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20
박근혜, 그의 뒤에서 ‘가카 그림자’가 보인다
보수언론 ‘MB색깔’ 빼기 안간힘… 한미FTA 이슈 띄워 여론몰이 역공
류정민 기자 | dongack@mediatoday.co.kr 입력 : 2012-02-22 13:54:04 노출 : 2012.02.22 15:57:57
선거를 가르는 핵심은 ‘구도’이다. 여당 입장에서 ‘정권 심판론’은 최악의 구도이다. 여당이 정책, 인물에 공을 들여도 선거결과를 뒤집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권 심판론 프레임을 깨는 것은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지상 과제이다. ‘이명박 시대’에 달콤함을 공유했던 이들은 직감적으로 공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프레임 전쟁은 반전을 노리는 이들의 예고된 선택이다. /편집자 주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당명이라는 포장지를 바꿨다. 문제는 내용물이 그대로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당’에서 ‘박근혜 정당’으로 당 헤게모니 이동이 있었을 뿐이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국회 인준 부결 사태는 새누리당 실체를 드러냈다.
경향신문은 2월 10일자 <새누리당 실체 드러낸 조용환 재판관 부결>이라는 사설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뇌구조’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냉전·수구적 정당이 변화니 유연성이니 말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면서 “당명과 로고와 상징색을 바꾸고, 국회의원 오래 한 몇몇 사람이 금배지를 포기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강조한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이라는 약속이 결국 ‘정치적 수사’라는 시선은 새누리당 입장에서 치명적이다.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냉랭한 여론을 고스란히 떠안으면 ‘총선 패배’는 피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의 총선 선전을 기다리는 쪽은 여권만이 아니다. 수구·우익 진영도 그렇고, 보수언론도 그렇고 야권의 정권탈환 움직임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지난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보수언론이 4월 11일 19대 총선을 50일 앞둔 가운데 승부수를 띄웠다. 정권심판론이라는 최악의 선거 구도를 깨는 것이 그들의 선결 과제이다. 총선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여권과 보수신문이 한목소리로 ‘한미FTA’ 이슈를 띄우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2월 13일 한나라당 당명 개정을 확정하는 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여당일 때는 국익을 위해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한다고 해놓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2일 국회 한미FTA 강행 처리 이후 날치기 논란에 숨을 죽이며 여론의 동향을 살폈던 여권이 참여정부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중앙일보 2월14일자 1면
조선일보 2월14일자 1면
보수신문은 곧바로 측면 지원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다음 날인 2월 14일자 1면 머리기사를 <한·미 FTA 총선 최대 쟁점으로>라고 뽑았고, 조선일보는 1면에 <박근혜, 야와 전면전 선언>이라는 뉴스분석 기사를 실었다.
야당 공격을 위한 논리 제공도 보수신문의 몫이었다. 조선은 2월 14일자 <다시 부는 노풍 속 한국의 ‘정치 건망증’>이라는 사설에서 “친노 세력은 폐족 운운했던 게 언제였냐는 듯이 반성을 집어던지고 상대 실정에 올라타는 작전에 올인했다”면서 “(민주당은) 아직 발효도 안 된 한미 FTA 폐기를 부르짖는 역사의 퇴행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공격 포인트’로 부각시켰다. 민주통합당이 한미FTA 문제를 야권연대의 연결고리로 삼고 있지만, 거꾸로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동아일보 2월16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2월 16일자 <한명숙, MB 통타 전에 노 정권 실정 반성해야>라는 사설에서 “친노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해 스스로 폐족이라고 칭했던 세력이다. 한 대표와 친노들이 염치를 안다면 겸허한 자성 없이 현 정부와 여당을 향해 삿대질부터 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2월 20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민주통합당의 정권심판론에 대해 “그분들 스스로 자신을 폐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분들인데 그분들이 다시 모여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보수신문이 사설로 내놓았던 비판 논리와 기막히게 맞닿아 있는 발언이다. 이명박 정부 5년 차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아직도 전임 정부 책임론을 꺼내 든 행동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두 번째 문제이다.
한미FTA라는 이슈는 박근혜 비대위원장 입장에서는 프레임 전쟁에서 반사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현안이다. 참여정부 때 추진한 사안이고 이명박 정부 때 완결한 사안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책임론에서 한발 비켜날 수 있는 사안이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폐기’냐 ‘재개정’이냐를 놓고 야당 지도부가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신문은 이 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새누리당 쪽과 보조를 맞추면서 프레임 전환에 나서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라는 프레임을 깨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다. 한미FTA 말 바꾸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노무현 정부 심판론이 이슈화되면 참여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 문제로 논의의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미FTA 쟁점 역시 MB정권 심판론보다는 여권 입장에서 우호 여론을 확보하는 데 수월하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박근혜 정치’에서 ‘MB 색깔’을 빼는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2월 15일 라디오 정당대표 연설에서 “잘못된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하고 성큼성큼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은 다시 한 번 이슈화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2월 16일자 4면 <잘못된 과거와 단절 선언한 박근혜…MB와 인연 끊나>라는 기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15일 라디오 정당대표 연설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연설에 ‘새로운’이란 표현을 8번, ‘미래’라는 단어를 7번 반복했다”라고 보도했다.
