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김재호 '법조부부'님! <범죄와의 전쟁> 보셨나요?
사법부 문제작 3편과 통한다. 박은정 검사의 '부당거래 거부' 사건
12.03.02 15:34ㅣ최종 업데이트 12.03.02 15:34ㅣ하성태(woodyh)

▲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최익현(최민식 분)과 그가 청탁을 들어준 고위급 인사가 도박장 개업을 축하하는 장면. ⓒ 팔레트픽쳐스

# 장면 하나
 
판사출신 '전관예우' 변호사가 원고인 성폭행을 당한 장애아동을 돌보는 교사에게 돈가방을 내민다. 그 교사를 학교에 소개한 은사인 대학교수를 대동하고 말이다. 그 교사가 울분에 치를 떠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 장면 둘
 
한 판사가 석궁을 맞았다. 자신이 내린 판결이 억울하다며 찾아 온 대학교수에 의해서다. 괘씸죄를 적용한 동료 판사들과 법조계는 이를 '사법부에 대한 테러이자 도전'으로 인식, 속전속결로 재판을 처리한다. 그 대학교수는 검사들도 눈치를 보며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그 증거가 사건 당시 사라진 '부러진 화살'과 '혈흔이 묻은 와이셔츠'다.
 
# 장면 셋
 
"이봐, 최익현씨가 깡패라고? 우리 집안사람이라 잘 아는데…."
 
고위급 검사가 후배인 일선 검사에게 수사 지시를 내린다. 최익현의 "형님 할아버지의 9촌 동생의 손자"인 그는 경찰서장에게도 전화를 건다. 친절(?)하게 "최익현씨는 민사에 해당되는 사항이니 합의를 보면 되지 않느냐"는 설명을 덧붙인다. 말이 좋아 수사지시지, 청탁이요, 압력이다.

▲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 아우라 픽쳐스

영화 본 관객이라면, 이른바 '김재호 판사의 전화'는 익숙하다
 
그리고 현실. 판사출신 국회의원의 남편인 현직 부장 판사가 후배 검사에게 수사와 관련된 전화를 걸었다. 검사의 양심선언과 폭로가 이어지자, 국회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기소 청탁을 한 바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이튿날, 그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 전화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전화는 청탁이었을까, 압력이었을까.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그리고 개봉 중인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헌데 현실의 한 장면 또한 만만치 않게 드라마틱하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제대로 터뜨린 폭탄, '현직판사의 기소청탁' 사건 말이다.  
 
2006년 1월, 새누리당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서울동부지법 판사가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에게 건 청탁 전화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블로그를 통해 나경원 의원을 비방한 누리꾼을 나 의원의 보좌관이 고발했고, 김 판사는 박 검사에게 "고발사건을 조속히 검토해 달라"고 직접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누구도 김재호 판사의 전화를 사법연수원 21기 선배가 29기에게 후배에게 건 안부 정도로 여길 수 없을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김 판사의 청탁 행위가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직 판사의 청탁은 징계 혹은 위법한 행위라는 것이다.
 
▲ <범죄와의 전쟁>의 깡패 최형배(하정우 분)와 '청탁의 달인' 반달 최익현(최민식). ⓒ 팔레트픽쳐스

김재호 판사, <범죄와의 전쟁> 속 가족주의를 현현하다
 
<범죄와의 전쟁>은 1일까지 420만 관객이 관람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음에도 <범죄와의 전쟁> 속 최익현이 검경과 기득권층을 상대로 벌이는 처세와 청탁의 릴레이에 대한 묘사는 핍진성(개연성)과 설득력이 충만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익현(최민식 분)의 부정과 부패가, 그를 위해 청탁과 수사지시까지 마다 않는 법조계의 비리 사슬이, 비단 지나간 과거의 일화만은 아니라는 관객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탓이리라.
 
영화 속에서 "가족보다 더 중요한 명분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는 최익현. 부패한 세관 공무원 출신에서 '반달(반건달)'로 성장(?)한 최익현은 뒷일을 봐줄 고위층을 찾아 '경주 최씨' 인맥을 찾아 나선다.
 
최익현이 먼 집안 형님 최두현(김삼일 분)을 통해 최주동 검사(김응수 분)을 소개받아 '금두꺼비'를 건네고, 최 검사는 '우리가 남이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가족주의'를 몸소 실천에 옮긴다. 일선 검사도, 경찰도 속수무책으로 수사를, 조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행여 김재호 판사 또한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전화를 걸어야만 했던 것일까. '대부' 최익현이 깡패이자 먼 친척인 최형배(하정우 분)에게 한 대사처럼 "우주의 기운이 우리 둘을 감싸고 있다"며 기고만장했던 건 아닐까. 이제 김재호 판사는 <범죄와의 전쟁> 속 '가족주의'를 완벽하게 현현(顯現, 명백하게 나타냄)한 인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부러진 화살>에서 판사를 연기한 배우 문성근 ⓒ 아우라픽쳐스

'사법 불신' 3부작이 도합 1000만 동원하는 까닭?
 
최근 한국영화 속에서 당당하지 못한 검사와 판사들이 조연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건 주연으로 '스폰서검사'를 내세운 <부당거래>부터다.
 
이후 작년 가을, <도가니>로 촉발된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부러진 화살>에 이르러 개봉도 하기 전에 대법원이 "<부러진 화살>은 흥행을 위한 예술적 허구"라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해프닝을 낳았다.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는 사법부를 위해 MBC <100분 토론>까지 나서 '<부러진 화살> 논란'을 주제로 삼았을 정도다.
 
영화의 정서적인 힘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극영화는 현실을 바탕으로 서사를 재구성해 낼뿐이다. 다큐가 아닌 이상 극영화의 리얼리티는 거기까지다. 대신 한국사회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관객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의 문제로 옮겨가는 정도다. 장르영화에서도 현실감을 중시 여기는 한국관객은 더더욱 그러하다.
 
<도가니>가, <부러진 화살>이, <범죄와의 전쟁>이, 도합 천 만을 동원한 세 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다.
 
세 편 모두 현실에서 소재를 취했을 뿐이다. 그러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실제 사건이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만한 허구 속에서 일부 법조인들의 부정은 현실감을 상승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400만을 돌파한 <범죄와의 전쟁>은 '사법부 불신' 3부작에 방점을 찍은 셈이 됐다.
 
▲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 삼거리 픽쳐스

부당거래 거부한 박은정 검사, 모쪼록 무사하길
 
결과가 어떻게 흘러가든 나경원 전 의원과 김재호 판사의 청탁 건은 일단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게 현직 판사의 청탁이 드러남으로서 "영화가 사법부의 불신을 조장하고 선동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주장들도 정당성을 잃게 됐다. <범죄와의 전쟁>이 김재호 판사의 청탁 사건으로 리얼리티를 검증(?)받으며 흥행에 탄력을 받을지도 지켜 볼 일이다.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은 한 청룡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세상의 모든 부당거래에 반대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부디, 영화 속 '스폰서검사'들이나 '청탁 판사'들과 달리 기소청탁이라는 부당한 거래를 거부한 박 검사가 무사하기를.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