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45460


MB때 시행령 때문에..."4년짜리 기간제 비정규직, 사라져야 합니다"

[인터뷰] '영전강' 부당해고 소송, 대법서 승소한 백주림 영어회화 전문강사

22.06.28 10:04 l 최종 업데이트 22.06.28 18:37 l 손가영(gayoung)


9년 일하는 동안 근로계약서를 9번이나 썼다. 1년 단위로 매년 계약을 갱신했다. 최대 근로계약 갱신이 가능한 기간은 4년. 4년이 지나면 신규 채용 절차를 다시 밟아 '재입사' 해야 했다. 일을 계속하고 싶었던 초·중등 영어회화전문강사 백주림(50)씨는 신규 채용시험에 응했다.


그러다 또 4년이 지났다. 다시 신규 채용에 응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에게 학교는 '당신은 더 이상 계속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백씨는 다른 학교를 찾아 나서야 했다. 꼬박 9년을 일한 때였다. 그러던 중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쓰다 버려지고, 쓰다 버려져도 되나?"


존엄성을 찾고자 시작한 싸움에서 지난 4월 22일 백씨는 이겼다. '백씨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부당해고 당한 게 맞다'는 대법원 판단을 받아 냈다. 일자리를 잃은 2019년 3월부터 장장 3년이 흘렀다. 


승리의 기쁨에 앞서 백씨는 교육청에 묻고 싶은 게 있다.


"교육청은 왜 멈추지 않나?"


실제 서울교육청은 서울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에서 모두 백씨의 손을 들어주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소송에서도 서울교육청은 모두 패소했다. 


백씨는 "2019년부터 서울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에서 부당해고라고 했고, (행정소송에서도) 1심, 2심이 계속 부당해고라고 했다"라며 "부산에서도 2017년부터 이미 똑같은 판결이 나오고 지난해엔 대법 판례까지 나왔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재판을 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와 만난 백주림 영어회화 전문강사.">

▲  지난 6월 14일 서울 강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백주림 영어회화 전문강사. ⓒ 손가영

 

백씨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OO초등학교와 OO중학교에서 일한 영어회화전문강사(영전강)다. 교육 현장에서 '영전강'이라 불리는 4년짜리 기간제 비정규직이다. 백씨는 오는 29일 복직을 위한 서울시교육청과의 첫 면담을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만나 "교육부와 교육청은 또 다른 대법원 판례를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시행령 통해 '4년 짜리' 비정규직 학교 강사 정당화


영전강은 겉으로 보기엔 정교사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학교 경우, 학습 이해도 등에 따라 반을 나누는 분반 수업이 진행되면서 한 반은 정교사가, 또 다른 반은 영전강이 맡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초등학교에선 영어회화 전문 수업을 전담했다. 여기에 방학에 개최되는 영어캠프나 영어 말하기 대회 주관, 교내 영어카페 운영, 영자신문 만들기 교육 등의 업무를 더 맡았다.


기간제법상 2년 넘게 근무하면 정규직원으로 간주되는데 어떻게 4년짜리 기간제가 가능할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영전강을 임용할 경우 1년 단위로 계약하되, 계속 근무 기간은 4년을 넘지 않아야 한다'(제42조 5항)고 정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이 기간제법 예외 사유에 해당돼 영전강들은 2년 넘게 같은 일을 해도 정직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일을 계속하려면 4년마다 재입사해야 하는 상황도 정당화됐다. 조기 영어교육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영전강을 도입할 때부터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설계한 탓이다. 당시 채용된 강사는 전국에서 4731명(2010년)이었다.


영전강들은 교육청이 '고용 형태'의 근거로 삼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근본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10여년 간 주장해왔으나 교육부와 교육청은 난색을 표해왔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국정 과제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도 2017년 정규직화 예외 사유로 "다른 법령에서 기간을 정하는 등 교사·강사 중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경우"를 가이드라인에 적시했다. 이 때문에 교육청도 "교육현장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무기계약직 대상에서 영전강을 제외했다.


