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97952
40년 전 대학생 "골프치고 술마신 전두환... 분노한다"
[현장] 녹화사업 진실규명추진위, 연희동자택 앞에서 진상규명·처벌 요구 "전두환을 감옥으로"
19.12.21 14:56 l 최종 업데이트 19.12.21 14:57 l 박소희(sost)
▲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전 대통령을 향해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소명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2019.12.21 ⓒ 연합뉴스
21일 오전, 조용하던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가 떠들썩해졌다. 노란 푯말을 하나씩 들고 모인 중년 남성 약 20여 명은 연희동 95-4번지 앞에서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전두환을 구속하라! 전두환을 타도하자! 전두환을 감옥으로!"
그들의 뒷편 담벼락 너머 2층 주택은 바로 전두환씨 집이었다. 이들은 1980년대 '녹화·선도공작'이란 이름 아래 강제로 군에 끌려갔던 피해자들이다. 저마다 손에 든 푯말에는 당시 소속과 이름, 보안사령부(옛 기무사,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부여한 관리번호가 적혀있었다.
'붉은 이념을 푸르게'... 군대로 끌려간 청년들
녹화사업은 원래 나무를 심어 산림을 푸르게 만드는 사업을 뜻한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는 '붉은 이념을 푸르게 한다'며 새로운 개념의 녹화사업을 실시, 강제징집된 운동권 출신 대학생들을 고문·협박해 프락치(첩자)로 활용하려고 했다. 성균관대 재학 중 군대로 끌려간 '관리번호 2189' 정화용씨는 젊은 취재진들을 향해 "기자분들은 아마 이런 경험 없을 것"이라며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운을 뗐다.
"당시 보안사가 저희를 경기도 과천과 서울 분실로 데려와 고문도 자행하고 프락치 교육을 시켰다. 휴가증을 주고 친구, 선배, 동료를 만나서 현재 활동 내용을 첩보로 가져오라고 했다. 20대 초반에 그런 경우를 경험하면, 그 심리적 압박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군 의문사한 동료들도 있는데, 이런 걸 심층적으로 보도해준다면 의문사한 동료들의 한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의 폭압과 강요에 몇몇 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 품에 돌아갔다. 죽음의 진상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진래(당시 서울대), 정성희(연세대), 이윤성(성균관대), 김두황(고려대), 한영현(한양대), 최온순(동국대), 한희철(서울대), 김용권(서울대), 최우혁(서울대)은 그런 희생자들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 최우혁씨 형도 참석해 통한의 가족사를 소개했다. 그는 "동생은 1987년 4월 입대해 9월 8일 분신했고, 4년 뒤 어머니는 안 가겠다는 (아들을) 군대에 강제로 보냈다는 자책감에 한강에 투신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 최봉규씨는 모든 아픔을 끌어안은 채 아들 죽음의 진상을 알리고자 유가협(전국 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의) 활동에 힘을 쏟다 3년 전 세상을 떴다.
최씨는 "지난해 9월에야, 31년 만에 동생의 순직 판정이 나왔는데 그게 끝이었다"며 "긴 세월 동안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땅에 묻힌, 이 잘못된 인권의 말살을 이번 기회에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임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 같다"며 "이 자리가 정말 힘은 없지만, 사회 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과 목숨까지 말살한 과거의 죄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두환 처벌받아야"... 특별법 제정 등도 추진
▲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전 대통령을 향해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소명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2019.12.21 ⓒ 연합뉴스
'관리번호 1616' 윤병기씨는 최근 12·12쿠데타 40주년 기념 회동까지 가졌던 전두환씨를 두고 "(전 재산이) 29만 원 있다면서 골프 치고, 치매 걸렸다면서 술 마시는 걸 보면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그는 "강제징집 관련 자료들을 보면 최종 지시자는 전두환"이라며 "어떤 식으로라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윤씨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대표해 전두환씨 자택 대문 밑으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추산된 녹화사업 피해자들은 2000여 명이다. 이들 가운데 약 200명은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설립을 추진, 21일 기자회견 후 출범총회를 열어 활동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앞으로 위원회는 녹화사업의 최종 책임자 전두환씨와 관련자들의 사죄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관리번호 1190' 조종주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 차원에서 진실규명이 진행됐지만 당시 기무사가 자료 협조를 하지 않아서 반쪽짜리 진실규명밖에 안 됐다"며 "이 부분도 앞으로 활동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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