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7541
영국 압사 참사 생존자가 한국에 보낸 편지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힐즈버러 생존자이자 재난관리전문가 앤 에이어 박사가 보낸 위로와 연대
22.11.04 07:07 l 최종 업데이트 22.11.04 07:07 l 이주연(ld84)
1989년 4월 15일, 영국 리버풀FC 팬에게는 축제와 같은 날이었다. FA컵 준결승전 축구 경기가 힐즈버러 구장에서 열렸다.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타의 경기였다. 많은 관중이 몰렸다. 그러나 통제를 해야 할 경찰이 사람들을 계속 입장시켰다. 3만 9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 5만 3000명이 넘는 축구 팬이 몰렸다. 사람에 밀리고 밀렸다.
결국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구장 내 철제 보호철망과 인파 사이에 낀 리버풀 팬 94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후 후유증으로 3명이 더 세상을 떠났다. 766여 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사고 직후 경찰은 '극성 리버풀 팬'이 경기장에 난입해 발생한 사고라고 발표했다. 술에 취한 리버풀 팬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도 했다. 이에 유가족과 생존자, 리버풀 팬들은 긴 싸움을 시작했다. 27년이 지난 2016년 4월에 이르러서야 영국법원은 경찰의 과실을 인정했다. '경찰의 과실 때문에 무고한 관중들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 힐스버러 추모공간이 리버풀FC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에 마련돼있다. ⓒ Ken Biggs
판결에 따르면, 경찰이 출입구를 개방해 버린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경찰은 관중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저지선도 갖추지 않았고, 응급 치료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 많은 사망자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정부가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축구팬들 잘못'이라고 책임을 덧씌웠던 사실 역시 드러났다.
앤 에이어(58, Anne Eyre) 박사는 이 '힐즈버러 참사(Hillsborough disaster)'의 생존자다. 참사 당시 25세였던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재난 관리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았다. 사회학자가 된 그는 현재도 영국의 재난참사 피해자 연대 '참사 행동(Disaster Action)'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유족과 생존자,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냐'고 물었다. 최악의 참사를 겪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하냐고도 물었다. 그는 긴 편지로 답을 보내왔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영국에서 온 편지
▲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는 모습. ⓒ 권우성
이것은, 힐스버러 참사의 생존자가 한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선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제 마음과 기도, 애도를 전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음을, 당신의 깊은 슬픔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이 편지를 준비하면서 '유족·생존자·한국 국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을 고통을 표현할만한 말은 없음을 알지만, 재난과 그 후유증을 겪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위로와 지지를 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것에 대한 성찰들이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생존자입니다
저는 1989년 영국의 힐즈버러 축구 경기장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군중 사고의 생존자입니다. 당시 나는 25세였습니다. 내 팀인 리버풀의 컵 준결승전 승리를 지켜보는 즐거운 하루가 됐어야 했지만, 그 날은 나와 그곳에 함께 있던 친구들, 우리 가족들, 그리고 더 넓은 지역사회 모두에게 최악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적 비극이었고 우리 사회 공동체의 양심(마음)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습니다.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있었던 사건을 보면, 힐즈버러 참사와 소름끼치는 유사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좁은 지역에 매우 많은 사람들(매우 많은 젊은이들)이 모였고, 군중 관리에 실패해 결국 육체적, 감정적으로 큰 인명 피해 및 부상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사회 공동체의 양심(마음)을 흔들어 놓았죠.
비록 그 당시에는 소셜 미디어가 없었지만, 우리의 재앙은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포착됐습니다.(토너먼트는 매우 핵심적인 국가 행사입니다.) 그래서 초기 뉴스와 루머가 더욱 빠르게 퍼졌죠. 지난 주말 한국의 재난으로부터 보고된 초기 보고서와 새로운 통계가 발표되는 것을 보자, 곧장 힐즈버러 참사 당시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의 저처럼, 이 편지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깊은 충격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내게 일어난 일이 진짜라는 것을 깨닫는 데 적어도 3일이 걸렸습니다. 나중에, 이런 트라우마로부터 우리 뇌가 우리를 보호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원, 조문, 꽃, 그리고 다른 추모와 의례의 메시지들은 처음 며칠 동안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나를 붙잡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재난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충격이 사라지자, 현실에 대한 대안적인 이야기들이 뉴스 및 다른 매체에서 공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책임이 없었지만, 당국과 그곳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우리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재난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난은 예측 가능하고 예방 가능하며, 심지어 예견된 것이라고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또 한번의 충격을 주었어요. 단순히 안전에 대한 영역 뿐만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직하게 공개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영역, 그리고 이에 대한 그들의 역할까지 저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경찰 등의 역할이 빠르게 주목 받고 있을 겁니다. 참사 초기단계에는 상충되는 주장들로 정치적인 어젠다를 만드는 무대가 손쉽게 만들어진다는 걸 저는 이제야 알겠어요.
그 당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 즉 그곳에 있으면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증명할 힘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접근할 소셜 미디어도 없었고, 우리의 계정과 이미지를 공유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몇 주 전 발생한 인도네시아 경기장 참사와 마찬가지로, 지난 주말 여러분들은 그런 접근(소셜미디어 등)이 가능했지요. (여러분은) 정보와 증거를 신속하게 수집, 분석 그리고 공유해 무슨 일이 언제 있었는지 증명할 수 있어요. 그리고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힐스버러 참사 직후, 우리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처음 며칠과 몇 주는 비난의 목소리가 바뀌고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 때 명백한 진실이 무엇인지, (참사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됐는지 소리치고 싶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은폐가 이뤄지고 있었거든요.