때문에 연말마다 교육청 앞에선 영전강들의 '정리 해고 반대' 시위가 벌어진다. 4년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강사가 지역마다 매년 수십에서 수백 명 단위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로 자동 전보되지 않고 서류·실기·면접 등 신규 채용 시험을 또 통과해야 했기에, 강사들은 고용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백씨는 "'우연히' 5년 동안 계속 근무했고, 한 차례 근무지 이동도 이뤄졌기 때문에" 승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들이 "계속 근로한 총 기간이 4년을 초과했고 그 사이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돼 근로관계가 단절된 특별한 사정도 없다"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근로관계 형성'은 신규 채용을 뜻했다. 백씨는 첫 4년이 지난 뒤 다시 신규 채용되긴 했으나, 학교를 옮기지 않고 같은 학교에서 1년 더 일했고 그 뒤 교육청 지휘로 다른 학교로 옮기면서 4년을 더 일했다. 신규 채용 없이 총 5년을 더 일한 셈이다. 백씨와 함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던 유아무개 강사도 "운 좋게" 8년 동안 별도 채용 시험 없이 계속 일한 경우였다.


그러나 2017년 대법원에서 패소한 광주 강사는 달랐다. 총 5년을 일했던 이 강사는 시행령대로 근속 4년 후 신규 채용 절차를 밟았고 1년이 더 지난 무렵 계약이 해지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었다. 2심에서 승소했으나 대법원은 신규 채용을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돼 기존 근로관계가 단절된 특별한 사정'으로 보고 원심을 파기했다.


백씨는 "4년마다 계속 신규 채용(시험)을 봐서 30년, 40년을 일해도 우리는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같은 일을 계속 하는데 형식적인 채용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로 '근로관계가 달라진다'는 게 맞냐"면서 "우리는 운 좋았지만, 법원이 영전강, 비정규직을 다루는 잘못된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줄 소송 가능성... 근본 개선책 필요 

  

2015년 1월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이 비정규직 채용 가이드라인 폐지와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며 전북교육청 9층에서 옥상 농성을 벌이는 모습. 2층부터 경찰이 제지하자 한 남성 조합원이 강력하게 항의하며 난간에 올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2015년 1월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이 비정규직 채용 가이드라인 폐지와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며 전북교육청 9층에서 옥상 농성을 벌이는 모습. 2층부터 경찰이 제지하자 한 남성 조합원이 강력하게 항의하며 난간에 올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문주현(전 참소리 기자)

 

이번 승소 사례는 영전강을 4년 단위 비정규직으로 쓰는 교육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영전강을 무기계약직으로 인정한 두 번째 대법원 판례이기 때문이다. 2021년엔 부산의 강사 2명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해 무기계약직으로 복귀한 사례도 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도 2013년부터 영전강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권고해왔고, 국가인권위원장은 2017년 관련 촉구 성명도 냈다.


추가 법적 대응도 예정돼 있다. 백씨는 "영전강 제도가 워낙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우리처럼 신규 채용 없이 4년 넘게 계속 일한 사례들이 전국에 수두룩하다"며 "최근 서울의 한 강사로부터 강사 여러 명이 무기계약직임을 확인받는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교육청이 먼저 근본 개선에 나서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백씨는 인권위, 노동위, 법원의 판단이 10년간 쌓여왔음에도 "교육청은 기어이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노위가 부과하는 이행강제금만 최대 2000만 원씩 4회다. 중노위 이행강제금과 해고된 3년 기간 동안의 임금, 소송 비용까지 합하면 한 강사당 2억 원을 넘을 것"이라며 "행정력과 세금 낭비다. 교육청은 기업이 아니라 공공기관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법 판결대로 원직 복직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당사자들과 조율 중"이라며 "기존 처우의 무기계약직으로 복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이 대법원까지 항소한 이유에 대해선 "모든 사건이 다 동일하지 않다. 부산 영전강의 사안과 서울의 사안은 세부적으로 다른 게 많다고 봤기 때문에 법적 판단이 필요하고 판단했다"면서 "근본적인 후속 대책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라고 답했다.


백씨는 지난 10여 년 영전강들의 싸움을 돌아보며 사회의 혐오적인 시선도 언급했다. 그는 "영전강 대부분 여성이고 워킹맘이 많다. 우리를 다룬 기사마다 '학원에서 굴러먹다 온 아줌마들', '영어 한 마디도 못 하는 아줌마들' 같은 댓글이 아직도 달리고 있다"며 "인터뷰도 용기가 필요했지만 '아주 작은 행동으로라도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 제도를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끝으로 백씨는 "제발 (정부부처에) 부탁하는데 어떤 제도를 만들 땐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계적으로 만들어놓고 시작해달라. 고용과 노동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라"며 "그에 따른 문제가 생긴다면 피해자가 제각각 구제에 나설 게 아니라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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