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6639

 

누가 대한민국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방해하나

윤 대통령 약속과 다른 행안부 장관의 발언... 국민이 진정한 자유 누릴 수 있길

22.10.31 17:57 l 최종 업데이트 22.10.31 18:39 l 장에스더(echang0331)

 

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29일 밤 10시22분경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해 1백여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다.

▲  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29일 밤 10시22분경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해 1백여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다. ⓒ 권우성

 

"이게 무슨 나라야!?"

 

30일 아침, 남편의 가시 돋친 외마디에 잠이 깼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남편의 그 말은 토요일 밤 이태원에서 벌어진 처참한 사건에 대한 원망과 비통함을 가장 짧게 표현한 외침이었다.

 

용산에 거주 중인 필자는 참사가 벌어진 날 밤새 엄청난 양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불안과 공포를 느끼다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남편의 날 선 목소리 뒤로 참담한 뉴스가 모든 채널에서 흘러 나오는 것을 보며 현실감 없는 황망함에 빠졌다.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적인 도시가 된 서울의 한복판, 전쟁이나 테러, 총기 사고도 없는 이곳에서 꽃 같은 청춘들 154명이 한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그 누가 선뜻 믿을 수 있겠는가.

 

필자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학생이었다. 수십만의 인파가 곳곳에 자발적으로 모여 축제를 즐기는 경험을 해 본 당사자라는 말이다. 핼러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던 대규모 축제였던 20년 전이었지만 이런 참담한 사고는 없었다. 그런데 2022년에 자유를 즐기던 청춘들이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니 어른이라 불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니 더욱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존재 이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물론 자유를 누리는 개인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책임을 기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수일 전부터 각종 미디어를 통해 상당한 인파가 이태원이라는 특정 구역에 몰릴 것이라고 예고되었고, 이러한 현상이 지난 수년간 꾸준히 있어왔다는 공지의 사실은 개인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하리라는 신뢰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결집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국가가 무슨 책임을 지냐며 심지어 그 문화와 모임 자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돌려 참석자들을 질타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런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주최자가 없는 상황에 대형 인파가 밀집한다면 그에 대한 관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정부 또는 관련 지자체의 기본책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고, 그 세부적인 실행을 우리는 국가의 사회적 시스템이라 부른다.

 

특정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일반 국민,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활동할 때, 그러한 일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가 보호해 준다는 신뢰는 주권국가의 시민 모두가 가지는 보편적, 내재적 신뢰이며 그 신뢰는 안전관리 시스템의 작동으로 담보되어야 한다.

 

지난해 연말,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현장을 둘러보며 늦은 밤 귀가 길이 두려워서는 안된다며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필자는 지금 윤 대통령이나 정권을 단순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말이 정답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늦은 밤 어두운 길을 자발적으로 걷는 시민의 안전을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공개된 장소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의 안전을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해당 지자체, 즉 내가 거주하는 용산구에 대한 비판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용산구의 경우 매해 반복되는 핼러윈의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있었고, 이태원의 좁은 골목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으며,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가 가져올 부수적 상황도 예측할 수 있었다. 즉,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의 특수성을 잘 아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아니, 최소한의 시스템도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예년과 큰 차이가 없어서 우려할 정도 아니었다"라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은 필자의 분노 버튼을 눌렀다. 유사한 상황에서 과거에 사고가 없었으니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문제가 없다는 장관의 인식은 국민의 안전은 정부의 무한 책임이며 과할 정도의 선제적 조치가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상민 장관은 국민의 안전을 우연과 행운의 연속성에 걸고 있다는 말인가? 정부 내부의 이런 인식 부조화가 결국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국민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답변하는 이상민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정부의 가장 강력한 이념은 자유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한 필자는 자유가 좋다. 그 자유에 뒤따르는 개인의 책임도 환영이다. 하지만, 그보다 선결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자유이길 바란다. 아무런 시스템도 통제도 관리도 없는 자유는 결국 절망으로 끝이났다. 

 

바라건대, 시간이 흘러 이 참사의 폭풍이 잦아들때쯤 책임자 처벌에만 혈안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곳곳의 시스템이 회복되고, 작동하고, 신뢰받는 변화가 일어나길 기도한다. 국민 모두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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