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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약속해놓고 뒤통수 때린 정부, 화물연대 ‘무기한 총파업’ 이유

화물연대, 24일 0시부터 무기한 총파업 돌입...전국서 물류 운송 거부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2-11-23 15:32:44 수정 2022-11-23 17:10:38


화물연대 총파업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화물차들이 운행하고 있다. 2022.11.23. ⓒ뉴시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24일 0시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손바닥을 뒤집듯 하루아침에 약속을 뒤집은 정부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적용 품목 확대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전국적으로 물류 운송을 거부할 방침이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란?


안전운임제는 도로 위 화물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2020년 도입된 제도다. 화물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으로 도로를 달리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화물노동자들은 유가 상승 등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운임을 받고 있다며 안전운임제로 적정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안전운임제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안전운임제가 도입될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3년 일몰제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화주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간다’,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제도가 도입된 지 딱 3년이 되는 올해 말이면 안전운임제 효력이 끝난다.


이에 화물연대는 일몰제를 폐지하고 안전운임제를 모든 품목에 전면적으로 적용할 것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안전운임제 일몰이 목전으로 다가올 때까지 이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 화물연대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게 화물연대가 무기한 총파업을 결의한 핵심적인 이유다.


현재 화물연대가 문제 삼고 있는 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지난 22일 대표발의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안’이다. 골자는 현행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안전운송운임(화주가 운수사업자 또는 화물차주에게 지급해야 하는 운임)’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는 곧 안전운임제 내 화주 책임을 없애는 것이라고 화물연대는 지적한다.


안전운임제 구조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화물연대는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는 안전운송운임(화주가 지급하는 운임)과 안전위탁운임(화물노동자가 수령하는 운임)으로 구분해서 각각 결정하고 있다. 안전운송운임을 별도로 산정하는 이유는 화주가 안전운임 이상을 지급해야만 현실에서 안전위탁운임 준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안전운송운임은 화물노동자가 수령하는 운임이 지켜질 수 있도록 화주의 책임을 강제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안전운임제는 ‘화주-운수사업자-화물노동자’라는 3주체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


화물연대는 “만약 안전운송운임을 폐지할 경우 화주가 적정 운임을 지급하도록 강제할 방안이 사라질 것”이라며 “공급사슬 정점에 있는 화주의 지불 책임이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이어 “안전운송운임이 사라지면 화주는 과거와 같이 최저가 및 저단가 운임을 강요할 것이고, 운수사업자는 화물노동자에게 위탁운임을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할 수 없게 되어 운임을 둘러싼 현장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현행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던 안전운송원가의 구성 항목을 뭉뚱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건비’는 아예 삭제한 것도 안전운임제도의 취지를 훼손한 것이라고 화물연대는 보고 있다. 화물운동에 소요되는 비용 항목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하면서 안전운임위원회 권한을 축소하고 정부 입맛에 맞는 운임 산정 가능성을 도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김 의원의 개정안은 안전운임제에 반발하던 화주의 입장만 고스란히 반영됐다. 화물연대는 “국민의힘은 지난 16일 예정돼 있던 국회 상임위원회를 늦추면서까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품목확대 법안 상정을 지연시키더니 오히려 기존보다 후퇴한, 사실상 제도 폐기와 다름없는 개안안을 발의했다”고 비판했다.


하루아침에 합의 뒤집은 정부에 화물연대 분노 폭발


정부의 합의 파기도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촉발했다.


앞서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를 촉구하며 지난해 11월, 올해 6월 총파업을 단행했다. 논의에 전혀 진척이 없는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올해 6월 총파업이 일주일가량 이어지며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적용 품목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고, 화물연대는 이를 받아들여 총파업을 중단했다.


