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8764


국정원 또 이긴 변호사 "한국 정치, 무책임하다"

[인터뷰]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비공개취소소송 이긴 민변 진상규명TF 임재성 변호사

20.02.04 08:17 l 최종 업데이트 20.02.04 08:17 l 박소희(sost)


 한배평화재단 회원들과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 웅우예티탄씨 두 명(동명이인, 오른쪽 두번째, 세번째)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베트남전 종전 43주년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 하고 있다.

▲  2018년 4월 23일 한베평화재단 회원들과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 웅우예티탄씨 두 명(동명이인, 오른쪽 두번째, 세번째)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베트남전 종전 43주년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인물이 임재성 변호사. ⓒ 이희훈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마을이 불탔다. 74명이 죽었다. 모두 민간인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은밀하게 조사를 진행, 학살을 자행한 청룡부대 1중대 1~3소대장 세 명을 1969년 11월경 신문했다.


2017년 8월 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는 국정원에 세 소대장을 조사해 작성한 문서와 목록 등을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국정원이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거부하자 민변 TF는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2018년 말 승소판결이 확정된다. 하지만 국정원은 소대장들의 개인정보 침해를 내세워 또 비공개한다. 민변 TF는 2019년 다시 한 번 법원에 소장을 낸다.


지난 3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박형순)는 국정원의 비공개가 위법하다며 세 소대장을 조사해 작성한 문서들의 목록을 공개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소대장들의 생년월일 내지 출생연도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정한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소송에 참여한 임재성 변호사는 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한국 사회의 성숙함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문제를 온전하게 인정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로 만들어질 것"이라며 정보공개는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몰랐던 문제


- 이번 소송이 어떤 계기로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한국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사건을 처음 주목한 게 1999년 <한겨레21> 피해자 인터뷰였다. 하지만 당시 사회가 받은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5년 피해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하고 나서야 민변에서도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모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문제'라는 걸 인식했다. 사법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볼 수 있을까 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정보공개청구다.


저는 사실 (청구 결과) '정보 부존재'라고 나올 줄 알았다. 이미 고경태 한겨레 기자가 여러 경로로 '자료 존재 여부만 확인해달라'고 했는데, 매번 국정원은 '없다'고 회신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했는데 비공개가 나왔다. 자료가 있다는 뜻이다. 2017년 1차 소송 때는 (관련 정보의) 내용과 목록을 더 넓게 청구했는데 정보의 내용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각하가 나왔다. 일단 (세 소대장 조사 문건) 목록부터 받으려고 (2차 소송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 한국 정부는 소송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나.

"국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정원이 언급했던 것 중 하나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확인도 부인도 안 함)다. 굉장히 중요한 외교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나 일제강제동원 피해문제에는 그렇게 안 하지 않나. 외교의 문제이기 전에 인권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에서 한국 정부는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먼저 정보를 공개하거나 입장을 낼 수 없다'라고 나왔다. 더 나아가 '하나의 정보가 열리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정보를 확인해달라고 할지 모른다, 구멍이 뚫리면 둑이 무너진다'는 식이어서 좀 치사해 보였다."


- 베트남전에 깊숙이 개입한 미국과도 비교해봤을 것 같은데, 한국과 차이가 있던가.

"미국도 보수적이다. 미라이 학살(1968년 3월 16일 미국 23보병사단이 베트남 중부 미라이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사건. 베트남 정부가 추산한 피해자는 504명, 미군 공식 통계는 347명에 달한다 - 기자 주) 하나는 박물관도 짓고 피해마을에 지원도 했지만, 개별 피해자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베트남 정부다. 북베트남 정규군의 민간인 학살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 이슈화를 원하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베트남 관계자들도 만나봤는데 '과거 얘기다, 결혼이주여성문제나 신경쓰라'고들 하더라."


베트남조차... "결혼이주여성문제나 신경쓰라더라"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씨와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씨가 언론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2015년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씨와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씨가 언론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 이희훈


- 베트남 정부조차 대응하지 않는 민간인 학살 문제가 한국 사회에선 어떤 의미일까.

"한국 사회를 위해서다. 사회의 성숙도는 스스로가 행한 가해 사실을 얼마나 기억하고 전승하느냐에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선 그런 성취는 없었다. 우리가 제주 4.3이나 광주 5.18을 기억할 때 서북청년단 혹은 공수부대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은 잘 안 한다. 피해자 위치에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쉽다. 그런데 가해자 위치에서 피해자를 어떻게 대면하고, 사과해야 하는지 등을 풀어나가는 사회가 훨씬 성숙한 사회인데 (한국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저는 한국 사회의 성숙함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문제를 온전하게 인정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로 만들어지리라 본다."