생존했다는 죄책감... 그러나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제게 최악의 지점은, '생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시작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반복할 수 없는 고통의 장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공포가 사방에 펼쳐졌을 때,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무작위로 일어났을 때, 당신이 움직일 수조차 없음에도 다른 사람을 구해야만 한다고 느꼈을 때, 혹은 당신 자신만을 구할 수 있었을 때...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고 그 상황을 계속 떠올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상황을 겪고 있다면... 비록 압도적으로 고통스럽게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정상이고, 이런 생각과 감정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통제하지 못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때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쓰지 마세요
이번 참사와 같은 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군중 패닉' 또는 '우르르 몰림' 등의 상처 주는 부정확하고 부적절하면서 틀린 용어가 이렇게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또한, '군중 범죄'와 같이 느슨하게 정리된 개념이 얼마나 많은 왜곡된 인식을 형성하는지도요.
이와 같은 표현은 이같은 압사 참사에 휘말린 사람들을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암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확하며, 의도했건 아니건 피해자들에게 책임감과 죄책감을 씌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군중 관리 전문가들이 이같은 용어 사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게으른 언론인과 무지한 논객들을 질책해도 괜찮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다면, 숙고해보길 바랍니다. 이같은 용어 사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이해하길 바랍니다. 제발, 이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마세요.
힐스버러 참사 뒤 나를 도운 것
▲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글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 권우성
힐스버러 참사 이후 초기 몇 주 동안, 그리고 오늘날에도, 저를 도와준 것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믿어주며 그저 들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말할 것을 강요받지 않을 때, 제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이뤄졌습니다.
당시 참사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넘어, 저는 본능적으로 다른 생존자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생존자들과 저는 손쉽게 특별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고 가끔은 강하고 독특한 우정을 느끼기도 했죠. 또한 이들은 힐즈버러 생존자 지원 연대(HSA)의 모토와 같이 저를 이해해 주어서 제가 참사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단결은 힘입니다' 동료 지원(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은 확실히 저를 구했고, 지금도 저는 그들과 단단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생존자 지원 그룹 회의(HSA)와 왓츠앱 그룹을 통해 상호 지원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힐스버러 이후 초창기에는 대화가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 날 이전에 우리가 어땠고, 그 날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공유할만한 자신만의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사건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었고,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각자의 그림을 공유하는 것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이 작업은 많은 혼란을 갖고 있을 때, 스스로 의심이 들 때, 진실이 엇갈릴 때 특히 도움이 됩니다. 저는 다른 생존자들에게 '말할 준비가 되어있고 이야기하고 싶다면 하세요.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 역시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준비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생존자와 유족 사이에는 서로 다른 요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릅니다. 당신이 옳다고 느끼는 바(붙잡고 있는 게 도움이 되지 않고 억누르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를 따라 가세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와 생존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얘기나눈 것이 도움이 됐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더라도요.
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비극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비극적이고 광범위한 참사를 공식적으로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치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다'라고 말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극복해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당연한 추모 기간 중 그들은 조급해지고, 비판적이게 되거나 그들의 현실로 인해 그냥 고약해지기도 하죠. 힐즈버러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까지 나와 함께 살아있고, 이는 내가 나라는 어른이 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건 직후 그리고 가장 암울했던 순간에는 이 모든걸 이겨낼 것인지, 이겨낼 수 있을지, 그리고 이겨내야 하는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면 결국 이겨냈죠.
결국, 저는 이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하게 되었고 그 경험들은 저에게 보상이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재난 관리를 전문으로, 집단 트라우마에 영향 받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4·16재단의 가족들을 포함해 다른 비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유족들의 가공할만한 회복력과 결의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다른 비극(세월호 참사를 뜻함)과 관련한 진실과 정의를 위해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모든 가족에게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합니다. 지난주에 일어난 참사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트리거'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저는 재난에 대처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친절함, 정직, 그리고 솔직함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치료사들은 저를 도와줬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생존자로서의 죄책감을 이해하고 진실을 확고히 하고, 재난 관련 캠페인을 할 수 있게 힘이 나도록 해준 것은 대부분 주변의 동료들이었습니다.
힐스버러 이후 정의를 위한 긴 여정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생존자들은 참사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이 밝혀졌고, 그 진실은 독립적인 보고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참사 이후 초기에 우리를 비난한 것에 대해 경찰·정부·언론을 포함한 기관들로부터 솔직한 사과도 받았습니다.
힐즈버러 참사 그리고 또 다른 참사의 유족과 생존자 공동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기업 책임에 대한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힐즈버러 법'이라고도 불리는 현 의회 법안은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에 대한 정직·진실·책임의 법적 의무를 촉구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사랑과 지지'입니다
▲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 권우성
하지만 지금은, 기본에 집중해주세요.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해 사회적 지원을 받으세요. 이는 재난 이후 심리적 안정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유족과 생존자들, 둘 다인 사람들, 그리고 트라우마가 생긴 구조원과 조력자들에게 전합니다. 부디 본인을 챙기고 본인을 측은히 여기는 걸 가장 우선순위로 두시길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그들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과 안정감, 지지'가 가장 근본적인 지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주세요. 그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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