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v.daum.net/v/20221120180739813


“국가 담보도 못 믿겠다”… 무능한 정치가 빚은 ‘나비효과’ [뉴스 인사이드 - 레고랜드發 자금시장 쇼크]

김범수 입력 2022. 11. 20. 15:00 수정 2022. 11. 20. 18:57


김진태 강원도지사, 깜짝 디폴트 선언, 신뢰 저버린 지자체 결정에 시장 패닉

英선 트러스標 감세정책 거센 후폭풍, ‘제2의 대처’ 꿈꾸다 최단명 총리 오명

흥국생명 사태에 금융당국 대응 논란 

2금융권 전체 유동성 위기 우려 높아, 원·달러 환율 오르고 주가·집값 하락

글로벌금융위기 초입과 비슷한 징후 “정부, 시장 안정 대책 마련 서둘러야”


김진태 강원지사의 레고랜드 채권 지급보증 철회라는 정책결정이 국내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초래하는 나비효과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잖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 사업 시행사인 강원도중도개발공사의 누적된 부실을 감사하려는 목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다르게 지방자치단체의 ‘디폴트(채무불이행)’는 금융시장에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며 국내 자금시장 전반에 ‘돈맥경화’를 불렀고, 결국 한국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원도가 쏘아올린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


18일 금융업계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김 지사는 지난 9월26일 강원도중도개발공사에 대한 회생 신청을 예고하면서 강원도의 지급 보증 의무에 대해 사실상 디폴트 선언을 했다.


지급 보증에 대한 신용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지자체의 디폴트 선언은 국가가 담보한 빚도 떼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강원도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내년 1월 강원도중도개발공사 보증채무를 갚겠다고 했지만 ‘유동성 쇼크’는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다.


국내 증권사와 건설사는 최근 몇 년간 넘쳐 흐르는 유동성과 부동산 호황에 힘입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많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이 같은 PF-ABCP는 건설산업의 주요 자금줄로 작용했는데, 최근 자금시장 유동성이 둔화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리스크는 커져갔다.


여기에 강원도의 디폴트 선언은 리스크에서 위기로 이어지게 하는 데 충분했다. PF-ABCP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유동성이 막혔고, 곳곳에서는 신규 부동산 사업이 중단됐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연초에 3.5%였던 증권사 PF 대출금리가 지금 선순위 대출은 10%, 후순위 대출은 20%까지 상승했는데도 대출해주겠다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부동산 PF-ABCP로 시작된 유동성 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사와 건설사가 신용 보강한 만기도래 PF-ABCP 규모는 연말까지 32조3908억원, 내년 상반기까지 57조3759억원 등 90조원에 육박한다. 만기가 도래한 PF-ABCP 유동성이 막히면 건설사와 이에 투자한 증권사가 연쇄적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


정치인의 잘못된 판단이 국가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사례는 영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2의 마거릿 대처’를 꿈꿨던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경기부양정책으로 450억파운드(약 73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했다. 이는 1972년 예산안 이후 가장 큰 감세 규모다.


하지만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안은 영국 연기금의 파산 위기 등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영국 중앙정부 재무는 최근 몇 년간 이어져오던 저금리 기조로 올해 1분기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154%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영국 정부의 감세안은 국가 수입 감소,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국채 매각을 준비하는 등 ‘빚잔치’를 예고했다.


시장에 영국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채권값이 급락(채권 금리 급등)해 국채에 투자했던 영국 연기금이 직격탄을 맞았다. 가격 변동 폭의 몇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투자를 한 연기금은 채권값 급락에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 위기에 처했다.


결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을 억제하고, 한편으론 국채를 사들이며 돈을 푸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JP모건은 트러스의 감세안으로 짧은 기간 영국 연기금이 손실을 입은 금액만 1500억파운드(약 24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트러스 전 총리 역시 ‘44일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지난 20일 퇴임했다. 영국 정부가 예정했던 모든 감세정책은 사실상 폐기됐다.



◆ RBC 비율이 뭐길래…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논란


강원도의 레고랜드 보증채무 디폴트 쇼크가 부동산 PF-ABCP의 자금 경색으로 이어진 데 이어 금융당국의 규제가 제2금융권 전반적인 유동성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도 생기고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 5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조기상환(콜옵션)과 관련해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가, 6일 만에 번복해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신종자본증권은 상환기한이 없는 영구채지만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콜옵션을 붙인다. 콜옵션은 절대적인 권한은 없지만 해당 채권의 신용으로 이어지는 게 업계에서는 ‘불문율’에 가깝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한 개의 회사를 넘어 한국 채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에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5년 기한 콜옵션이 다가오면서 이를 막기 위해 자금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나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위해 신종자본증권(자본)을 부채로 전환한다면 현재 157% 수준인 흥국생명의 RBC 비율은 금융당국의 권고치인 150%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보험사가 RBC 비율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 경영진교체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에 흥국생명은 신뢰를 잃더라도 최악의 수를 면하기 위해 콜옵션 미행사라는 차악의 카드를 고민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지난 2일 이번 일과 관련해 “흥국생명은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 및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달리 말하면 금융위는 보험금 지급 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사태와 관련해 RBC비율 조정 등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선 긋기’는 흥국생명 한 개의 기업만이 아닌 제2금융권 전체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흥국생명뿐 아니라 콜옵션을 앞둔 보험사들에 투자한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제2, 제3의 ‘콜옵션 미행사’가 발생할 위험이 생겼다.


당장 한화생명이 내년 4월 흥국생명보다 2배 규모인 10억달러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맞는다. 내년 5월에 콜옵션이 예상되는 K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 규모도 2억달러로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은 현재까지 별다른 변동 없이 조기상환을 한다는 방침이지만, 제2금융권의 유동성 리스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 2007년 하반기 닮은꼴 … “지금이 대응 기회”


레고랜드발(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가 수면 아래 있던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를 드러냈지만, 역설적으로 위기를 조기에 대응할 기회를 잃지 않았다는 평도 존재한다.


14일 금융업계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제2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규모를 45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산은)과 신용보증기금(신보)의 기업어음(CP) 매입도 ‘1조원+α’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금융당국은 전체 금융시장 유동성 위기에 대응해 ‘50조원+α 유동성 지원 조치’를 추진한다. 금융당국의 신속한 조치로 오늘날 자금시장의 ‘급한 불’은 잠재웠다는 평이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하지만 지금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는 시작일 뿐이며 경제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각에서는 2008년 미국의 과도한 ‘빚투자’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경제위기로 이어진 것과 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2006년 950원에서 2008년 10월 1466원으로 급등하고,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40% 이상 폭락했다. 또한 자금시장 유동성 악화로 상대적으로 부채 비율이 높았던 금호아시아나, STX, 웅진, 동양 등 대기업 그룹이 해체됐다. 또한 자금유동성에 취약한 건설사도 여파를 피해가지 못해서 2008년 7월 말 시공 능력평가 순위 100대 건설사 중 5년간 워크아웃, 법정관리, 채권단 관리, 부도, 폐업 등을 겪은 곳은 절반에 달했다.


최근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12일 기준 코스피는 지난해 최고가 대비 25% 이상 하락한 상태다. 원·달러 환율은 1318원으로 소폭 하락했으나 1년 전과 비교하면 15% 가까이 상승했다. 또한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834%로 지난해보다 1.471%포인트 증가했고,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38% 하락해서 2012년 5월 부동산원이 시세 조사를 시작한 이후 주간 기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또한 24주 연속 하락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준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고 15개월가량 지나 리먼 사태가 터졌다”며 “개인과 기업은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고 정부는 시장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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