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2590


이태원 참사 희생자 흔적 기록 의무 방기한 한국 언론

기자명 애틀랜타=이상연 객원특파원   입력 2022.11.15 11:26  

 

[기자 칼럼]

그 많은 한국 언론 다 어디에…희생자 기록은 언론 의무

미국 언론, 명예훼손·사생활 침해 아닌 언론 의무 판단

한국 언론, 최소한 유가족 동의 받아 희생자 기록해야

미국발 기사도 자의대로 왜곡, 오히려 유가족 명예훼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태원 10.29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추모미사에서 희생자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안식을 기원했다. (사진=뉴스1)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태원 10.29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추모미사에서 희생자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안식을 기원했다. (사진=뉴스1)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10.29 참사와 관련해 한국 언론들이 쏟아내는 보도를 미국에서 접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코로나19 규제가 풀리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예고가 있었는데, 언론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TV방송을 아무리 지켜봐도 참사 관련 화면은 모두 CCTV 영상이거나 시민들이 제보한 것 뿐이었다. 인터넷 방송 BJ들도 현장에 나가 핼러윈 현장 생중계를 했는데, 방송 기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경찰과 안전 당국이 사고가 우려되는 행사에 대해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비난하기 앞서 제4의 권력이라는 언론부터 거울을 봐야 할 듯하다.


이태원 10.29참사 희생자 박가영(19)씨의 스토리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이태원 10.29참사 희생자 박가영(19)씨의 스토리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한국 언론만의 특징이다. 희생자 이름을 모두 익명 처리하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가족들의 동의가 있으면 보도해도 되지 않을까? 이름을 알릴 수 없다는 핑계로 이같은 참사가 전해주는 충격을 가장 확실하게 기록할 수 있는 희생자 스토리를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지난 6월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초등학교 총기난사 참사가 발생하자 뉴욕타임스는 초등학생 19명과 교사 2명 등 희생자 21명의 이름과 사진,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사회에 충격을 준 비극적인 사건으로 숨진 사람들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언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만 해도 한국 신문들은 희생자 500여명의 이름을 모두 지면에 기록했다. 


그나마 미국인 희생자의 신원과 이야기가 이곳 언론을 통해 전해졌고 뉴스버스도 희생자인 애틀랜타 대학생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통해 숨진 스티븐 블레시씨의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미국 현지 기사마저도 자의적으로 해석해 오히려 유가족을 욕보이는 결과를 만들었다. 


뉴스버스에 소개됐던 아버지 블레시씨의 현지 지역언론 AJC 인터뷰 내용 가운데 "한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부분을 한국의 한 신문이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블레시씨 유가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것이다. 아버지 블레시씨로서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이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만한 기사다. 


물론 추후 블레시씨 가족이 실제 소송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뉴스버스와 인터뷰에서도 확인됐듯 당시 아버지는 결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 신문은 "한미 양국의 법률에 따라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 어렵겠지만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는 자체 해석까지 달았다.  취재 없이 추측으로 쓴 소설이었다. 


이러한 외신 해석은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향배에 대한 보도에서도 두드러졌다.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현대차가 피해를 보는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바꿔주기 위해 IRA를 수정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은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IRA 자체를 반대해왔기 때문에 법안 자체를 폐지하거나 무력화하겠다는 입장이지, 한국에 혜택을 주기 위해 법안을 수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희망사항'을 들려주기 위해 일부러 왜곡을 한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존 신문과 방송 등 이른바 '레거시' 언론의 퇴조는 미국이나 한국 모두 공통된 현상이다. 종이신문의 몰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공중파 방송도 보도 부문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지역 방송은 오히려 로컬 뉴스를 늘리고 있고, 온라인 전환에 성공한 신문들은 기자 채용을 확대하고 전문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레거시 언론도 전문적인 저널리스트 양성에 실패한다면 '비판을 위한 비판'만 양산하는 퇴물로 전락할 수 있다. 


이상연은 1994년 서울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애틀랜타 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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