한겨레 2월21일자 사설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밝힌 ‘과거와의 단절’은 공허한 메아리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엿보인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한겨레는 2월 21일자 <박근혜의 과거 단절론과 정수장학회>라는 사설에서 “소통과 민주주의에 대한 박 위원장의 의지를 거의 느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안이 정수장학회 문제”라면서 “진정으로 정수장학회와 관련이 없다면 자신을 아직도 왕조시대의 상전처럼 모시는 사람을 이사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시민·언론단체의 요구대로 사회에 재단을 환원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와의 단절은 말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이자 논란의 핵심인 ‘4대강 사업’의 경우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묵인과 방조 하에 추진됐다. 언론계에서 손꼽는 대표적인 문제 정책인 ‘조중동 방송법’의 경우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협조 없이는 추진하기 어려웠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전면에 나선 이후 당명 개정 등의 상황을 보면 ‘민주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의 뜻=당론’이라는 등식의 성립 자체가 꽉 막힌 여권의 ‘언로’를 보여준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소통의 부재’라는 점에서 박근혜 리더십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측근 등 권력형 비리 의혹, 서울시장 선거 방해 사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등 여권을 뒤흔들 시한폭탄이 잠복해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 프레임 전환이라는 ‘시선 돌리기’ 정도로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현 민주통합당 수석부대변인은 “집권여당의 책임을 거부한 과거의 잘못과 단절이나 새로 태어나기 위한 쇄신은 ‘앙꼬 없는 찐빵’이고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변인도 “진흙탕에서 함께 굴렀던 한나라당 인사들이 얼굴만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나온다고 MB와 한나라당의 주홍글씨가 지워질 줄 아나”라고 반문했다.
FTA가 보수언론 먹잇감 된 까닭은
민주당, ‘원죄’ 눈감고 어정쩡한 단절… 허약한 맷집 드러네
“민주진보진영 내부에서도 FTA 폐기를 둘러싸고 일정한 논쟁이 있다. FTA 폐기 없이 이명박 정권의 심판이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총선기획단에서) FTA 폐기 관련한 당의 입장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논의를 해주기 바란다. 쟁점을 자꾸 뒤로 미룬다고 해서 좋을 일은 아니다.”
이인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2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를 둘러싼 당 안팎의 논란을 언급했다. ‘한미FTA’라는 사안은 민주통합당 입장에서 공세의 대상이었다. 지난해 11월 22일 한나라당이 주도한 한미 FTA 국회 강행처리는 내용은 물론 민주주의 절차라는 측면에서도 비판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정권이 또다시 의회쿠데타를 저질렀다”면서 한미FTA 인준안 무효화 투쟁을 약속했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한미FTA 강행처리는 ‘반MB’ 성향의 국민에게 분노의 정서를 자극한 행동이었다. 민주당은 당시 한미FTA 이슈를 계기로 여권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2012년 2월, 한미FTA 이슈는 민주당에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다. 지도부 회의에서 쟁점을 미루지 말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민주당 내부 고민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 FTA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보수신문이 민주통합당의 ‘약한 고리’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쪽의 대표적인 논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체결된 한미FTA는 참여정부 시절보다 국익 측면에서 후퇴했다는 주장이다. 미국 의회가 참여정부 시절에는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재협상’된 내용에는 별다른 탈 없이 인준해준 것을 보면 한국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더 불리해졌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한미FTA는 ‘좋은 것’, 이명박 정부 한미FTA는 ‘나쁜 것’이라는 구도도 성립할까. 이는 논쟁의 대상이다.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은 여전히 그 당시 한미FTA 체결 내용에 대한 ‘옹호론’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이 부분이 진보진영과 참여정부 쪽 핵심인사들과의 뚜렷한 ‘간극’이다.
참여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했다는 ‘팩트’는 부인하기 어렵다. 한미FTA가 비판의 대상이라면 그것을 둘러싼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어정쩡한 단절이 아닌 분명한 반성이 민주당 입장에서 한미FTA 문제를 푸는 해법일 수 있지만 반성의 타이밍을 놓치면서 총선을 눈앞에 둔 상황까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처지가 됐다.
새누리당과 보수신문이 한미FTA 문제를 핵심 이슈로 부각시키면서 민주당을 강하게 압박하자 휘청댄 것은 한미FTA를 둘러싼 제1야당의 허약한 맷집을 고스란히 드러낸 대목이다.
정남기 한겨레 경제부장은 2월 20일자 31면 <한명숙 대표, FTA 사과가 먼저다>라는 칼럼에서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자유무역협정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다가 아무런 반성과 사과 없이 이를 폐기하겠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정체성과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장 경멸했던 것은 기회주의였고, 가장 중시한 것은 원칙과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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