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876673


'이태원 압사 참사' 일본 반응... 정말 착잡합니다

[박철현의 도쿄스캔들] 애도와 책임소재 규명 동시에 진행돼야

사회 박철현(tetsu) 22.11.01 04:51ㅣ최종 업데이트 22.11.01 08:47 


▲ 10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헌화한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 있다. ⓒ 연합뉴스

 

이태원에서 참담한 사고가 터졌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 154명이 이유도 모른 채 압사 당했다. 어떤 이들은 왜 그런 곳에 놀러갔냐며 피해자들의 경솔을 탓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언제나 불시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으니 그런 소리는 이제 그만 들었으면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추도와 애도의 시간이니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나중에 하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책임 소재는 사고가 터진 직후부터 줄기차게 추궁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아무런 죄 없는 시민들이 놀러 나갔다가 150명 넘게 명을 달리 했는데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건 아무 것도 하지 말자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고인들에게 대한 애도와 추모를 하면서 동시에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제대로 된 시스템의 확립과 그 실행을 강제해야 한다.


일본은 달랐다

 

▲ 지난 10월 30일 일본 도쿄의 시부야 거리를 핼러윈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도쿄 시부야는 핼러윈의 성지로 유명하다. 핼러윈 데이는 10월 31일이지만 10월 들어서면 핼러윈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시부야뿐만이 아니다. 가부키초, 롯본기, 심지어 우에노까지 도쿄의 웬만한 번화가 상점들은 핼러윈 기간을 대목으로 여기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핼러윈을 홍보하기도 한다. 당연히 핼러윈이 다가오면 해당 지자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어느새 '시부할로'(渋ハロ)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해당기간 동안 100만 명이 몰린다는 시부야구의 대응은 눈여겨볼 만하다. 시부야의 핼러윈이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2018년에 있었던 '트럭전복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술에 취한 일군의 무리들이 폭도로 변해 노상에 정차돼 있던 1톤 트럭을 전복시키고 다른 취객들과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 그 와중에 여성에 대한 성추행, 도촬 등도 행해져, 20-30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다.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시부야구는 핼러윈 기간과 연말연시에는 노상음주를 금지하는 조례안을 새롭게 제정하고, 경찰과 게이오버스 주식회사 등과 협의해 행동통제에 나서기로 했다. 그 때까지 100여 명이 투입됐던 경찰인력이 2019년부터는 300명 규모로 늘어났고, 폴리스라인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제는 핼러윈의 명물이 된 'DJ폴리스'의 위력도 간과할 수 없다. 'DJ폴리스'는 2013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당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 등장한 것으로, 일본축구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서포터들이 길거리에서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질서유지 명목으로 도입되었다.


집회 인솔용으로 개조된 트럭에 확성기를 든 젊은 경찰이 올라가 질서유지를 촉구하던 도중에 "나 역시 일본축구팀의 본선진출이 너무나 기쁘다" 등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한 것이 서포터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시부야 경찰서는 'DJ폴리스'를 2015년, 2016년 핼러윈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확실한 성과를 거뒀다.


반면 'DJ폴리스'가 투입되지 않았던 2018년에는 트럭전복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 'DJ폴리스'가 있었다면 폭도화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NHK의 보도(10월 30일자)에 따르면 올해 "도쿄 경시청은 한국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고를 접하고 'DJ폴리스'의 배차 대수를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지난 10월 30일 일본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서 경찰이 지휘차에 올라 할로윈 인파를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각 통신사 기지국과의 협업도 돋보인다. 기지국의 통행량 데이터를 제공받아 과거 동일 시간대에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중심으로 폴리스라인과 'DJ폴리스'를 투입시켜 분산을 시키거나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혼잡률 개념을 이용한 행동통제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원래 이 개념은 대중교통의 혼잡도, 특히 지하철의 혼잡률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핼러윈처럼 길거리 행동통제에도 적용된다. 시부야의 경우를 적용한다면 1평방미터(가로 세로 각 1미터)의 경우 4명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그 이상이 이미 들어찼다고 판단되면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해당 혼잡지역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시민들의 불평과 불만이 쏟아진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전국구 지명도를 지닌 'DJ폴리스'의 유머러스한 읍소 전략으로 시민들도 순순히 따른다. 이는 'DJ폴리스'가 활약했던 2015년과 2016년 그 효과가 증명됐다.


