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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 앞 12차선 대로 점령한 시민들...캠핑체어와 예비군복
“윤석열을 체포하라” 시민들 속속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으로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5-01-04 17:49:52 수정 2025-01-04 17:57:56
4일 오후 5시 현재,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대로 12차로 전차선을 '윤석열 체포' 촉구 시민들이 가득 메웠다. ⓒ화면캡쳐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만난 시민들은 황당함과 분노, 희망에 뒤섞여 있었다. 영장이 발부됐음에도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황당했고, 고작 몇백명의 경호처 직원이 막았다고 돌아선 공수처에 분노했다. 다시, 관저 앞에 모여든 시민이 윤석열을 체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쌓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4일 오후 2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한남대로는 남산1호터널 방향 4개 차선을 점거하고 진행됐으나. 3시간 뒤인 오후 5시 현재 집회 대열은 한남대로 양방향 12차선 대로 전체로 불어났다.
민주노총은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철수 직후부터 이날 오후까지 ‘윤석열 체포 집중철야 투쟁’을 진행중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7시 ‘윤석열 즉각 체포, 사회대개혁! 범시민행동’ 집회를 진행한다. 시민사회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범시민대행진’을 진행중이다. 범시민대행진을 마친 후 시민들은 한남동 관저 앞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도로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방한 무장’ 캠핑체어와 ‘추위 쉼터’ 예비군복
한남동 관저 앞에서 ‘방한 무장’을 하고 캠핑체어에 앉은 김소희(35·가명)씨와 하사 견장이 박힌 예비군복을 입은 민동혁(29)씨를 만났다. 자신이 세대를 대표한다거나, 성별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두 사람은 강조했다. 다만,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윤석열을 파면하고 처벌해 평온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희씨는 대열 중간쯤에 앉아 있었다. 겨자색 캠핑체어가 눈에 띄었다. 김씨는 “직장 생활 몇 년 만에 디스크를 얻었다”고 말했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업무를 하다 보니 생긴 질환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이 겨자색 캠핑체어였다. 허리를 탄탄하게 받쳐줬다.
김씨는 앞에 뒀던 흰 봉지를 열었다. 검지손가락만 한 피낭시에(아몬드 케이크의 일종) 10여개를 꺼냈다.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에 앉은 비슷한 또래 여성들에게 건넸다. 받은 사람은 미소 지으며 목례했다. 뒷자리에 있던 사람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귤을 꺼내 김씨에게 건넸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익숙한 풍경이다. 시계는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오다가 사 왔다. 배고플 시간 아닌가?”고 말했다. “아는 사이냐”고 물었더니 “오늘 처음 봤다”고 답했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도로에서 김소희(가명·35)씨가 집회에 차가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씨는 계엄이 선포·해제 직후부터 촛불집회에 나왔다. 부천에 있는 직장에서 국회로 퇴근했다. 막차를 놓치지 않는 시간까지 “윤석열을 탄핵하라”고 외쳤다. 피치 못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거의 매일 집회에 나왔다. 주말 집회에는 열일을 제치고 참석했다. 계엄이 선포된 지난달 3일부터 이달 3일까지 벌써 20여번째다. ‘왜 촛불집회에 나오냐’고 묻자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국민이 구하는 것이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운 대로 했다”는데 뭉클했다.
두터운 흰색 털모자를 썼다. 모자 위에는 선글라스가 걸렸다. 선글라스엔 미니마우스의 상징인 붉은 리본과 ‘윤석열 탄핵’ 부적이 붙었다. 털모자 내부엔 귀마개가 달렸다. 아무리 추워도 귀는 시리지 않다. 발열 내의를 입었다. 그 위에 니트를, 그 위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을 덮었다. 방한신발은 아니지만 바닥엔 핫팩깔창을 붙였다. 가슴팍에는 ‘외계인 침공 시, 탄핵 반대한 사람이 먼저 잡아먹힌다’고 적힌 몸자보를 둘렀다. 인터넷에서 공구한 몸자보는 택배비까지 5천원이 채 안들었다. 주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여럿 같은 몸자보를 두르고 있었다.
