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01839&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돈 한푼 안들이고 '대학 설립', 그 딸은 이사장
'20대 박근혜'는 불명예 퇴진... 60대 박근혜는?
[진단] 정수장학회 '장물' 논란... 영남대와 너무 닮았다
12.02.28 10:27 ㅣ최종 업데이트 12.02.28 10:27  김행수 (hs1578)

▲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21일 오전 개관한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수장학회를 두고 정치권의 논쟁이 점점 가열되고 있다. <부산일보>의 파업에서 시작한 이른바 정수장학회 '장물' 논쟁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가세하고, 급기야 정치권이 이 문제로 정면 대립하는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영남대도 정수장학회와 비슷한 논란이 있다는 것이다. <나꼼수>로 잘 알려진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1월 있었던 출판기념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남겨놓은 재산이 너무 많다. 육영재단·영남대·정수장학회가 있는데, 모두 10조 원이 넘는다" 등의 발언을 했고, 아들 박지만이 이를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영남대와 박정희, 박근혜는 무슨 관계?
 
영남대는 설립자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이사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어떻게 설립자가 되고, 이사장이 되었을까?
 
▲ 1988년 문화공보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 국회에 보관된 이 회의록에 의하면 영남대 설립자로 알려진 박정희와 박근혜 전 이사장이 영남대에 출연한 돈이 "0원"인 것이 당시 이사장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10원도 내지 않은 박씨 집안이 영남대에 과연 정통성이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부정입학 문제도 불거졌다. ⓒ 국정감사회의록

통일민주당 김동영 의원 :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얼마입니까?
조일문 재단 이사장 :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통일민주당 김동영 의원 : 다음에 현재 재단이사로 박근혜씨가 되어 있는데, 박근혜씨가 재단 출연한 액수는 얼마입니까?
조일문 재단 이사장 :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
(1988년 10월 18일. 문화공보위원회 국정감사)
 
지난 1988년 10월 영남대 본관 3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영남대에 대한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국정감사의 발언 내용이다. 여기서 입시부정과 인사전횡 등 각종 부정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설립자이자 교주로 규정된 박정희 전 대통령뿐 아니라 이사장을 지낸 당시 박근혜 이사가 영남대에 출연한 재산이 '0'원이라는 점이 이사장에 의해 확인되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야당의원뿐 아니라 여당의원들도 박근혜 가문이 영남대의 주인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청문회는 당시 학생 등 영남대 구성원들의 반발과 함께 박근혜와 측근들이 영남대에서 물러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설립자는 따로 있다? 이후락 비서실장, 신현확 총리 등이 설립이사
 
단돈 10원도 영남대에 출연한 적이 없는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설립자가 되고, 그 두 딸들이 이사장과 이사가 될 수 있었을까?
 
▲ 영남대 통합 당시의 언론보도(경향신문) 1967년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하여 영남대를 출범할 때에도 학생들은 정치적 압력에 의한 강제 통합이라면서 반대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캡쳐

1967년 대구대와 청구대를 합병하여 영남대를 설립할 당시에도 내부에서 반대가 많이 있었음을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학생들은 "청구대와 대구대가 정치압력과 권력에 의해 영남대로 발족, 이들에 의해 농락당함은 신성한 학원을 짓밟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통합을 반대했다.
 
백원우 민주통합당 의원 등과 청구대학·대구대학 설립자 후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영남대 출범과정은 이렇다.

청구대학은 독립운동가였던 최해청 선생이 해방 후 독립운동 생활화의 기치 속에 1950년 설립한 대학인데, 재단 경리직원의 비리와 신축 건물 붕괴에 책임을 져야 했던 이사회가 설립자를 배제한 채 박정희 정권에 헌납했다.
 
대구대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로 KBS 드라마 <명가>의 모티브가 되었던 경주 최부잣집 후손인 최준 선생이 해방 후 애국적 2세 교육의 뜻을 품고 1947년 설립했다. 그는 경제적 후원을 받기 위해 삼성 이병철에게 학교 경영을 위탁하였는데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이병철이 자기 구명을 위해 박정희 정권에 대학을 바쳤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초안한 것으로 알려진 이은상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통령을 100년 할 수 없는 일이다. (중략) 외국에서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대학 총장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가장 떳떳"하다면서 영남대 설립을 설득하였고, 이후락이 실무를 맡았다고 알려졌다.
 
