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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자 고성 (南城子 古城)


양식 : 평지성|토성

길이 : 1,300m

건립 시기 :부여 전기

현 소재지 : 길림성 길림시 풍만구 강남향 영안촌 동단산


길림성 길림시 강남향 영안촌 동단산 남쪽에 있는 부여 시대의 산성인 남성자 고성이다.


길림성(吉林省) 길림시(吉林市) 강남향(江南鄕) 영안촌(寧安村) 동단산(東團山) 남쪽에 있는 부여 시대의 산성. 

남성자 고성은 부여 때 처음 축조한 뒤 고구려·발해·요·금 등이 계속 사용한 산성이다.


남성자 고성이 위치한 동단산은 부여 전기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부여 왕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자 고성은 길림시의 동쪽, 제2 송화강 동안의 동단산 산록의 평야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남성자 고성의 평면은 불규칙한 타원형이며, 둘레 길이는 1,300m이다. 출토 유물로 보아 축조 시기는 부여 시대로 평면이 원형에 가깝다는 점에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東夷傳)에 소개된 부여의 ‘원책(圓柵)’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현황


남성자 고성 내부는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성벽은 대부분 파괴되어 동남쪽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문은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있으며, 남문지 부근에 남북으로 150m, 동서 73m, 높이 1.5m의 토대(土臺)가 남아 있다. 성벽 바깥쪽에는 해자를 설치했던 흔적이 보인다. 성벽의 잔고는 약 5∼6m이다.


부여 시대의 유물로는 ‘장락미앙(長樂未央)’이라는 글씨가 있는 기와 외에 토기·청동 장식품·오수전(五銖錢) 등이 출토되었으며, 붉은 색의 새끼줄 무늬[홍색승문(紅色繩文)] 기와·바둑판 무늬[방격문(方格文)] 기와 등 고구려의 유물도 나오고 있어,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한 이후에도 이 성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와 요·금 시대에도 이어서 사용되었다.


2012년 현재, 중국길림성 고고연구소가 주관하여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조사 내용의 보고서가 발간되면 부여사 연구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남성자 고성은 부여 전기의 중심지를 용담 산성(龍潭山城)에서 남성자 고성까지의 강안(江岸) 평원 지대라고 보았을 때, 부여의 왕도가 어떤 구조로 조영되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줄 주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哈爾濱出版社, 1994)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武國勛, 「夫餘王城新考-前期夫餘王城的發現-」(『黑龍江文物叢刊』 1983-4)

馬德謙, 「夫餘前期國都的几個問題」(『博物館硏究』 1995-3)

이종수, 「부여 성곽의 특징과 관방 체계 연구」(『백산 학보』 67, 2003)

송기호, 「부여사 연구의 쟁점과 자료 해석」(『한국 고대사 연구』 37, 2005)

이성제, 「부여와 고구려의 관계사에서 보이는 몇 가지 쟁점」(『부여사의 제문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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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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