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46 

“정수장학회, 이름부터 바꿔 달으라”
2010년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 주식 반환 소송을 냈다. 2월24일 선고를 앞두고 유족들을 만났다. 그들은 박근혜 위원장에게 아버지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장학회 이름과 이사진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기사입력시간 [231호] 2012.02.22  08:37:18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2월8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374호. 법정에 선 김영구씨(74)는 까만 서류가방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내들었다.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2005.7.22-부일장학회 등 헌납.’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강제로 김지태씨의 재산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였다. 김씨는 정수장학회 주식 반환 소송의 원고 쪽 대표로 반세기 전 기억을 되짚었다. “1962년 수갑을 찬 채 아버님(김지태)은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 주식과 부일장학회 기본 재산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었다. 장남인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사라지면 당시 현장을 아는 사람이 없어지기에 신문에 응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공판에서는 “강제 헌납은 국가가 저지른 엄청난 범죄이다(원고 쪽 변호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는 재산 헌납이 강제라고 밝혔는데, 이 정도 증언 가지고 강압을 인정할 수 있나(피고 쪽 변호인)”와 같은 의견이 맞붙었다. 2월24일을 선고일로 지정한 염원섭 부장판사(민사 17부)의 말을 들으며 법정을 빠져나간 김영구씨는 담배부터 찾았다. 피고 쪽에서 김지태씨의 사생활 문제를 꺼내며 부정재산 축재자로 몰아붙이는 모양새가 불편한 듯했다. 연달아 담배 세 개비를 피우던 김씨를 이틀 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다시 만났다. 김지태씨의 삼남 김영주씨(67)도 함께했다. 

김지태씨 장남 김영구씨(오른쪽)와 삼남 김영주씨(왼쪽) 등 유족 6명이 정수장학회 주식 반환 소송을 벌이고 있다. ⓒ시사IN 백승기

김지태씨 유가족이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소송을 낸 것은 처음이다. 그전까지는 서울시교육청에 진정서나 탄원서를 낸 것으로 아는데.

김영주:정수장학회 관련 논의는 참여정부 때 활발했다. 2005년 국정원, 2007년 진실화해위에서 부일장학회 재산 등이 강제 헌납되었다고 인정했다. 국가 차원의 사과를 받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움켜쥔 사람은 내놓지를 않았다. 진실화해위 판단 결과가 강제성은 없지만, 그래도 국가기관에서 결정한 사항이라 정수장학회에서 받아들일 거라고 봤다. 그런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야당 탄압이라며 강경하게 나왔다. 참여정부도 야당 대표와 관련 있는 일이라 세게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가고 우리만 우습게 되어버렸다. 2007년 서울시교육청에 법인 개명 및 이사진 취임 취소 진정서를 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법으로 하겠다고 결정했다. 준비도 하고 타이밍도 보느라 2010년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세상에 알려진 건 <부산일보> 사태가 계기가 되었다.

김영구:<부산일보> 주식 100%를 강제 헌납하기로 한 뒤에도, 아버님은 <부산일보>에 새 윤전기를 가져다놨다. 그만큼 아끼는 언론사였다. 그런데 그 윤전기가 이번에 멈춘 거다. 완전 난장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면, <부산일보> 사장을 임명하는 정수장학회 자체가 엉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정수장학회 이사를 보면 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측근으로 채워져 있다. 정통성도 자부심도 없는 ‘장물 장학회’이다. 심지어 지금 정수장학회는 장학생 명단도 공개하지 않는다. 상청회·청오회 같은 장학금을 받는 이들의 모임은 박 위원장 조직이라는 의심을 산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정수장학회 문제는 자기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영구:최근 언론에 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인터뷰를 보면 최 이사장은 자신을 머슴이라고 말한다. 머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주인이 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이다. 최필립 이사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비서관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 재산으로 출연되어 만들어졌다. 자신이 이사장을 맡았고, 모든 일의 시작은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났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자식 된 도리다.

유족이 원하는 바는 뭔가.

김영주:소유권을 돌려받자는 목적이 아니다. 물론 억울한 면이 있지만, 우선 요구 사항은 ‘정수’라는 이름을 지우라는 것이다. 돈 한 푼 출연하지 않은 박정희·육영수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정수’ 대신 아버님의 아호인 ‘자명’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또 장학사업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

김영구:부당하게 빼앗긴 것을 되돌려주는 게 정의로운 사회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재산으로 받고자 하는 건 아니다. 아버님은 살아생전에도 장학회 재산은 당신의 것도, 우리의 것도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 

취재 도움:박소영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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