그 외에도 시부야구는 만남의 장소로 유명한 하치코 동상과 센터 출입구에 갖가지 주의를 환기시키는 표어 및 간판을 게시한다. 또한 게이오버스 및 도에이버스와 협의해 핼러윈에 인파가 몰리는 지역은 무정차 구간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아예 시부야구가 주최자로 이름을 올린 '버츄얼 할러윈'도 실시한다. 휴대폰 통신사인 KDD와 협업해 시부야의 거리를 재현한 '버츄얼 시부야'를 만들어 갖가지 핼러윈 이벤트를, 굳이 현장을 오지 않더라도 방 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https://vcity.au5g.jp/shibuya )


시부야뿐만 아니라 우에노에서 5년 동안 술집을 운영했던 내 과거를 되돌아보더라도 번화가 지역의 핼러윈 축제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불상사가 일어난다. 사람이 많이 모일 뿐더러(군중심리) 술에 취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컨트롤 할 수 있는 곳이 행정기관이다. 실제로 10월이 되면 우에노의 관할지역인 다이토구와 우에노 경찰서 및 소방서 공무원들이 유흥업소들을 일일이 돌며 주의사항 및 비상연락망을 배부했다. 길거리에는 평소보다 많은 경찰인력이 10월 내내 상주해 있었다. 혹시 모를 트러블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초동대처를 위해서다.


행정기관과 언론의 존재 이유

 

▲ 지난 10월 30일 일본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서 경찰들이 핼러윈 인파를 관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축제화 된 핼러윈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발생할 확률이 높은 불상사를 대비하는 것이 지자체 등 행정기관의 의무이다. 그런 거 하라고 세금을 내는 거다. 그런데 한국의 이태원 압사 참사 사고의 경우, 지자체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미 다년간의 경험으로 인해 이태원은 한국의 핼러윈 명소로 자리 잡았다. 당연히 귀찮을 정도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대비를 했어야 한다.


언론의 책임도 피해갈 수 없다. 먼저 주의 환기(예방)를 등한시 했다. 이번 칼럼을 쓰면서 NHK, TV아사히 등 일본 언론을 검색해보니 핼러윈 데이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사꼭지들이 오백여건 이상 검색됐다. 사후 분석 역시 마찬가지다.


10월 30일 하루 종일 일본의 뉴스정보프로그램은 이태원 사고를 다루었다. 사고가 발생한 해밀턴 호텔 옆 골목 경사와 좁은 도로 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행동/이동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한국 언론이 사망자 수를 실시간으로 카운팅하며 자극적인 SNS의 사진, 현장 경험자들의 감정적 인터뷰를 올리고 있을 때 일본 언론이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를 당부하며, 나아가 사망자들을 추도하는 모습을 보는 내 심정이 얼마나 아이러니했는지 모른다.


나아가 해당 지자체 행정기관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에 있는 장관의 언행은 귀를 의심케 한다. 이번 사고를 불가항력에 의한 천재지변 급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는 자신이 책임을 지지도, 질 이유도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을 못 진다면 행정기관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인가.


주최 측이 없었기 때문에 불가항력이란 말도 어불성설이다. 용산구청의 회의자료 등에 따르면 10만 정도가 모일 것이라 이미 예상했다. 이 말은 곧 예상을 하긴 했는데 대비는 소홀히 했다는 뜻이다. 태풍 등의 천재지변이 올 것이 예상되면 대비하면서, 주최 측이 없는 무질서한 상황과 10만에 달하는 인파가 모일 것이라 예상해놓고 대비를 소홀히 했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애도를 할 시간이라면서 그 외의 다른 의견들을 정치적 공방으로 몰아가는 행태 또한 이해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나?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원인과 책임 소재를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현재 가장 가슴 아파할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길이 아닐까?


고인이 된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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