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518730.html 

우주의 비밀 ‘남극’에 묻혀있다
등록 : 2012.02.13 14:12수정 : 2012.02.13 14:12

과학향기

2012년 1월 12일, 대한민국 남극운석탐사대(대장 :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이종익 박사)가 남극 운석을 하나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남극대륙 장보고 기지 건설지로부터 약 200km 떨어진 빅토리아랜드 산악 지대 아래 빙하 지대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약 5년 전인 2007년 1월 28일 대한민국탐사대가 처음으로 남극운석을 발견한 뒤 143번째 발견한 남극운석이다.

우리나라의 남극운석 탐사는 이번이 제5차로, 최초로 도전한 탐사도 아니고 최초로 발견한 운석도 아니지만 143번째 운석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획부터 장소 선정, 운송 수단을 포함한 모든 것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제1, 2, 3차 남극운석 탐사는 ‘ALE(Antarctic Logistics and Expeditions)’에서 시설 및 장비를 지원받아 이루어졌다. ALE는 남극점으로부터의 항공과 운송을 담당하는 회사다. 제4차는 이탈리아 기지를 기반으로 이탈리아 팀과 공동으로 수행한 탐사였다.

그런데 왜 과학자들은 머나먼 눈과 얼음의 땅 남극에서 운석을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운석(meteorite)은 우주 공간을 떠돌던 암석이 지구 중력에 이끌려 지구 대기를 뚫고 지구 표면으로 떨어진 암석이다. 대부분 크고 작은 소행성의 파편이지만, 드물게는 달 표면 암석 또는 화성 표면의 암석이 충돌에 의해 떨어져 나온 것도 있다. 때문에 운석은 지구 탄생 초기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재료다.


1970년대, 남극의 일부 빙하지대에서 운석이 다량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때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이탈리아, 중국이 차례로 운석탐사대를 남극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들은 거의 매년 운석탐사대를 남극에 파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회수한 남극운석은 4만개에 육박해 전체 운석수의 80%를 차지한다.

대한민국 제2차 남극운석탐사대가 발견한 분화운석(운석명 : TIL 07016). 질량이 약 3.5kg인 이 운석은 주로 철질 금속과 감람석으로 이루어진 분화운석이며 소행성의 핵과 맨틀의 경계에서 형성된 암석으로 생각된다. 사진 제공 : 최변각

운석은 성인(成因)에 따라 크게 시원운석(혹은 미분화운석)과 분화운석으로 구분된다. 시원운석은 ‘콘드라이트(chondrite)’라고 불린다. 콘드라이트는 먼지와 가스로 이루어진 성운에서 태양계가 만들어지던 초창기 고체 물질이 모여 소행성을 이룬 후, 거의 아무런 화학적 변화를 경험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된 암석이다. 지구상에서 발견된 운석 중 대부분은 콘드라이트다. 지구의 암석은 지구가 탄생한 후 수많은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재탄생하면서 초기의 기록이 지워졌다. 반면 콘드라이트에는 태양계가 탄생하던 초기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때문에 태양계의 기원 물질, 태양계의 생성 초기 환경, 태양계의 나이 등 태양계 탄생 초기에 관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은 대부분 콘드라이트를 연구한 결과다. 또한 일부 콘드라이트에는 유기물이 포함돼 있어 생명체 탄생의 재료가 되는 유기물이 어떻게 생성되고 행성으로 공급됐는지를 알려준다.

이와 달리 분화운석은 모체인 소행성, 또는 행성의 일부나 전부가 녹아 마그마를 형성한 후 굳어 만들어진 화성암이다. 분화운석 중에는 소행성의 표면, 맨틀, 핵에서 만들어진 암석들이 모두 포함돼 있어 소행성과 행성의 진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연구 재료가 된다. 화성운석의 경우처럼 직접 가보기 않고도 다른 행성의 지질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매년 수만 톤의 외계 물질이 지구로 유입되는데, 이중 일부가 대기와의 마찰에서 살아남아 운석으로 발견된다. 운석은 초당 20km 내외의 엄청난 속도로 지구 대기로 진입하기 때문에 대기와의 마찰에 의해 녹으면서 매우 밝은 빛을 낸다. 이 빛은 보통 보름달 또는 그 이상으로 밝아 낮에도 관찰이 가능하다. 이런 운석 낙하 현상을 ‘화구(火球, fireball)’라고 부른다. 지구 대기를 뚫고 떨어지는 모습, 즉 화구가 관찰된 후 발견되는 운석은 1년에 한두 개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운석은 우연히 또는 조직적인 탐사에 의해 발견된다. 이런 운석의 대부분은 남극이나 사막에서 발견된다. 이는 지구의 암석이 거의 없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운석 발견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극의 경우 빙하가 움직이면서 특정 장소로 운석을 모으기 때문에 좁은 지역에서 수많은 운석이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한다.

이처럼 운석은 태양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때문에 희소가치가 큰 일부 운석은 매우 고가로 거래되기도 한다. 2012년 1월에는 모로코 사막지대에서 발견된 운석이 화성운석으로 확인된 후 금값의 10배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운석의 비싼 가치 때문에 북서아프리카 사막지대의 주민 중에는 마치 금광을 찾아다니듯 사막에서 운석을 찾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차례에 걸친 탐사로 발견한 143개의 운석은 이에 비해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운석을 발견해 운석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춰 나가고 있다. 화성운석을 포함해 거의 모든 종류의 운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1,000개 이상의 남극운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곧 장보고 기지가 완공되고 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대한민국 남극운석탐사가 시작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독자적인 연구가 가능한 수준으로 운석 시료를 확보할 것이라 기대되는 이유다. 하지만 시료만 확보됐다고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운석탐사와 함께 연구시설 및 장비의 구축과 연구 인력 확보를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21세기는 태양계 탐사의 시대이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여러 우주 탐사 선진국들은 앞다퉈 달, 소행성 및 화성 탐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월석을 가져왔듯이 곧 다양한 소행성 시료와 화성 암석들을 지구로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남극에서 운석을 찾고 이를 연구할 수 있는 운석 연구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이런 21세기 태양계 탐사와 연구의 기초를 닦는 일이다. 우주로 나가는 작은 한 걸음이 얼음의 땅 남극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글 : 최변각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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