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2158.html
[단독] 삼성, 직원 연말정산 뒤져 ‘진보단체 후원’ 수백명 색출
등록 :2019-12-26 05:01 수정 :2019-12-26 07:18
노조와해 재판 때 문건 드러나, 물산·중공업·의료원 등 전방위 훑어, 기부액 외 출신학교·학력 불법 기재
진보단체는 불온단체 규정, 환경연합에 향린교회까지 붉은 낙인, 극우단체 선정 ‘친북좌파 69곳’ 참고
‘불온 기부자 밀착관리’ 깨알 지시, “계열사에 명단 통보 특이행동 파악, 좌파단체 기부자들 모니터링 강화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정문 앞에서 깃발을 나부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삼성이 진보성향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분류하고, 계열사 임직원들의 이들 단체 후원 내용을 파악해 그룹 차원에서 관리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삼성은 연말정산 때 제출하는 ‘기부금 공제 내역’을 통해 임직원들의 ‘불온단체’ 후원 여부를 파악했는데, 이 작업을 주도한 것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이었다. 노조와해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이 노동조합원뿐 아니라 일반직원들의 개인정보까지 불법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 임직원 기부금 내용까지 관리한 삼성
25일 <한겨레>의 취재를 종합하면, 2013년께 삼성은 미전실 주도로 불온단체를 후원한 20여개 계열사 임직원 386명의 명단을 정리해 ‘불온단체 기부금 공제 내역 결과’ 등의 문건을 만들었다. 삼성은 불온단체 후원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임직원들의 동의 없이, 이들이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연말정산 자료를 무단 열람했다. 삼성이 기부금 내용을 살펴본 계열사는 삼성중공업,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으로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의료원도 포함돼 있었다. 삼성은 불온단체 기부금 납입 사실이 확인된 임직원의 기부액, 직급, 최종학력, 최종학교 등의 개인정보를 함께 기재해 특별관리 대상에 올렸다.
삼성이 불온단체로 선정한 곳은 환경운동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국여성민우회, 통합진보당 등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시민단체와 정당 11곳으로, ‘6월 민주항쟁’의 성지인 향린교회도 포함돼 있었다. 삼성은 보수 시민단체 중 하나인 ‘사이버정화시민연대’가 2010년 10월 발표한 이른바 ‘반국가 친북좌파 69곳’의 목록을 참고해 불온단체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전방위적인 임직원 개인정보 열람 사실이 알려진 건 지난해 4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재판에서였다. 당시 검찰은 미전실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나 에버랜드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을 보이는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등을 기소한 상태였다. 법정에서 검찰은 이날 미전실이 노조원뿐 아니라 일반직원들의 개인정보도 광범위하게 불법적으로 수집했다고 강조하며 ‘불온단체 기부금 공제 내역 결과’ 등의 문건을 공개했다. 2013년 작성된 문건에는 20여개 계열사 직원 가운데 270명이 불온단체를 후원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비슷한 자료가 에버랜드 노조파괴 재판에도 제출됐는데, ‘2013년 5월28일 기부금 확인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불온단체를 후원하는 삼성물산 등 16개 계열사 임직원 116명의 명단이 나열돼 있었다.
기부금 문건은 삼성이 노조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직원들을 사찰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을 잘 아는 관계자는 “(기부금 자료는) 노조원이나 문제 인력만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 계열사별 직원들이 낸 기부금을 확인해 불온단체 기부 내역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삼성, ‘진보단체=불온세력’으로 규정
<한겨레>가 확보한 문건에는, 삼성이 진보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불온단체 기부금 공제 내역 결과’라는 문건에는 “(기부자) 명단을 각사에 통보해 노사부서의 주관하에 특이행동을 파악하는 등 밀착관리 주력…(중략)…특히 통진당,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 친북좌파 성향이 강한 단체에 기부한 인력 중심으로 모니터링 강화 방침”이라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단체를 ‘불온’세력이라 규정하고, 이들 단체를 후원하는 직원을 감시하는 일을 ‘노사업무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다만 검찰은 해당 문건대로 직원 관리가 이뤄졌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행 여부를 떠나 이런 개인정보는 수집 자체만으로도 불법이다. 지난 1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1심 선고를 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역시 미전실이 삼성 계열사 직원들의 기본 신상정보는 물론 재산 상태와 성향, 친분 관계 및 노조 가입·탈퇴 여부 등 민감한 정보를 취득한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에버랜드 노조와해 사건을 판결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 역시 미전실에서 노사업무를 총괄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각 계열사 인사 담당자들한테서 해당 정보를 제공받아 직원들을 관리하기로 공모했다고 보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앞서 삼성에버랜드 및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지난 13일과 17일 각각 삼성의 조직적인 노조와해 공모 범행을 인정하며 강 부사장과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강 부사장은 에버랜드 사건에서 징역 1년4개월, 삼성전자서비스 사건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 의장도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아 모두 법정구속됐다.
장예지 고한솔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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