이 같은 영남대의 출범에 대해 학생들이 정치적 압력과 권력에 의한 강제 합병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영남대 설립이사 명단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영남대 설립 당시의 이사 명단. 교육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후락 비서실장, 이효상 국회의장, 신현확 총리,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 백남억 공화당 정책위의장, 신기석 대구사범학교 동창 등 대부분 정치인과 최측근들이 영남대 설립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 영남대 정관 캡쳐

영남대 정관에 의하면 당시 설립이사는 "이동녕·이효상·김성곤·성상영·이후락·최준·한석동· 신현확·서정귀·백남억·신기석·여상원·김인"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교육자라기보다는 박정희의 최측근 정치인들이다. 영남대가 대구에 있음에도 8명의 주소가 서울로 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후락은 중앙정보부장과 비서실장, 이동녕은 공화당 의원, 이효상은 5·16 후 공화당 경북지부장과 국회의장, 김성곤은 공화당 재정위원장, 신현확은 국회의원·장관·부총리, 백남억은 박정희의 외삼촌으로 공화당 국회의원과 정책위의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기석은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이다. 대부분 박정희의 최측근 또는 정권실세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당시 직접 학교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이효상·이후락 등 측근들이 대신 나섰다.
 
박근혜, 20대 영남대 이사장에서 불명예 퇴진까지

▲ 영남대를 방문 중인 젊은 시절의 박근혜 위원장. ⓒ 국가기록원

그 후 10·26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태로 급작스럽게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가 들어섰다. 신군부가 들어선 얼마 후 1980년 3월 당시 29살인 박근혜가 영남학원의 이사로 취임했고 곧바로 1개월 만에 이사장이 됐다. 이전까지 박근혜는 교육자나 경영자로의 경험이 없는 상태였지만 20대에 전격적으로 대학의 이사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1980년 민주화의 봄 분위기 속에 영남대 학내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박근혜 이사장 취임을 반대하고 학교 민주화를 요구하자, 박근혜는 결국 6개월 만에 이사장에서 물러나 평이사로 돌아갔다. 8년 뒤에는 이사에서도 퇴진했다.
 
박근혜가 이사장에서 물러난 후 1983년 동생 박근령(이후 서영으로 개명)도 이사로 들어왔고, 측근들이 이사와 이사장을 계속하였는데 상당수가 정수장학회와 겹치는 인물이었다.
 
박근혜가 이사로 있던 1981년 7월 본인, 한준우(정수장학회 이사), 신기수(정수장학회·육영재단 이사), 유연상(육영수 여사 조카사위·육영재단 이사), 류준(이사장·육영재단 이사), 조경희(총장)가 참석한 가운데 한준우 이사 제안으로 '교주 박정희'로 명문화된 정관 개정안이 만장일치 통과되었다. 이렇게 박정희는 죽은 후 영남대 교주가 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5년 9월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백원우 의원은 설립 당시에는 없다가 박근혜가 이사로 들어온 이후 삽입된 박정희 교주 정관에 대해서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등 대한민국 어느 사학에도 없는 비교육적 규정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 1988년 영남대 부정입학 사태 분규 당시의 언론보도. 당시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이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들의 인사전횡과 부정입학이 드러나고, 박정희 교주 규정 등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학교 민주화 요구로 결국 박근혜 이사와 측근들이 모두 사퇴하였다. ⓒ 언론보도 캡쳐

영남대의 박근혜 체제는 민주화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들어선 여소야대 국회에서 1988년 영남대 국정감사를 했는데 29명의 부정입학 사건과 인사 전횡 사건 등 각종 비리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부정입학 사태는 박근혜 체제를 뿌리째 흔들었다. 모두 29명의 학생이 부정입학을 했는데 이 부정입학자 중에 박근혜 이사의 최측근인 최태민의 친인척 등 관계인 2명이 포함되었다. 더 황당한 것은 다른 부정입학은 2000만 원씩 기부금을 냈는데 이들은 기부금도 없이 입학을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이사는 부정입학 주동자가 구속되어 검찰에 소환되기 바로 전날 재단 사무국을 통해 "아버지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영남대를 잘 키워보려고 애써왔으나 신입생 부정입학 문제 등 최근의 사태가 돌아가신 분의 뜻을 빛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학교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며 성명을 발표하고 영남대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지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영남대 사태가 쟁점이 되자 당시 박근혜 후보는 "(부정입학을) 총장이 주도했으며 보고조차 받지 못해 알지도 못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여왕의 간접 귀환(?)과 박정희 대학원 설립
 
10원의 재산출연도 없이 20대의 나이에 이사장이 되었다가 8년 만에 입시부정 사태로 불명예 퇴진했던 박근혜 체제는 2009년 다시 영남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중간에 동생인 박서영이 설립자의 유족인 자신들에게 영남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복귀를 시도하기도 했다.
 
