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300600005
[단독]‘정점’ 이건희·최지성 보고받은 정황 나왔는데…검찰 불기소 이유 “관련자들이 부인”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입력 : 2019.12.30 06:00 수정 : 2019.12.30 08:14
(1) 1심 판결문으로 본 노조 파괴 컨트롤타워 ‘미전실’
미심쩍은 ‘증거불충분’
1심 판결문엔 문건 수두룩
“이 회장에 보고 위해 작성”…“최지성, 5가지 지시사항”
검찰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77·왼쪽 사진)·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68·오른쪽)이 노조 와해 전략을 보고받은 정황증거를 확보하고도 관련자들이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불기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이 회장 등에 대한 불기소이유서를 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지난해 12월31일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회장과 최 전 실장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검찰은 최 전 실장과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지시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검찰은 불기소이유서에서 “최지성은 위와 같이 지시(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박상범 역시 이건희, 최지성에게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적었다. 검찰은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만으로 피의자들의 주장을 뒤집고 피의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선고된 ‘삼성 노조 와해’ 사건 1심 판결문에는 이 회장, 최 전 실장이 노조 와해 전략을 보고받은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등장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미전실의 공모 여부’에 대해 판단하면서 일명 ‘A보고’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미전실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2011년 3월9일 작성한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대응방안’ 문건(A보고)에도 임원들에게 비노조 경영 방침에 따른 노사 전략을 교육하고 복수노조 대응태세를 점검하여 노조 설립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판시했다.
문건에는 “전 임직원 노사 교육 등을 강화해 원천적으로 노조 설립 가능성을 차단하겠습니다” “노조가 생기더라도 조기에 노조를 와해하도록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시간을 끌면서 상대 노조를 고사화시키거나 친사노조를 설립해 무력화시키는 방안도 강구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 전 실장도 검찰 조사에서 ‘회장 보고용 문건은 A보고’라고 진술했다. 이 회장이 어용노조 설립 같은 구체적인 노조 와해 전략까지 보고받았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다만 재판부는 실제로 이 회장이 보고받았는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판결문에는 최 전 실장이 노조 와해 전략을 직접 ‘지시’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문건도 언급된다. 미전실이 2011년 2월16일 작성한 ‘CEO 세미나 후 각사 사장 동향’ 문건을 보면, “전자 최지성 부회장은 2011년 2월11일 인사팀장 원기찬 전무에게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한 5가지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조직 관리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라고 적혀 있다. 세미나는 ‘그룹 노사 전략’을 교육하기 위해 CEO들을 대상으로 매년 개최하던 행사다.
2014년 2월8일 박상범 전 대표이사가 최 전 실장에게 보고한 내용을 이상훈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도 언급됐다. “네. 사장님. 방금 실장님(최지성)이 전화하셔서 파업 대응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챗온으로 사장님(이상훈 실장)께 보고드린 내용으로 말씀드렸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박상범이 이상훈에게 보고한 내용은 직장폐쇄, 고용승계 없는 폐업 추진”이라고 했다. 2014년 3월10일 최 전 실장 보고용으로 작성된 ‘서비스 최근 동향’ 문건에도 “전자서비스는 노조 압박을 위해 ‘고용승계 없는 폐업’을 추진”이라고 적혀 있다. 노조가 설립되려는 조짐을 보이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를 폐업시켜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일명 ‘기획폐업’ 혐의로 기소된 삼성 임직원들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최 전 실장이 기획폐업 등 노조 와해 전략을 세세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를 확보하고도 관련자들이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이 회장, 최 전 실장을 불기소했다. 검찰은 삼성그룹 미전실·삼성전자 관계자 12명을 기소했다. ‘최고 윗선’은 이상훈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과 강경훈 당시 삼성그룹 미전실 노사파트 총괄 임원(부사장)이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이번 1심 판결에서 법원은 여러 증거를 인용하며 미전실이 회장 직속 기관으로서 그룹 최고의사결정권자를 보좌했음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강경훈 같은 일개 노무 담당 임원을 최고 윗선이라며 기소했다”며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들만으로도 혐의 확인이 사실상 가능한 것으로 보임에도, 이건희 회장, 최지성 전 실장 같은 최종의사결정권자를 기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미전실에 대해서는 (피의자들) 대부분 범행을 부인했는데, 그중 인사·노무 파트 임직원은 본인들이 부인하더라도 객관적 증거에 비춰봐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기소했다”며 “그 외에는 증거 관계상 기소하기에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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