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라
무려라는 고구려가 요하 서쪽에 설치한 소규모 군사 요새 중 하나로 수서에 나오는 통정진으로 생각된다.
무려라 - 동북아역사넷, 정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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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1
수대 고구려의 무려라(武厲邏) [11]도 요하 서쪽에 세워진 군사거점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가 서북쪽으로 영주에 이르렀다는 것은 정확히 어느 지점을 지칭하는지 기록상으로는 알 수 없다.
[주 11] 武厲邏(무려라)의 위치를 대체로 요하 중류 서안의 요령성 新民市(신민시) 북쪽 지점으로 파악하고 있다(제설은 趙曉剛·沈丹林, 2000, 「遼東郡及通定鎭考略」, 『東北地區三至十世紀古代文化學術討論會論文』 참조).
p166
고구려는 이미 수대에 요서에 진출해 무려라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무려라는 요하 서쪽 부근에 설치된 것으로 수 양제의 고구려 원정으로 상실된 곳이다. [27] 그럼에도 수대의 고구려의 서방 경계는 여전히 요하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대 고구려의 요서 진출은 무려라와는 다른 형태이자 그 진출 양상이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화된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점에서 658년 당군의 고구려 적봉진(赤烽鎭) 공격은 그 실상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라 할 수 있다.
[주 27] 武厲邏(무려라)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개 요하 서안으로 보고 그 후보지로
1) 遼濱古城/요빈고성(松井等, 1913, 「隋唐二朝の高句麗遠征の地理」, 『滿洲歷史地理』 上, 南滿洲鐵道株式會社, 388쪽),
2) 高台山遺址(고대산유지)(王錦厚, 1986, 「唐 “營州至安東”陸路交通地理考實」, 「遼海文物學刊』 1986-1,80~81쪽; 王錦厚·李健才, 1990, 『東北古代交通』, 沈陽出版社, 150~151쪽),
3) 公主屯后山遺址(공주둔후산유지)(王錦厚, 1994,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綜合硏究」, 『遼海文物學刊』 1994-2, 48쪽)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台安縣(태안현) 일대로 보거나(윤병모, 2009, 앞의 글, 82~83쪽),
醫巫閭山(의무려산) 일대로 본 견해도 있다(전준현, 1988,『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사(고조선-발해편)』,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4쪽; 이성제, 2005, 「高句麗와 契丹의 關係-對隋·對唐戰爭期 契丹의 動向과 그 意味」, 『북방사논총』 5, 152~153쪽).
p173
이는 수대의 무려라처럼 요하의 도하를 감시하거나 [48] 요서 경영의 창구 [49]로서의 소극적 방어 형태 [50]와는 달리 수대부터 이어진 수·당군의 대규모 공격에 맞선 적극적인 방어전략의 일환이다. [51]
[주 50] 한편 이성제는 무려라의 전략적 중요성을 영주에 비견하고 요서 경영의 주요 거점으로 보기도 한다 (이성제, 2005, 앞의 글, 151쪽). 그러나 ‘邏’(라)는 순라 즉 경찰이란 뜻을가진 단어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김현숙, 2005,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349쪽) ‘鎭’보다는 작은규모의 군사 시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p177
진은 수대의 무려라와 같은 라보다는 공격적이며 적극적인 방어 형태의 군사 시설로 볼 수 있다. 요하 서쪽에 라를 설치함으로써 요동 방어의 전초기지로서 활용했던 수대와 달리 요서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진출을 통해 당을 견제하고 이 지역의 선주 세력인 거란과 해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려는 전략이 적봉진과 같은 진의 설치라 할 것이다.
고대자산성(高臺子山城) - 동북아역사넷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90_0030_0010
요하 도하로(渡河路)에는
신민 고대산~심양(新民 高臺山~瀋陽)의 북로(北路),
대안 손성자~안산(臺安 孫城子~鞍山)의 중로(中路),
반산~고평~우장~해성(盤山~高平~牛莊~海城)의 남로(南路) 등이 있음(王綿厚·李健才, 1990).
