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873611&PAGE_CD=ET001
주민 7만명 대피시킨 독일, 우리 군은 부끄럽지도 않나
[김형남의 갑을,병정] 강릉 낙탄사고, 장병들은 대피시켰을까... 동문서답 국방부
사회 김형남(khn8911) 22.10.20 13:22ㅣ최종 업데이트 22.10.20 13:22
▲ 현무미사일 낙탄사고가 발생한 강릉 공군 제18전투비행장 정문 전경. ⓒ 국회사진취재단
참사는 하루아침에 터지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명제다. 사고는 몇 번의 요행과 다행을 지나친 틈을 비집고 터진다. 그리고 지난 10월 4일, 강릉에서 터진 현무 미사일 낙탄 사고의 전후 과정에서 다시 그 틈을 만났다.
낙탄 사고가 벌어진 뒤로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문제는 군이 사고 사실을 인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4일 밤 11시 경에 발사한 미사일이 공군 강릉 비행단에 떨어졌지만, 국방부는 이튿날인 5일 오전 7시가 되도록 관련한 보도는커녕, 아무런 안내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감춰진 낙탄 사고
그나마 오전 7시에 나간 보도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는 사격 훈련을 성공리에 마쳤다는 황당한 내용이었고, 사고와 관련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분 뒤 사고 사실이 최초 보도되었는데, 그건 사고 유무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국방부에 질의해 답변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우리 군이 침묵한 8시간의 시간 동안 강릉 주민들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큰 불이 나고 무언가 터지는 영상을 공유하며 불안에 떨었다. 훈련을 하다 불발탄이 떨어졌다는 설, 발전소에 불이 났다는 설, 아무 일 없는데 조작된 영상이 돌고 있다는 설, 심지어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는 설까지 갖가지 추측만 난무할 뿐이었고, 불안과 혼란의 틈새에는 국가도, 정부도 없었다.
낙탄 사고가 터진 날은 때마침 국정감사 초입이었다.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국회의원들과 언론의 물음표가 연일 이어졌다. 군은 처음에는 미사일이 백사장에 떨어졌다고 했다가, 골프장에 떨어졌다고 말을 바꿨다. 사건으로부터 3일 뒤인 7일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현장 방문을 위해 강릉 비행단을 찾았지만 군은 부대 문을 걸어 잠그고 막았다. 의원들의 현장 방문은 그로부터 5일이 지난 12일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탄두가 떨어진 곳은 골프장이 맞았지만 추진체가 떨어져 불길이 인 곳은 유류저장고 내 풀밭이었다고 한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열흘도 지나지 않았지만 사고 위치는 세 번이나 바뀌었다.
현장 방문을 마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미사일 추진체가 떨어진 곳에는 수만 ℓ의 기름이 보관된 대형 유류 저장고가 있었고, 낙탄 지점 10m 거리에는 유류고의 밸브와 다수의 유류관 시설이 있었다고 했고, 화염 지점에서 130m 옆에는 병사들이 자는 생활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화재 폭발이 일어났다면 큰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더불어민주당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병주,김영배,송옥주 의원이 12일 오후 지난 4일 밤 현무미사일 낙탄사고가 발생한 강릉 공군 제18전투비행장을 찾아 당시 현무-2C 탄도미사일의 탄두가 추락해 구덩이가 만들어진 골프장 앞에서 군 관계들로 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군에서 최초 발표했던 낙탄지점이 공군 골프장 만이 아니라 400m떨어진 유류저장고(POL)에도 추진체가 떨어져 화재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 국회사진취재단
유감스럽다는 국방부
그러자 국방부는 근거 없는 부적절한 주장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유류고는 적의 포격이나 폭탄 투하에도 견딜 수 있게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어 낙탄으로 폭발할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피해가 발생했다면 은폐할 이유도 없고, 은폐할 수도 없다며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국방부의 주장처럼 유류고를 견고하게 구축해 대형 화재의 가능성이 없었다는 점, 현무 미사일의 특성상 탄두가 불발탄이 되면 추진체로부터 분리되어 터지지 않는다는 점, 그러므로 불발탄이 터져 대형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 모두 사실일 수 있다.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 이후의 대처는 국방부가 열거한 사실관계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두고 사건 발생 직후 불발탄 해체 이전까지 부대 내 생활관의 장병들은 대피시켰는지,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 안내는 하였는지, 화재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유류고의 안전 확보를 위한 추가 조치는 하였는지 등은 '사고 발생 가능성'과는 결이 다르다. 그리고 국민들이 궁금해 하고,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대처가 잘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것이다. 유도탄이 불발탄이 되었을 때 폭발 할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아니란 것이다.
국민과 언론이 지적하는 문제는 대처에 관한 것인데, 군만 '떨어진 미사일은 터지지 않고, 유류고엔 불이 붙을 수가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당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조치가 없었다면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갈지 이야기해보자는데 군은 동문서답을 한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왜 군을 흠집 내고 생트집을 잡냐는 식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대비는 독일처럼
2017년 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건설공사를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의해 투하된 불발탄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는 불발탄을 해체하던 날, 7만 명의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만에 하나는 이렇게 대비하는 것이다. 수십 년 땅에 묻혀있다 나온 불발탄을 처리할 때도 이러한데, 방금 떨어진 불발탄을 두고 1시간을 지켜본 뒤 사고 위험성이 없어 보여 미사일 발사 훈련을 이어갔다는 군 지휘부의 해명을 보며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그래선 안 되겠지만 군사 훈련을 하면서 불발탄이 생기고, 미사일이 목적하지 않은 곳에 떨어지는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불발탄이 터지지 않고, 떨어진 곳이 무사태평하리란 확신은 아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지금의 사고 대응 체계대로라면 국민들은 늘 요행과 다행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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