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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첨단기술 부족 탓이라니…경찰의 황당한 대혁신 대책

윤 대통령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강조 이후 경찰 주요 과제로…전문가들 “인력 배치 의사결정 과정이 근본 문제”

특별취재팀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22-11-14 16:18:35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에서 발생한 핼리윈 대규모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2022.10.31 ⓒ민중의소리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재발 방지 대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찰은 참사 원인이 인파 관리 능력 부족이라는 진단 하에 첨단과학 기술 개발·적용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인파 관리 고도화와는 무관하다는 게 중론이다. 참사 당일 필요한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경광봉을 든 정복 경찰이었다. 사전에 인파 관리 계획을 세우지 않은 행정적인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이번 참사 대책과 관련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과학 기술을 활용한 인파 관리 능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의 첨단기술 추종은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됐다. 행정부 수장들은 참사 직후부터 원인으로 경찰의 인파 관리 능력 부족을 지목했다.


참사 3일 뒤인 지난 1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난 주말 이태원 참사는 이른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라는 인파 사고의 관리 통제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날 외신 브리핑에서 이번 참사 원인으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부족”을 수차례 언급했다. 한 총리는 지난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군중 관리 방안 등을 포함한 국가안전시스템 혁신방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며 기술 혁신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발언으로 재발 방지 대책 방향성을 제시하자, 주요 기관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행안부가 꾸린 ‘다중 밀집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 대책 TF’의 주요 개선 과제로 과학기술을 활용한 밀집 위험도 감시체계 구축이 포함됐다. 행안부는 지난 10일 이동통신 3사와 서울시, 교수 등과 민관 합동 회의를 가지고, ICT 기반의 인파 분석 시스템을 논의하기도 했다. 휴대전화 위치 데이터로 인파를 모니터링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은 인파 관리 고도화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청 ‘인파 관리 대책 TF’에서는 첨단기술을 활용한 인파 밀집도 측정 모델 개발과 위험경보체계 구축 등을 위한 인파 관리 교육 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 인파 관리 대책 TF는 경찰청 ‘대혁신 TF’ 내 인파 관리 개선팀 활동의 일환이다.


인파 관리 고도화는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대책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에 제기된다. 이번 참사는 거창한 첨단기술 없이도 막을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복 입은 경찰이 인파 집중이 예상된 참사 지점에서 경광봉·호루라기로 인파 흐름을 통제하는 것으로 충분히 했다는 설명이다.


허억 가천대 국가안전관리대학원 교수는 “골목에 줄이라도 쳐놓고 우측통행을 유도했다면, 잼(jam·혼잡)이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 직후에도 경찰이 확성기와 비상 사이렌을 울려 상황을 알리고 인파가 일단 정지하도록 통제하는 가운데 수습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대표도 “인파 관리 고도화는 이번 참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며 “현장에서 과학 기술이 부족해 인파 관리를 못 한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


앞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다중 운집 질서 유지에 고도의 전문 장비가 필요한가’라는 질의에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11.01. ⓒ뉴시스


근본 원인은 인력 배치 의사결정의 문제…“대책 우선순위 뒤집혔다”


경찰·지자체·행안부 등 국가 기관 전반에 걸친 안전불감증으로 수차례의 경고가 무시됐다. 이번 핼러윈데이 주말 이태원에 인파가 몰린다는 건 예견돼 있었다. 서울경찰청의 ‘핼러윈 데이 치안 여건 분석 및 대응 방안 보고’와 용산경찰서의 ‘2022년 이태원 핼러윈데이 치안 상황 분석과 종합치안 대책’,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등 참사 전 경찰이 작성한 보고서는 인파 운집을 경고하고 있었다. 용산구청도 유승재 부구청장이 참사 전 간부회의에서 핼러윈데이 이태원 인파 운집에 따른 안전사고 대책 마련을 주문했으나, 경찰에 인력 지원을 요청하거나 구청 직원을 배치하는 등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인파 관리 고도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정부의 재발 방지 대책 논의는 우선순위가 뒤집혔다고 지적한다. 경찰과 지자체가 위험을 알고서도 왜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지 등 행정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사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집중하는 인파 관리 고도화는 안전사고 위험성을 인지한 가운데 통제 인력을 배치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이전 단계인 인력 배치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은 다루지 않는다. 예방 측면이라고는 기껏해야 실시간 데이터로 인파 밀집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수준이다. 아무리 첨단기술을 적용해도, 인력을 배치하는 등 미리 계획을 세워두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허억 교수는 “이번 참사는 근본적으로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관계 당국의 안일한 인식에 기인한다”며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참사는 인력 배치와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틀에서의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세부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급박해서 그런지, 역으로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경찰청 인파 관리 대책 TF 외부자문단에서 활동하는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과 교수도 “핼러윈 인파에 대해 행정적으로 계획이 없었던 것이 문제”라며 “현장에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기본적인 교통 통제도 안 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10만명이 모인다고 하면, 미리 홍보 기간을 가지고, 현장에서 위험 지역을 파악하고, 현장 요원 어떻게 배치할 건지, 경찰·소방·지자체 등 유관기관이 어떻게 인파 관리 계획을 수립할지 미리 계획이 나왔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관기 대표도 경찰의 인파 관리 고도화는 재발 방지 대책의 후순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질서 유지의 첫째는 예방 대책”이라며 “기술 고도화도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대책이 10개라고 하면 7~8번째”라고 말했다.


민 대표는 경찰의 안전사고 예방 대책과 관련해 “지금 중요한 건 지휘체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치한이 대통령 말에 동서남북으로 간다”며 “눈치 보는 치한이 돼버리니까, 인파 관리에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되면서 용산경찰서 업무가 대통령 경호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등 영향 탓에 인파 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인파 관리 고도화를 내세워 이번 참사 본질을 흐리는 건, 참사 책임을 일선 현장 공무원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읽힌다. 진상 규명 수사·조사가 ‘윗선’으로 가지 못하고 아래로, 옆으로만 향하는 현실과 맥을 같이 한다. 참사 발생 보름을 넘겼지만,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재난 관리 주무관청인 행안부에 대한 수사를 진척시키지 않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수사에 대해서도 “법리 검토 중”이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반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과 용산경찰서 정보과 계장 등을 입건하는 등 경찰·소방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대응하고 있다.


이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재발 방지 대책의 출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사회 재난은 자연적인 게 아니라 관리 실패에 따른 사회적 과정 또는 행정적·국가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며 “정책 결정권을 갖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럴 때 재난 예방에 따른 비용 소요 문제가 그 자체로 사회 정의로 직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2.11.10.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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