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tapa.org/article/a1Pe0
울진 산불① 산불에 국가 원자력재난시스템 8시간 마비
조원일 2022년 09월 20일 18시 15분
화마가 열흘 동안 산림을 휘저으며 1.6만 ha의 땅과 주택 300여 채를 삼켰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생태는 파괴됐다. 회복에는 20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산불의 공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화마는 동해안 일대에 즐비한 에너지 시설들의 담장을 넘나들었다. 자칫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화마는 다시 온다. 우리 사회는 대형 산불 재난을 겪으며 교훈을 얻었을까. 뉴스타파가 지난 울진-삼척 산불에서 드러난 재난 대응 시스템의 부실과 허점을 연속 보도한다. - 편집자 주
지난 3월 4일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국가 원자력재난관리시스템의 핵심 기능이 8시간 동안 마비됐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원전 안팎에 설치된 방사선 측정 장비 역시 먹통이었다. 원전의 안전 상태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해 수십억 원의 혈세를 들여 만든 시스템이 실제 긴급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셈이지만, 관할 기관은 안전 관리에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반복하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민가와 구멍 뚫린 원전 안전 시스템
지난 3월 4일 오전 11시 17분, 경상북도 울진군 두천리에서 발화한 울진 산불은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세력을 확장했다. 불길은 발생 3시간 만에 북서쪽으로 10㎞가량 떨어진 한울 원전 울타리에 도달했다. 당시 진화 작전에 투입된 안동산임항공관리소 김남현 기장은 "한울 원전의 경우 거의 펜스까지 불길이 있었다. 원자로의 원형 돔 상공까지 (헬기를 몰고) 지나가는 비행은 생전 처음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산불이 원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자 정부는 한울 원전 방어를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산림청은 산불재난 국가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발령했고, 소방청은 전국 소방력 총동원령을 발동했다. 소방력이 원전 인근에 집중되면서 일부 울진 주민들은 산불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이기도 했다. 울진군 주민 최정자 씨는 "가족과 함께 집 주변으로 직접 물을 뿌렸다. 그나마 물을 뿌린 집들은 화를 피했지만 안 뿌린 집들은 타 버렸다"라고 회상했다. 최 씨는 "헬기와 소방차 모두 원전에 집중해 대기하느라 민가 쪽으로 손을 쓸 새가 없었다"면서도 "원전에 불이 가면 안 되니까 그러려니 했다"라고 말했다.
집을 덮치는 화마 앞에서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국가 원자력 재난관리시스템의 핵심 기능은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당시 기능이 마비된 국가 원자력재난관리시스템, 이른바 아톰케어(AtomCARE)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안전 규제 전문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방사능 재난 발생을 대비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전산 시스템이다.
아톰케어의 핵심 기능은 실시간으로 원전의 안전 정보를 확인하고 분석해 국가 주요 기관과 공유하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원전으로부터 시즈(SIDS:Safety Information Display System), 즉 방사선 비상시 활용하기 위한 원전의 안전 정보를 전송받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이상이 발생할 경우 방사능 누출량과 예상피해 지역 등을 분석해 국가위기관리센터, 원자력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 등 국가 주요 기관들이 동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원격으로 공유한다. 1993년 처음 개발이 시작돼 운용하기 시작한 아톰케어에는 현재까지 약 73억 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 아톰케어 내부의 시즈(SIDS) 정보 전송 경로
그러나 울진 산불로 한울 원전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던 3월 4일 시즈 정보, 즉 비상시 원전 안전정보는 아톰케어에 제대로 전송되지 않았던 사실이 한수원 내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 6월 한수원에서 결재한 '울진산불 관련 원전정보 전송장애 개선계획' 문서에 따르면 한울 본부의 원전 안전정보 및 환경감시정보는 3월 4일 울진 지역 산불로 인해 아톰케어로 전송되지 않았다. 당초 한울 본부에는 본관 통신실 2회선, 본관 서버 2회선 등 SK와 LG가 설치한 총 4개의 전용 회선이 아톰케어와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산불로 인해 4개 회선이 모두 훼손되면서 송신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 울진 산불 당시 원전 안전정보 전송장애 내용이 기록된 한수원의 내부문서
전송 장애는 3월 4일 오후 3시 45분부터 오후 11시 44분까지 무려 8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톰케어를 구성하는 핵심 정보인 시즈 정보가 수신되지 않는 동안 불길은 한울 원전 주변의 송전선을 휘감았다. 전력거래소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을 피하기 위해 일대 송전선로에 강제 송전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당시 가동 중이던 한울 원전 5기의 출력을 급격히 낮추는 등 비상 조치가 이어졌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측은 시즈 정보의 전산 장애는 인정하면서도 안전 관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을 내놨다.