- 1차 정보비공개 취소소송 승소가 확정됐지만 국정원이 개인정보를 이유로 비공개해서 2차 소송까지 왔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어떻게 판단했나.

"저희가 두 개를 주장했다. 하나는 무효, 국정원의 2차 비공개는 아예 효력이 없다. 두 번째는 비공개 처분 자체는 인정하지만 적법하지 않다(취소). 무효 주장은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저희가 급진적 주장을 하긴 했다. (국정원 쪽에서) 재판 때 그러더라. '정보공개 세 번을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쉽게 말해 저희가 이번에 이겨도, 국정원이 또 다시 사유를 바꿔서 비공개할 수 있다. 이건 문제가 있다, 다른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보공개법이 만들어진 건 '알 권리'라는 기본권 때문이다. 그런데 알 권리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적시에 알 권리 아니냐'고 소송에서 주장했다. 예를 들어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복지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계속 사유를 바꿔서 비공개하다가 10년 후에 공개하면 알 권리 보장인가. 권리침해이고, 적절한 사법통제가 필요하다고 논리를 만들었다. 이게 인정된 판례가 전무하다.


저희는 판례를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보공개청구 대상이) 제3자 개인정보라는 점은 국정원도 처음부터 알았다. 그런데 그때는 안 하다가 지금에야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이분들 중에 한 분은 돌아가셔서 개인정보의 주체가 아니다. 나머지 둘의 생존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국정원이 처음에 정보공개청구를 받았을 때 당사자들에게 (개인정보 제공 동의여부를)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런 절차도 진행하지 않고 비공개 결정한 것은 비공개 사유를 만든 것에 불과하지 않나. 여러 정황들을 볼 때 비공개 권한 남용해서 무효라고 열심히 주장했는데 재판부도 '이건 어렵다'고 얘기하긴 했다."


"적당히 외면? 점점 할 수 없는 상황 된다"

 

 청원서 제출에 앞서 발언하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1960년생/퐁니마을)

▲  2019년 청와대 청원서 제출에 앞서 발언하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 ⓒ 김종훈


- 국정원이 항소할까.

"항소하죠. 이번 재판 때도 재판부가 비공개 심리할 테니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안 가져오고선 딴 얘기하더라. 재판부가 '한 번만 더 안 가져오면 불리한 심증으로 판결문 쓰겠다'고 하니 다음 기일에 자료를 가져온 다음에도 선고기일을 늦춰달라고 하더라. (재판을 지연해도) 안 되는 건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거다. 국정원은 그게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거다. 정보기관의 특수성이 있긴 하다. 그러면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개입할 능력도 여지도 없고, 국회도 관심 없다. 의원 10명을 못 모아서 진상조사특별법 발의조차 못했다. 그나마 의사를 밝힌 분들이 9명(더불어민주당 2명, 정의당 6명, 민중당 1명)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당히 (이 문제를) 외면해온 시간들이 있다. 그래도 한국의 시민사회가 피해자들을 한국에 모시고, 또 모시고 하면서 피해자가 제주 4.3평화상 수상하고, 지난해엔 103명이 직접 청와대 청원을 넣는 등 직접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들이 계속 늘고 있다. 올해 3, 4월에는 실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진행한다. 아마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관련해서는 한국과 미국 통틀어 처음으로 피해자가 가해국가에 제기하는 공식소송일 거다. 그런 식으로 피해자들이 더 많이 목소리를 내면, 점점 더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제발 정치가 이 문제에서 온전하게 작동하길 희망한다. 피해자들에게 본인들의 권리 구제를 맡겨 놓지 말고. '너희가 재판해봐, 이기든 말든 놔두자.' 이건 무책임하지 않나. 일제 강제동원 문제가 정확히 그랬다. 피해자들 소송이 끝날 때까지 일본도, 한국도,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전해 듣기론 문재인 대통령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첫 베트남 방문 때 언급하려고 했지만 베트남 정부가 반대했다더라. 하지만 국내에서부터 진상규명을 시작할 수 있다. 참전군인들만 해도 일반사병 단계에선 인터뷰가 이뤄진 적 없다. 그런 자료들이 쌓여야 더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있을 때 한국 정부도 대응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공식 조사가 영(0)이었다. 이제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정부가 가진 자료가 뭔지 확인하고, 어떤 내용인지 검토하고, 어디까지 공개할 수 있는지, 어떤 입장을 낼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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