645년 당군은 이 길들을 통해 요하를 건너 고구려를 공격함. 이세동(李世動)은 통정진(通定鎭)에서 북로를 통해 요하를 도하한 다음, 현토성과 개모성 등을 공격하였음. 당 태종은 요택(遼澤)을 거쳐 중로로 요하를 건넌 다음, 곧바로 요동성으로 향하였음. 장검(張儉)은 남로를 건넌 다음 건안성을 공략함.
이들 도하로 가운데 고대자산성은 가장 위쪽인 북로의 도하지점임. 이 지점은 주변 일대가 광활한 평원지대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함. 이에 고구려는 무려라(武厲邏)라는 군사성보(軍事城堡)를 구축하여 중국세력의 침공에 대비하고 요서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았음.
수는 612년 고구려 침공에 나서 무려라(武厲邏)를 빼앗고 통정진(通定鎭)과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함[ 『수서』동이전 고려조 대업(大業)7년].
그리고 645년 당의 이세동도 통정진에서 요하를 도하한 다음, 혼하(渾河) 연안의 현토성과 심양 남쪽의 개모성을 공격함.
그 뒤에 당군은 647년 남소성(南蘇城)을 공략할 때(『신당서』권220 동이전 고려조 정관(貞觀) 21년 3월조), 666년 국내성에 웅거한 남생(男生)의 투항을 받아들일 때(『신당서』권110 열전 제35 천남생(泉男生傳), 667년 신성(新城)을 공격할 때(『삼국사기』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6년조) 등 혼하~소자하(渾河~蘇子河) 일대를 공격할 때에는 대체로 고대자산성에 위치한 통정진에서 요하를 도하하였음(여호규, 1999).
농안 노변강유적(農安 老邊崗遺蹟) - 동북아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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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綿厚(왕미엔허우)은 천리장성의 축조로 기존 산성방어체계가 완성되었다고 파악하면서 陳大爲(진다웨이)의 수정 견해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함. 다만 기존의 산성연방선 외에 요하 양안에 두 줄기의 방어선을 구축하였다고 추정하고, 무려라(통정진)를 요하 서안 전연방어선의 대표적인 장새로 파악하였으며, 천리장성의 축조로 ‘雙重(쌍중)방어장벽’이 완성되었다고 봄[王綿厚, 1990 ; 王綿厚 1994].
고구려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 매경
https://news.v.daum.net/v/20190207150303350
[고구려사 명장면-64] 당나라 때 편찬된 역사책 `수서(隋書)`에서는 백만 대군을 동원한 612년 수양제의 고구려 원정의 실패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겨우 요수 서쪽 적(고구려)의 무려라(武麗邏)를 빼앗고, 요동군과 통정진을 설치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빈정거리는 투가 역력한 위의 표현은 아무래도 수왕조를 대신하여 등장한 당왕조의 입장에서 수양제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위 문장의 행간을 깊이 읽어보면 당나라 사관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고구려 역사의 일면을 찾아낼 수 있다.
요하 서쪽에 위치한 `무려라`는 고구려의 최전방 군사 거점이다. `라(邏)`는 소규모 군사 초소나 요새를 뜻하는 고구려 말이다. 이 무려라에 대해 `자치통감`에는 "고구려에서는 요서 서쪽에 라(邏)를 두어 요하를 건너는 사람들을 통제하였다"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무려라가 요하 서쪽에서 통행로의 경찰 업무나 영역 관리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 `수서` 기록에서는 이런 소규모 군사 초소를 빼앗아 요동군과 통정진을 두었다고 쓰고 있다. 무려라에다 통정진을 두었다고 한다면 진(鎭) 역시 군사 거점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무려라를 빼앗은 곳에 요동군을 두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없다. 요동군은 거점이 아니라 다수의 현을 거느리는 지방통치 단위이기 때문이다. 즉 지도상에서 표시하자면 점이 아니라 면인 것이다.
그런데 위 `자치통감`의 주석을 보면 고구려는 요서 지역에 여러 곳에 `라(邏)`를 설치하여 운영하였고, 무려라는 그중 하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수양제가 요동군을 설치했다는 것은 단지 무려라 군사 거점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고구려 `라(邏)`를 빼앗았거나 일정한 영역을 새로 확보하였음을 뜻한다. 적어도 이렇게 해석해야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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