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71130150304070


각저총 씨름도가 말하는 고구려의 전통과 개방성

[고구려사 명장면 33] 

임기환 입력 2017.11.30. 15:03 


무용총과 마치 쌍둥이 무덤처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벽화고분이 각저총(씨름무덤)이다. 각저총의 축조시기는 5세기 초반 혹은 중반으로 추정되는데, 무용총보다는 다소 앞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광개토왕, 장수왕 때로 고구려인들의 기상이 한껏 펼쳐지는 시기답게 벽화에서도 그런 활달한 기운이 넘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그림은 뭐니 뭐니 해도 무덤의 이름이 유래한 씨름도이다.


각저총 씨름도


널방 왼쪽 벽면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그려져 있고, 그 오른쪽으로 나무 아래에서 두 역사가 어깨를 맞대고 서로 힘을 응축시켜 막 시합을 시작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수염난 노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마치 심판을 보는 듯한 장면이다. 씨름을 하는 복장이나 씨름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씨름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마치 천오백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에 재현되는 느낌이다.


씨름을 하는 두 인물 중 왼쪽 인물의 얼굴은 보면 초승달처럼 날카로운 눈매에 큼직한 매부리코로 묘사되고 있어, 동북아시아계 인물은 분명 아니고, 서역(西域)계 인물로 추정된다. 그 상대인 오른쪽 인물의 얼굴 모습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고구려인의 얼굴이다.


사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씨름이나 수박희 그림에서 이런 서역계 인물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천1호분 앞방 오른쪽 벽화의 씨름도, 무용총 널방 안벽 천장고임의 수박희 그림, 안악3호분 앞방 벽화의 수박희 그림 등등을 꼽을 수 있다. 나중에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서역계 인물이나 서역계 문물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보고자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몇 가지 사례만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도록 하겠다. 다만 서역계 인물을 포함한 두 사람이 등장하는 씨름그림 한 장면을 통해서 고구려 사회가 다종족 국가였으며, 그만큼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었음은 충분히 유념해야겠다.


무용총 수박도


안악3호분 수박도


다음 주목할 것은 씨름하는 인물 오른쪽의 노인상이다. 얼굴은 지워져 잘 보이지 않지만, 긴 수염과 백발에 지팡이를 집고 있는 모습으로 충분히 노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수많은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서 노인 모습은 매우 드물다. 무덤 주인공이 나이가 들어 이른바 노인이 되어 죽은 경우도 있을 텐데, 대개 주인공도 노인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앞서 살펴본 안악3호분의 주인공 동수도 69세로 죽었고, 덕흥리고분의 유주자사 진도 77세로 사망하였는데, 벽화에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장년의 모습뿐이다. 무덤 안의 생활 풍속도가 내세에도 현세와 같은 생활이 재현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내세에서도 여전히 장년이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살기를 기원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예부터 꿈꾸는 것이 불로장생이라는 점을 무덤 주인공의 묘사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씨름도에서 심판을 보는 듯한 인물을 노인 모습으로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고구려인들이 즐겨 했던 씨름판에서 노인들이 심판을 보았을 수도 있겠다. 또 실제로 그러했건 아니건 간에 노인들이 삶의 경륜과 지혜로 올바른 심판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었지도 모르겠다. 희귀한 노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씨름 장면이 주된 그림이지만 그 왼쪽 나무 그림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벽면의 한가운데 천장까지 높게 그려진 나무는 단순히 씨름도의 배경이 아니라 벽면 오른쪽의 씨름도와 왼쪽의 건물과 집안 풍경을 구분하는, 즉 전체 벽면 그림을 분할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각저총에는 나무가지를 X 형태로 교차시킨 나무들이 여러 벽면에 그려져 있는데, 이런 나무 그림이 주요 주제로 그려진 점이 각저총 벽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씨름도 옆의 나무 그림은 이리저리 뻗은 나뭇가지에 잎은 다 떨어지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가지 끝에 푸른색 잎 비슷한 형태를 달고 있다. 덩어리처럼 그려진 이런 잎의 묘사는 중국 한나라 때 화상석에 자주 나타나는 수목 그림을 연상시킨다. 혹은 지금도 집안 지역에 가면 볼 수 있는 잎이 덩어리지듯이 돋는 가래추자나무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나무줄기와 가지들은 모두 자색이고, 가지 끝의 잎은 연녹색으로 묘사하였는데, 윤곽선이 없이 채색으로만 그렸다. 이런 묘사법은 뚜렷한 윤곽선으로 표현한 씨름도 인물 그림과는 기법상에 차이가 나타난다. 당시 화공들이 여러 가지 표현 기법을 대상과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구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커다란 나무의 여러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검은 색으로 표현된 새 4마리가 앉아 목을 길게 빼고 지저귀는 듯한 모습은 건조한 나무 표현과는 달리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나무 둥지 좌우에는 두 마리 동물이 서로 등 돌리고 서 있는 듯한 모습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 왼쪽의 동물은 호랑이 형상이고, 오른쪽은 곰의 형상이다.


곰과 호랑이 그림


곰과 호랑이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로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이야기가 금방 생각날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4마리 새가 깃들어 있는 나무도 단순히 나무 그림만으로 볼 수는 없겠다. 우리나라 전통 솟대에서 보듯이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이다. 따라서 신의 전령 역할을 하는 새가 깃들어 있는 나무는 신성한 나무, 즉 단군신화의 신단수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곰과 호랑이의 묘사도 잘 살펴보면, 모두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고, 마치 사람처럼 서 있는 모습이다. 곰이야 본래 그렇게 생겼다고 치고, 호랑이는 이른바 호랑이 무늬의 특징이 있을 법하지만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 지난 회에서 살펴본 무용총 수렵도에서 도망가는 호랑이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점을 고려하면, 호랑이를 검은색으로 표현한 것도 묘사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처럼 서 있는 모습이나 검은색으로 단조롭게 묘사한 것은 마치 인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게다가 곰과 호랑이가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에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거나, 결코 우호적인 관계로 보이지 않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의 추정이 조금 지나칠지 모르지만, 신단수 그리고 곰과 호랑이는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의 내용을 절로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단군신화의 모티브가 고조선의 주변 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는 귀한 역사적 증거를 하나 확보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고구려 문화가 고조선 이래의 문화 전통의 기반 위에 형성되었음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 그림에서 단군신화의 핵심인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신 환웅의 존재는 찾아지지 않는다. 사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하늘신인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고구려인들이 주몽 말고 다른 어떤 하늘신의 혈통을 갖는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각저총의 씨름그림 한 장면에는 고구려가 고조선 이래의 문화 전통 위에서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여 전통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갖춘 문화를 향유하였던 모습이 담겨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오늘 우리가 고구려 역사에서 배워야 할 귀중한 교훈의 하나이다.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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