네 글자 '견우지상(牽牛之象)'으로 금방 어떤 장면인지 알 수 있었다. 오른쪽 여인 옆에도 글자가 있는데 앞의 두 글자는 지워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직녀지상(織女之象)'임은 굳이 추리할 필요조차 없었다. 견우직녀도였다. 길게 흐르는 띠 그림은 바로 은하수였고, 검은 구름인 듯 묘사되어 있는 것은 이른바 오작교인 셈이다.


견우직녀도/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도록


내가 어렸을 적 여름날 밤에 집 마당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쏟아질 듯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고, 그 한가운데를 은하수가 강물처럼 흘렀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칠월 칠석날에는 그런 하늘을 보면서 부모님과 선생님께 들은 견우직녀 이야기를 꿈꾸듯 서로 나누었다.


내 어린 시절에 들었던 그런 별자리 이야기가 1600년 전에 만들어진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다시 생생하게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1600년 역사의 오랜 시간을 넘어 마치 고구려인이 곁에서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으로 온몸을 전율했다. 길고 긴 시간을 건너뛰어 먼 과거와 현재의 내가 서로 공감하는 것이 역사 공부임을 그때 실감했다.


견우직녀도를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가운데 놓고 서로 떨어져 있고, 은하수 건너 멀어져 가는 견우를 바라보는 직녀의 슬픈 표정으로 보아 이는 필시 견우와 직녀가 칠월 칠석날에 만났다가 다시 헤어지는 장면을 그린 것임에 틀림없다. 견우는 직녀를 뒤돌아보지 않고 저벅저벅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는데, 아마도 이별에 찢어지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것이리라.


여러 가지 상상이 떠올랐다. 왜 고구려인들은 견우와 직녀의 그림을 이런 장면으로 그렸을까? 견우가 오작교를 건너와 직녀와 서로 손을 잡고 오랜 회포를 풀고 있는 장면으로 왜 그리지 않았을까? 왜 기쁨이 가득한 장면이 아닌 이별의 슬픔이 흐르는 장면으로 그렸을까? 고구려인들에게 사랑의 만남과 이별의 회한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해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오늘의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희로애락이 굴곡지는 고구려인의 삶과 심성을 읽어내는 그런 역사를 탐색하고 싶어졌다.


견우직녀도에 한동안 머물렀던 눈길은 다시 덕흥리고분의 벽화를 두루 살피기 시작했다. 앞방의 다채로운 벽화를 지나 널방으로 들어갔다. 북쪽 벽면에 무덤 주인공인 유주자사 진이 의관을 정돈하고 평상 위에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의 왼편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니 이곳이 왜 텅하니 비워져 있을까?


무덤 주인공의 장방 바깥, 즉 북벽의 서쪽에는 주인공의 시종들이 좌우 두 줄로 주인공을 향해 열을 지어 서 있고, 그 가운데에는 주인공이 타고 다닌 말이 힘차게 발굽질을 하고 있다. 동쪽 빈칸의 장막 밖에는 커다란 차양을 치고 가리개를 드리운 수레를 소가 끌고 있고, 그 좌우를 여자 시종이 열을 지어 걷고 있는 장면이다.


주인공 초상/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도록


이 수레 모습은 이곳 외에도 고분 두 곳에서 더 등장한다. 앞방의 동벽 행렬도에서 주인공의 수레 바로 뒤를 따르는 수레가 희미하게 많이 지워졌지만 같은 모습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음길 동벽에도 시종과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같은 모습의 수레가 그려져 있다. 이음길 서벽에 그려진 주인공의 행차와 나란히 나아가는 장면이다. 이렇게 주인공과 함께 행차하는 수레의 드리워진 가리개 안에는 아마도 부인이 타고 있을 것이다.

북벽 주인공의 초상 옆 빈자리는 부인의 초상이 그려질 자리였다. 유주자사 진이 죽은 때에 부인은 살아 있었기 때문에 빈칸으로 남겨둔 것이다. 무덤 안 벽화 곳곳에서 진은 부인과 함께였다. 군사를 거느리고 행렬할 때에도 자기 뒤에 부인을 따르게 했을 정도이다. 이를 보면 부부 금실이 매우 좋았던 듯하다. 이 대목에서 앞방 견우직녀도가 왜 이별의 장면으로 그려졌는지 알 듯했다.


무덤 주인공인 유주자사 진이 사랑하는 부인을 남겨두고 떠나는 그 이별을 견우직녀도에 담은 것은 아닐까? 애써 직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견우는 부인을 남겨두고 이승을 떠나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그린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사랑했던 부인이었건만, 왜 부인은 죽은 후 유주자사 진 옆에 나란히 묻히지 못한 것일까? 유주자사 진이 죽고 그 뒤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비록 무덤 초상 벽화에서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천장 벽화가 담고자 했던 하늘 세계에서 이들 부부는 다시 만나 함께하지 않았을까? 무덤 주인공 옆에 부인 자리가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 있는 장면이 마치 유주자사 진의 텅 빈 마음을 보는 듯해 가슴이 아려왔다.


때로는 역사 공부도 이렇게 감성으로만 채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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