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769
한국 칭찬하다 비판하는 유럽, 거기에 춤추는 한국
[이유진의 베를린 노트]
이유진 프리랜서 기자 heyday1127@gmail.com 승인 2020.04.26 14:26
유럽이 여러모로 고뇌가 깊다. 코로나19를 맞이하며 시스템의 ‘실패’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하루 확진자가 7000명까지 치솟던 혼동의 시기가 지나고 상황이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 독일 언론은 초기 한국의 방역 방식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칭찬했다. ‘롤모델’이라고까지 표현했으니, 이걸 듣는 한국인들의 벅참이란!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미세한 변화가 느껴졌다. 독일이 ‘한국식 방역’을 도입하려고 할 즈음이다. 독일은 개인정보 보호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정한 국가다. 확진자 정보를 대중에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보건당국에서 경찰로 정보를 넘기는 것을 두고 위법 논란이 있었다. 결국 경찰은 확진자 정보를 삭제했다. 독일은 개인정보를 모조리 털어 공개하는 한국식 방역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신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다. 지금은 암호화된 코드로 블루투스를 이용하는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
독일에서 개인정보보호 논란이 일면서 한국 방식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개인정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왜 그렇게 다들 정부 말을 잘 듣지?’, ‘거긴 왜 그렇게 방역을 잘한거야?’라는 물음에서 소위 아시아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한국 방역을 소개할 때마다 ‘유교’와 ‘권위주의’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서구 사회가 아시아를 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서구우월주의가 서려 있다.
서구인들에게 유교 사상은 아시아를 분석하는 주요한 창이다.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아시아에 대한 전문가성’을 나타내는 키워드가 된 셈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언급한다. 쉬운 방법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아시아의 외피를 쓴 이들까지 이러한 선입견에 일조한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철학자인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독일 언론 ‘벨트’ 기고문을 통해서 “아시아 국가는 권위주의적이고 사람들은 국가 권력에 더 순종적”이라며 유교 문화를 함께 언급했다. 한 교수는 유교라는 단어를 괄호 안에 참고사항으로 넣었지만, 발행 매체는 이 단어를 부제목으로 뽑았다.
이 기고문에서 한 교수는 유럽 방식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유료기사였던 탓에 결제를 하지 않는 대부분 독자들은 ‘유교’라는 단어만 인식하고 뒤로 가기를 눌렀을 것이다. 이렇게 선입견은 또 강화된다.
▲국내 방역 관계자가 방역 작업을 마친 뒤 보호복을 벗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유럽에서 교묘하게 변해가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함께 보이는 게 있다. 유럽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한국의 모습이다.
독일이 한국을 롤모델로 치켜세웠을 때, 한국의 미디어와 많은 한국인들이 소위 ‘국뽕’에 취했다. “(선진국인) 독일도 인정하는 한국!” 나도 그랬다. 물론 민간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정부까지 나서서 ‘국뽕’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한국을 칭찬하는 외신을 예쁘게 정리해서 널리 알리고, 한국에서 인기 있는 외국인을 이용해 홍보 영상을 찍었다. 해외문화홍보원까지는 이해한다. 그게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외교부, 행안부, 심지어 법무부까지 가세했다.
그러다 외신에서 한국을 비판하는 글이 나오면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프랑스에서 한 변호사가 쓴 기고문에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항의한 것이 그 예다. 기고자는 한국을 ‘감시와 밀고에 있어 세계 두 번째 국가’라며 아시아 전체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이에 한국대사관이 대응하고,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해당 매체, 프랑스를 대상으로 격한 비난이 잇따랐다.
프랑스 정부의 공식 입장도, 매체의 사설도 아닌 외부 기고에 정부가 이렇게 반응할 일인가. 거기에 우리나라 국민까지 힘을 합쳐 항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확인하고 강화할 뿐이다.
한국을 칭찬하는 기사 하나로 모두가 한국을 그렇게 본다고 판단할 수 없다. 한국을 비판하는 기사 하나로 모두가 한국을 그렇게 본다고 판단할 수 없다. 외신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건 일반 시민들로 족하다. 정부는 조금 다른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어설픈 아시아 전문가들을 치우고, 분석다운 분석을 해내는 현지 전문가들을 키우는 일이다.
기고문은 기고문으로 반박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의 기고문이라면 그건 ‘국정홍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지에서 중국 정부가 하는 행동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현지에서 담론을 이끌어가는 전문가가 나서야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전문가는 하루 이틀 만에 등장하지 않는다. 외신 기자들을 불러 K-POP 투어를 해주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K-POP 투어는 제발 그만하자.
코로나19를 둘러싸고 유럽과 아시아의 프레임 투쟁이 시작됐다. 싸운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해 볼만하다는 뜻이다. 한국으로서는 지금이 좋은 기회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뽕’이 춤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럽이 트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음악을 바꿀 역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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