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2380


尹 비속어 파문의 교훈…좋은 사과는 좋은 위기탈출 방안

기자명 윤석규 정치칼럼니스트   입력 2022.09.30 09:36  


'사과 대신 공세'…국민 개·돼지로 보기 때문

국정운영·정치경험 부족 채워줄 비서실장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출근길 문답회견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출근길 문답회견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1. 말 실수 부적절 대응이 위기 더 키워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파동은 ‘위기 자체보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오랜 교훈을 상기시킨다. 비속어 파동은 부적절한 말실수로 발생한 위기에 부적절하게 대응해 위기를 더 키운 전형적인 사례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 백번 양보해 ‘바이든’이냐 ‘날리면’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고 치자. 그래도 ‘이xx’라는 표현은 감출 수 없다. 대통령실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xx’란 표현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도 논란의 대상이다. 맥락상 미국 의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미국 의회 대신 한국 야당을 선택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고 일갈했다.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말인즉슨 틀린 게 아니다.  


한 번 더 양보해 대통령실의 해명이 옳다 해도 야당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가? 경솔하고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의 말처럼 검사생활 10년 하면 사석에서 ‘이xx, 저xx’라는 말이 입에 붙기 때문에 대통령의 평소 입버릇에서 나온 말인데 (저렇게 가혹한 비판을 받는 게 대통령 입장에서)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지만 (MBC 시선집중) 이것도 변명은 되지 않는다. 무조건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반응은 적반하장이다. MBC와 야당을 공격하고 있다. 진상조사까지 거론했다. 진상조사를 누가 할 것이며 또 무슨 수로 한다는 말인가. 


2.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 필요 


사과할 경우 가뜩이나 여론조사 지지율이 낮은데 찐 지지층마저 이탈하는 것을 우려해 사과 대신 공세를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해석이 옳다면 대통령실의 생각이 국민을 개돼지를 여기고 있거나 또는 핵심 지지층만 가지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 둘 중의 하나다. 둘 모두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 국민이 지난 일을 금방 잊어버리는 개돼지가 아닐뿐더러 핵심 지지층에만 의존한 국정운영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사실을 바로 직전 정권이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시간을 끌수록 더 큰 문제가 된다. 사과도 잘해야 한다. 기술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는 공개 사과의 목적은 국민의 분노를 줄이고, 용서를 받는 것인데 잘못된 사과로 오히려 분노를 키우는 일이 종종 있다며,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 사과의 정석을 제시한다.(한겨레, ‘사과의 정석’) 비단 이번 경우만이 아니라 공직자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다. 


정석 1. ‘미안하다’는 말은 정확히 말하면 사과가 아니다. 유감의 표시이자 사과의 시작일 뿐이다. 책임의 인정과 보상책의 제시가 포함되어야 한다.


정석 2. 사과할 때 ‘그게 잘못이라면 또는 그렇게 받아들였다면’과 같은 ‘가정문’을 쓰지 말라. 이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정석 3. 잘못의 크기가 5 정도라면, 보상이나 극복책은 7~8을 제시하라. 잘못하고 나서 들키면 그때 ‘그만큼만’ 되돌려 놓겠다는 것은 아무도 용납하지 않는다.  


정석 4. 이슈를 자신의 입장보다는 여론의 맥락에서 판단하라. ‘절차상’ 문제가 없다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로 사과자의 입장에서 이슈를 판단해서는 더욱 궁지에 몰린다. 


정석 5. 사과의 수위를 ‘내부자’와 논의해 결정해서는 안 된다. 부하 직원과 대책을 논의할 경우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과의 정석에 비춘다면 이번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할지 그려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기술적으로 좋은 사과가 가장 좋은 위기탈출 방안이다. 국민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사과해야 한다. 당연히 ‘바이든’과 ‘날리면’ 사이의 논란 그리고 ‘이xx’의 대상에 대한 논란을 끝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 진실을 잘 알 것이다. MBC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박진 장관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야당의 공세는 억지에 가깝지만 이번 사태를 키우는데 큰 책임이 있는 대통령실은 개편해야 한다. 대통령의 사과 없이 대통령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지만 사과와 더불어 대통령실을 개편하는 것은 사과의 진정성을 강화시켜줄 것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교육부 장관,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인선 결과 발표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교육부 장관,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인선 결과 발표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


3. 대통령 문제 정무판단 오류 탓…비서실장 교체 검토해야


과연 대통령이 사과로 이번 사태를 수습할지 여부도 불확실하지만 이번  사태를 키우는데 적잖이 기여한 대통령실을 그대로 둔다면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지지율 폭락을 마주하고 추석 휴가에 들어갔을 때 많은 국민과 언론은 대통령실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상했다. 정부 출범 초기 발생한 인사 참사, 대통령이 연속된 실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징계를 둘러싼 여권의 내홍 등 집권 초기 윤석열 정부의 문제는 대부분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실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50%를 넘어섰던 지지율이 거의 반토막이 나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것이 통상의 정치문법이다. 그러나 홍보수석의 교체와 정책기획수석의 신설, 그리고 소위 윤핵관이 집어넣은 비서관 및 행정관 수십 명을 솎아내는 것으로 끝났다.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석들은 모두 자리를 보전했다.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크게 경세가형, 정무형, 관리형, 측근형의 네 가지 유형이다. 대통령의 능력이나 장단점, 재임 시기에 따라 거기에 맞는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면 경세가형을, 정치경험이 부족하거나 국회관계가 중시하면 정무형을, 대통령이 임기초반을 지나 국정운영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면 관리형을, 임기말 퇴임을 준비할 때는 측근형을 임명했다. 특히 87년 이후에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초대 비서실장으로 정무형을 선택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과 정치 경험이 모두 부족하다. 그렇다면 경세가형이나 정무형 비서실장을 임명하는 것이 맞다. 부득불 경세가형 비서실장을 임명할 수밖에 없는 경우 유능한 정무수석을 임명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 김대기 실장은 경제관료 출신이다. 역대 관료출신 비서실장은 대부분 관리형 실장이었다. 잘못된 선택이다. 이번 비속어 파동을 비롯해 지금 대통령 주위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이 정무 판단오류에 기인한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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