20년 동안 관선이사체제로 운영되던 영남대가 MB정부 출범 후 2009년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학교에 돌아올 기회가 생긴 것이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종전 이사' 또는 '설립자 유족'이라는 자격으로 박근혜 측에 4명의 이사 추천권을 주었다.

▲ 2009년 출범한 영남대 이사회 현황. 박근혜가 추천한 4명이 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사를 하고 있다. 영남대 총장, 이공대 총장, 총동창회 부회장 등 학교 관계자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박근혜 위원장이 추천한 인물들이다. 이 도표의 맨 오른쪽 비고는 필자가 추가한 항목으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자료와 신문 보도를 종합해 '박근혜 추천' 인사를 표기한 것이다.

이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이사로 들어올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그는 직접 학교에 들어오는 것보다는 측근을 추천하는 간접 체제를 선택했다. 이렇게 하여 2009년 7월 측근인 강신욱 전 대법관과 우의형 전 서울행정법원장, 박재갑 서울의대 교수, 신성철 KAIST 교수를 이사로 추천하여 우의형은 이사장이 되고, 나머지는 이사로 영남대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 내부인사인 영남대 총장, 영남이공대 총장, 영남대총동창회부회장 등 영남대 내부 관계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박근혜가 추천한 이사인 셈이다. 이렇게 박근혜 위원장의 추천으로 출범한 영남대 이사회는 박정희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일을 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21일 오전 개관한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첫 번째가 이전에 계속 비판의 대상이었던 '박정희 교주' 조항을 '설립자'로 바꾸는 정관을 개정하였다. 또, 정이사 체제가 출범한 2009년부터 계획했던 가칭 '박정희 정책 새마을 대학원'을 지난 10월 설립하여 올해 3월 첫 수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른바 '박정희 대학원' 설립이다. 최근 서울 상암동에 박정희 기념관이 설립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직접 영남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측근들을 통한 간접체제 출범으로 박정희의 설립자 지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박정희 대학원 설립이라는 과실까지 얻었다.
 
영남대와 사학법, 박근혜에게 어떤 영향 미칠까
 
2000년대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이 한창일 때 당시 한나라당에서 가장 강하게 사학법 개정을 반대한 것이 박근혜 대표였다. 당시 이를 두고 영남대와의 특수 관계 때문에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근혜와 함께 목소리를 높인 의원 중에는 공보부대표였던 나경원 의원도 있었는데, 둘 다 사학 이사 출신이다.
 
▲ 한나라당의 사학법 개정반대 야간 집회.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국회를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나섰는데, 촛불을 들고 야간집회를 하기도 했다. ⓒ 이성호

당 내부에서 원희룡 등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학법을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박근혜 대표는 국회 등원을 거부하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촛불을 들고 야간 집회를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도 함께 촛불을 들고 밤 거리를 나서기도 했다.
 
이번 19대 총선에서도 박근혜 의원 이외에도 ▲ 서울 동작을 정몽준(현대학원) ▲ 서울 중구 나경원(홍신학원) ▲ 경기 광명갑 차동춘(진성학원) ▲ 경기 의정부을 홍문종(경민학원) ▲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강석호(벽산학원) ▲ 경북 군위의성청송 정해걸(삼영학원) 등 20여 명의 전현직 사학 이사(장)들이 새누리당에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다. 사학이사 여부를 공개하지 않거나 전국구 비례대표 신청자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조전혁 의원은 아예 현재의 사립학교법을 폐지하는 것에 버금가는 사립학교법 전부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고, 진보적 교육단체들도 사학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사학법 개정 문제는 총선과 대선의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는 애초 설립자가 따로 있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주인이 바뀌고, 당사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며, 박근혜 위원장이 이사장을 한 적이 있으며, 현재 측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정수장학회랑 참 많이 닮아 있다.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는 지난 24일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날 고(故) 김지태씨 삼남 영우씨가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법원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수장학회는 강탈당한 장물"이라며 비판에 나섰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4일 법원은 "강압에 의한 헌납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시효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정수장학회 반환 소송을 기각했다. 문재인과 박근혜라는 유력 대통령 후보 차원을 넘어 선거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수장학회가 장물논쟁으로 이어지고, 법정 문제로 비화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영남대 문제가 비슷한 문제로 비화되었을 때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위원장에게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전에도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의 후손 또는 관계자들이 영남대 설립과 강탈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어 더욱 그렇다.
 
박근혜 위원장과 영남대의 관계가 정수장학회처럼 장물논쟁으로 확대될지,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와 맞물려 총선과 대선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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