울진산불 당일 시즈(SIDS)를 통한 안전정보는 미수신되었지만,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내부 시스템인 폼스(POMS)를 통해 원전 안전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울진 산불 당시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정상적으로 아톰케어에 입력됐다는 폼스(POMS: Plant Operation Monitoring System)는 평상시 원전의 안전 상황을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측은 또 다른 전용 회선으로 입수한 폼스 정보에 시즈에서 다루는 정보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상시를 대비해 원전의 안전 상태를 주요 국가기관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즈와 달리, 폼스 정보는 공유가 되지 않는 원자력안전기술원 내부 전용 시스템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 기관이 원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방사선 비상에 따른 주민 소개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핵심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원회 소속 양이원영 의원은 "한울 본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밀집도가 매우 높은 곳인데 국가시스템이 그 많은 원전 상황을 8시간이나 확인하지 못한 채 '먹통'이 됐다는 의미"라며 "아톰케어는 비상시기 외부의 여러 공공기관들과 원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목적을 상실한다면 많은 예산을 들여 구축하고 운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 원자력안전기술원 내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폼스(POMS) 정보 전송 경로
원자력안전기술원 측은 취재 과정에서 "비상 대응 효율성 향상을 위해 시즈(SIDS) 및 폼스(POMS) 통합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추가 답변을 보내왔다.
방사선 측정 장비도 통신 두절
울진 산불 당시 한울 원전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월 4일 신한울 지점 및 한울 1, 2 발전소 지점 등 한울 원전 주변에 설치된 24개의 방사선 측정장비인 환경감시기 정보 역시 아톰케어에 전송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에 따르면 당시 화재로 인해 SK텔레콤의 무선 중계기가 손상되면서 이 같은 장애가 발생했다. 오후 3시 15분부터 발생한 방사선 정보 전송 장애는 짧은 곳은 7시간가량, 긴 곳은 무려 50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만에 하나라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면 아톰케어 감시망에서는 정상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안전기술원 측은 사업자인 한수원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통신사 무선중계기가 손상되어 아톰케어로 미수신되었으나 한수원 한울본부의 순회점검을 통해 환경감시기가 정상 운영되고 있고 수치가 이상 없음을 확인했다. 구체적인 순회 점검방식에 대해서는 한울 본부로 문의하기 바란다.
원자력안전기술원
그러나 원전 운영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사업자인 한수원의 정보만으로 위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 당시 원전 사업자였던 도쿄전력은 원자로의 노심 용융 상황 등 다수의 중요 정보를 은폐해 심각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정부가 규제기관을 두는 이유는 원전 현장을 사업자에게만 맡기는 게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파악해서 책임 있는 기관에 보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한울 본부에 점검을 요청해 확인했다는 것은 자신들이 할 일을 사업자에 떠넘긴 것으로 규제 기관의 기본적인 태도와 자세에서 부터 어긋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타파가 국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아톰케어의 원전 안전정보 전송 장애는 이번 울진 산불 사례를 포함해 최근 3년 동안 75차례(SIDS 26건, POMS 49건)나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 원인은 무엇인지, 그 대책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진 적은 없다.
▲ 지난 8월 촬영된 경북 울진군 한울 원전 본부. 검게 그을린 산등성이 너머로 한월 원전의 원자로가 보인다.
'방사능 방재대책의 궁극적 목적은 주민보호에 있다.' 지난 2015년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상위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아톰케어와 관련한 보고서에서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울진 산불로 인해 다시 한번 구멍이 뚫린 아톰케어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안일한 대응은 정부가 방사선 재난 발생시 우리 국민을 보호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지 커다란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뉴스타파는 울진 산불 당시 드러난 재난대응 체계의 부실과 허점을 이어서 보도할 예정이다.
제작진
촬영 신영철 이상찬 김기철 정형민
편집 윤석민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웹출판 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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