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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공익제보자는 지금 어떻게 살까
공익 제보자의 삶은 비슷하다. 내부에서 왕따당하고, 소송에 시달리며 산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세상이 투명하고 정의로워진다.
기사입력시간 [229호] 2012.02.10 09:00:26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지난 1월18일 서울시 용산구 전국철도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해고자 신춘수씨(43)는 여전히 바빴다. ‘KTX 민영화 반대’라고 쓰인 리본을 가슴에 단 그는 “철도노조가 대응해야 할 일이 끊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해고의 아픔은 느낄 틈도 없다”라는 ‘자학 개그’도 따라붙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해고되었다. 철도공사는 내부 정보 유출·회사 이미지 실추를 해고 사유로 들었다.
KTX가 잦은 사고로 ‘고장철’이라 불리던 지난해 5월. 신씨는 운행 당시 연기가 피어오른 KTX 130호의 엔진 사진을 철도노조에 보고했다. 사진은 언론에 보도되었다. 파장은 컸다. 당시 철도공사는 엔진 과열로 사고가 났다고 밝혔지만 공개된 사진은 해명과 달랐다. 엔진 곳곳이 파열되어 있었다.
후폭풍은 길었다. 생계는 철도노조에서 보조해줬지만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까닭 모를 어지럼증도 찾아왔다. 자기공명영상(MRI)까지 찍었지만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했다. 현기증은 지난해 12월26일 한 편지를 받고서야 사라졌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공익신고자 보호결정문이었다. 한 달 안에 복직시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11년 9월 시행된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면, 확정된 보호조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신춘수씨는 지난해 사고가 난 KTX 엔진 사진을 철도노조에 보고했다가 내부 정보 유출과 회사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해고당했다. ⓒ시사IN 조우혜
주변에선 왜 긁어 부스럼 만드냐며…
하지만 신씨는 아직까지 복직하지 못했다. 철도공사는 권익위 결정에 불복했다. 현재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그는 소송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철도공사가 소송을 끌고 가는 데에는 나를 지치게 만들려는 목적이 크다. 또 제2, 3의 내부 고발자를 막기 위해서다.”
공익 제보자의 삶은 이처럼 녹록지 않다. 그나마 신씨는 나은 편에 속한다고 권태교씨(53)는 말했다. 철도노조처럼 함께 싸워줄 사람이 있어서다. 2008년 권씨는 몸담았던 버스 회사의 공금횡령을 세상에 알렸다. 현금 승객을 축소 보고해 서울시로부터 세금을 더 타내는 수법을 폭로했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혔지만 정작 그에게 돌아온 건 해고였다. 다른 버스 회사에 재취업하기도 어려웠다. 번번이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행여 면접을 보더라도 “과거에 한 내부 고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꼭 받았다.
실업보다 더 괴로운 건 사건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문제의 버스 회사 대표는 처벌받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주변에서도 옳은 일을 했다는 격려보다는 왜 긁어 부스럼 만드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그가 외로운 싸움을 벌이던 때, ‘빛과소금상’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2004년부터 그해의 공익 제보자를 뽑아서 주는 상이었다(이상호 기자가 잡은 ‘축축한 손’ 참조). 300만원이라는 상금보다 자긍심이 주는 기쁨이 더 컸다.
2년 만에 그는 다시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이수정 서울시의원(민주노동당)과 이지문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부대표가 도움을 주었다. 이곳에서도 권씨의 근황을 확인해 회사에 보고하고 “친해지면 피해 본다”라고 뒷담화를 하는 이들에게 시달린다. 그래도 견딜 만하다.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아름다운재단처럼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겨서다.
공익 제보자가 대접받는 세상을 꿈꾸다
김용환씨(55)가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김씨 또한 공익 제보자였다. 2003년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관리에 문제점이 있다고 고발했다. 수혈 감염 가능성을 제기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그도 수많은 공익 제보자처럼 신산한 시간을 보냈지만, 동료 3명과 오랜 준비 끝에 공익 제보를 한 터라 ‘해고’와 같은 파국을 맞지는 않았다. 지금도 적십자사에 잘 다니고 있다.
그때의 교훈으로 홀로 싸우는 공익 제보자를 찾아다녔다. 같이 맞서고, 제보 노하우를 공유하며, 공익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도 만들었다. 김씨는 공익 제보자가 대접받는 세상을 꿈꾼다. ‘가정이 파탄 나고 왕따당하고 해고당하는’ 공익 제보자의 현실보다는 그들이 제보한 내용의 가치를 세상이 조명해주길 바란다. “적십자 폭로를 기념하며 서울시에서 기념식수를 한 적이 있다. 그 후 한 제보자의 아들이 가끔 그 나무를 보러 간다. 나무를 보면서 자신도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한다. 이렇게 제보자를 우대하는 풍토가 생겨야 너도나도 제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나. 내부 고발이 있어야 세상이 투명하고 정의로워진다.”
현재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회원은 400여 명. 그들은 공익신고자보호법 제정에도 힘을 보탰다. 매년 연말 아름다운재단의 ‘빛과소금상’ 시상식에 모여 또 다른 공익 제보자를 북돋워주고 힘을 나눈다. 지난해 수상자는 신춘수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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