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690
“핼러윈 변질” 외신 왜곡하며 피해자 탓하는 한국 언론
기자명 박재령 기자 입력 2022.11.02 17:07
일제히 WSJ 인용하며 한국 핼러윈 문화 지적했지만
전문가들 “변질은 집어넣은 내용…사고 본질 가린다”
▲ 2021년 10월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 연합뉴스
WSJ, 이태원 참사에 “한국에선 젊은이들 클럽 가는 날로 변질” (31일자 동아일보 기사)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일부 언론은 ‘외신이 한국 핼러윈 문화를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예방법을 찾아야 하는 언론이 피해자를 탓하는 듯한 보도를 낸 것이다. 기사에는 피해자에게 일차 책임이 있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하지만 실제 원문을 보면 외신은 ‘지적’이 아닌 ‘설명’을 하고 있었다.
▲ WSJ가 한국 핼러윈 문화를 지적했다는 보도들. 네이버 갈무리
문제의 보도들은 모두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사를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 ‘WSJ “아이들이 사탕 얻는 핼러윈, 한국선 클럽 가는 날 됐다”’ 기사에서 “한국 내 핼러윈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WSJ 보도를 근거로 삼았다.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31일 WSJ의 보도를 인용해 ‘문화가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다. 문화일보,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매일경제 등이 똑같이 WSJ를 인용하며 같은 내용의 보도를 냈다. 이들은 ‘변질’, ‘변모’, ‘지적’, ‘꼬집었다’ 등 부정적 단어로 국내 핼러윈 문화를 지칭했다.
이들에 따르면 WSJ는 우리의 문화를 ‘비판’한 것처럼 보인다. 원래는 아이의 문화인데 한국 젊은이들이 변질시켰다는 식이다. 동아일보는 WSJ를 인용하며 “한국에서 핼러윈은 어린이들이 사탕을 얻으러 가는 날이 아니다”라며 “20대 안팎의 젊은이들이 핼러윈 축제를 특유의 복장으로 치장한 채 클럽에 가는 주요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지난달 31일 ‘“아이들 사탕 받는 핼러윈, 한국선 클럽 가는 날” 외신의 지적’ 기사에서 “애초 핼러윈은 한국과는 상관이 없는 날이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어린이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에까지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며 “한국 젊은층에게 유흥 문화로 정착 중인 형태와 달리 미국 등 유럽에서 핼러윈은 아이들이 유령이나 괴물 의상을 입은 채 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으러 가는 명절”이라고 했다.
▲ 30일 조선일보 기사의 댓글.
이들 기사에서는 피해자를 탓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30일 조선일보 기사 ‘WSJ “아이들이 사탕 얻는 핼러윈, 한국선 클럽 가는 날 됐다”’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이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참석자 본인에게 있음은 분명하다”였다. 그 뒤로도 “이번 사태로 서양 악마의 축제를 멈추길 바란다”, “틀린 말은 또 아니다” 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반응이 나왔다.
▲ 29일자 WSJ 보도.
실제 외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기사는 WSJ의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서울 핼러윈 행사에서 최소 151명이 사망했다(At Least 151 Killed in Crowd Crush at Seoul Halloween Celebration)’ 기사다. 해당 기사는 현장 소식부터 당국의 대처, 해외 정상 반응 등을 짚는 ‘종합기사’로, 한국 문화를 주제로 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한국 문화를 언급하는 부분은 2줄 정도다. 내용을 보면 ‘지적’이 아닌 ‘설명’이다. 풀어보면 WSJ는 “한국에서 핼러윈은 아이들이 사탕을 주고받는 날로 광범위하게 기념되지 않는다(In South Korea, Halloween isn’t widely celebrated as a candy-grabbing holiday for children)”며 “최근 몇 년동안 20대 안팎의 젊은이들과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핼러윈을 코스튬을 입은 클럽 이벤트로 만들었다(Twenty-somethings and other partygoers in recent years have made Halloween into a major clubbing event, with many decked out in costumes)”라고 했다. ‘변질’됐다거나 한국 문화를 ‘꼬집은’ 문장은 전무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냥 한국에서 이렇다라는 스트레이트 기사다. 변질됐다는 것은 집어넣은 것”이라며 “핼러윈 행사가 변질되었다고 보도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게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할로원 커스튬에 나타난 전통 모티브의 유형 및 상징적 의미 (2012, 유지헌)’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1920년대부터 대학교 신입생 환영 문화로 핼러윈 분장을 했고, 1980년대에는 카니발적 분위기가 강조되면서 거리행렬 문화가 득세했다. 논문은 “핼러윈이 화려한 오락으로 묘사되면서 어린이 중심에서 젊음의 인증, 차별화 기능으로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만 어른들이 ‘축제’를 즐기는 것도 아닌 셈이다.
▲ 뉴욕 맨해튼 핼러윈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자료=할로윈 데이의 코스튬 놀이 논문)
이택광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미국도 대도시 위주로 퍼레이드를 하고 대학교에서 축제를 연다”며 “크리스마스하고 똑같다.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고 어른들은 술과 클럽을 즐기는 것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을 의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보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보도들이 본질을 가리는 ‘잘못된’ 보도라고 강조했다. 담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핼러윈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와 무관하다. 얘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그런 보도들은 진짜 다뤄야 하는 부분들을 가리게 된다. 의도도 의심해 봐야 한다. 불순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가 다른 것처럼 원래 축제라는 것 자체가 수용자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다”라며 “그것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다. 궁극적으로 이번 참사는 국가의 책임, 행정수반의 책임인데 이것은 눈에 안 보이니까 개인에게 경험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대중에 경험시켜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인데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있다”며 “지금 보도들은 소셜미디어와 다를 바 없는 식의 보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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