안전운임제 제도개선 논의 타임라인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지만 정부는 하루아침에 약속을 뒤엎으며 화물연대의 뒤통수를 때렸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화물연대와 합의한 지 하루 지나 “우린 일몰제 폐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그 다음날 “안전운임위원회 구성의 공정성, 운임 산정 근거의 객관성 등에 대한 문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안전운임제의 일몰제를 폐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국토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못박았다.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에 대해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게 국토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논의하겠다’던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국토부는 9월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안전운임 관련 보고서를 통해 안전운임제의 화주 책임 삭제, 처벌조항 완화 등 그간 대기업 화주가 요구해온 개선사항을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 차관은 “화주는 계약 당사자도 아닌데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원청’에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또한 국토부는 “교통안전 개선효과가 불분명하다”, “전반적으로 화주는 (안전운임제 시행에) 부정적인 반면, 차주(화물노동자)는 긍정적이고, 운수사는 업체별 규모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국토부의 입장은 이후 김 의원의 개정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안전운임제가 효과 없다고? 화물연대 “사실 아냐”


하지만 이는 국토부가 앞서 2월 국회에 보고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연구용역 결과’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의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에 나온 분석 결과와는 상반된 내용이었다. 올해 5월 기점으로 정권이 바뀌자 안전운임제에 대한 인식도 돌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화물연대도 화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토부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우선 화물연대는 ‘화주 처벌이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해 “올해 2월 기준 안전운임제 위반 신고 3천559건 중 과태료 부과는 47건, 화주 처벌은 9건에 불과하다”며 “안전운임제로 과도한 화주 처벌이 발생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화주 처벌이 있다고 해도 화주 역시 화물운송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화물운송시장의 주체이며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며 “국토부는 화주 처벌의 수위를 따질 것이 아니라 화주가 준법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 2021년 한국 안전운임 시행효과 분석 및 지속가능한 제도시행을 위한 조사결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안전운임제로 인한 교통안전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자료도 있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의 ‘한국 안전운임 시행효과 분석 및 지속가능한 제도 시행을 위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암전운임제 시행 후 교통사고 발생 요인인 과속, 과적, 과로 경험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도 감소해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됐다. 아울러 노동위험도를 지수화(K-CTDI)해 안전운임제 도입 전화를 비교한 결과, 도입 이후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짧은 기간 발생한 교통사고 수를 단순히 비교하며 교통안전 개선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단정한 것이다.


안전운임제로 인해 화주의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 화물연대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기업물류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도입 후 기업의 물류비가 증가했다는 응답은 줄어 들었다”며 “오히려 기업물류비가 감소했다는 응답은 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물류비는 하역비, 보관비 등 다양하게 구성되며 이중 일부인 화물노동자의 운임이 상승했다고 해 기업의 물류비 급등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안전운임제가 이대로 폐기된다면 시장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화물연대는 내다봤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가 사라진다면 운임 수준 및 운임 결정 방식이 이전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제도에 맞춰 변화하던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자료사진 ⓒ뉴시스


“정부·여당이 완벽하게 약속할 때까지 파업 중단 없어”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가시화되자 국토교통부는 22일 입장문을 내고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을 추진하되, 품목확대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며 화물연대에 파업 철회를 요구했다. 화물연대는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3년 추가 논의’로 응답한 것이다.


이에 대해 화물연대는 “정부가 얘기하는 일몰 연장은 개악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화물연대는 “일차적으로는 국회에서 (일몰제를 폐지하는)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며 “정부·여당이 기조를 바꿀 때까지 (총파업은) 갈 수밖에 없다. 완벽하게 약속할 때까지 멈출 수 없다”고 단언했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에 따라 물류 차질이 우려되면서 정부는 파업 기간 비상수송차량 지원 등 긴급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 화물연대의 불법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했다. 하지만 약속을 깨고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 정부에 화물연대의 총파업 규모는 이전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의 경우 (조합원) 조직률이 40~50% 정도 되는데, 그에 포함되지 않은 비조합원들도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화물노동자는 특수고용직(개인사업자)인 만큼, 운송사가 파업 중 대체인력을 투입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철도와 공항·항만, 버스·택시 등 운수업 노동자들은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하며 파업 기간 대체운송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체운송 거부를 선언한 노조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항공연대협의회, 철도지하철협의회, 철도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민주버스본부, 택시지부, 전국물류센터지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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