직접 만든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거열형(죄인의 목과 팔, 다리를 다섯 대의 수레 혹은 소와 말에 매달아 찢어 죽이는 사형집행 방식)을 당하는 사진이 인쇄됐다. ‘윤석열 사형!, 국민의힘 해체!’라고 적혔다. 김씨는 “공수처가 준비를 너무 안한 것 같다”고 했다. “윤석열이 막을 것이라고 예상 안 한 시민이 없었는데, 공수처는 뭘 준비한 건가, 아쉽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결국엔 윤석열이 체포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믿었고, 그때까지 집회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엔 어떤 세상이 됐으며 좋겠냐’고 물었다. 김소희씨는 “평온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윤석열 이전엔 평온한 삶이었나”고 되물었다. 김씨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내가 말한 평온이란 ‘세계평화를 바란다’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윤석열 이전에 평온했냐고요? 어떻게 삶이 평온할 수가 있겠어요. 직장 생활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매 순간이 평온하고 행복할 수 있겠어요? 그런 말이 아니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알듯 모를 듯했으나, 더 묻지는 않았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도로에서 열린 윤석열 체포 촉구 집회에 군복을 입은 민동혁씨가 '추위 쉼터 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무대 뒤편엔 80년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버스가 한 대 서있었다. 버스 외부엔 흰 천에 붉은 글씨로 ‘윤석열을 끌어내라’라고 적혔다.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게 했다.
몰고 온 사람은 자동차정비사 민동혁(28)씨였다. 버스 안엔 물과 핫팩, 김밥이 준비돼 있다. 추위에 지친 시민들이 들어와 몸을 녹이며 잠깐 졸다가 다시 나가는, 이른바 ‘추위쉼터’ 버스다. 운영자 민동혁씨는 군복 차림이었다. 예비역 하사로 전역한 민씨는 “계엄군 때문에 군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2008년부터 집회에는 군복을 입은 예비군이 있었다. 부모님을 따라 나간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봤다. 경찰들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주고 질서를 잡는 고마운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군복을 입고 나왔다고 했다.
버스는 세번째 집회 현장을 찾았다. 계엄 선포·해제가 있었던 12월 첫 주 주말, 탄핵안 표결이 있었던 12월 14일에 이어 세 번째다. 버스는 영화 촬영에 차량을 대여하는 업체에서 빌렸다. 한 번 빌리는데 대여료만 100만원 가까이 든다. 경기 남부에서 끌고 오려면 기름값도 수십만원이다. 처음엔 민씨와 그의 지인 둘이 사비를 털었다. 집회 현장에서 ‘후원 계좌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어떤 시민들은 ‘요금통’에 5만원짜리를 슬쩍 두고 간다. 후원금 내역은 모두 공개한다.
민씨는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 그 환희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버스 안과 밖, 가득한 시민들의 환호성을 기억했다. “다시 나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윤석열이 저렇게 나오는데 어쩔 수 없죠. 다시 와야지”. 그렇게 민씨의 버스는 세 번째 집회 현장에 나오게 됐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도로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도로에서 '방구석 웹툰작가모임'이 보낸 커피차가 운영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현장엔 ‘방구석 웹툰작가연합’이 보낸 커피차가 있었다. ‘탄핵 전에는 마감을 못해요’라를 현수막 아래, 시민들은 줄을 서 따뜻한 음료를 주문했다. 커피를 받아 든 N수생 김모(20대)씨는 이날 처음 집회 현장을 찾았다. 그의 손엔 ‘민주박사 능력평가’ 시험지가 들렸다. 성명란엔 ‘홍길동’ 좌우명 칸엔 ‘아무리 추워도 우리는 나간다’고 적혔다. 문제는 두개. ‘라면 물을 많이 넣었을 때 어떻게 할까요’ 정답은 2번. ‘불을 끌고 당장 광화문으로 뛰쳐나간다’다. ‘비가 오며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은’이라는 문제의 정답도 2번. ‘우산을 챙겨 당장 광화문으로 뛰쳐나간다’다. ‘왜 만들었냐’고 물으니 “흔들라고 만들었다”고 답했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인도가 경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가 멀리서 보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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