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님, 둘 다 패면 뭐가 달라집니까
[주장] 정치는 원래 시끄럽고, 양비론은 의미 없어... 12.3 내란의 '본질'을 봐야
25.01.14 10:37 l 최종 업데이트 25.01.14 10:37 l 박종원(pjw1986)
 
 2025년 1월 10~12일 59년 노래 인생의 마지막 콘서트를 서울 KSPO돔에서 연 가수 나훈아.
▲2025년 1월 10~12일 59년 노래 인생의 마지막 콘서트를 서울 KSPO돔에서 연 가수 나훈아. ⓒ 예아라·예소리 제공
 
"경제가 이 모양인데 허구한 날 시끄럽게 싸우고 말이야. 그러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혼자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메뉴는 짬뽕. 옆 테이블 손님들끼리 뉴스를 보며 하는 얘기였는데, 엿듣다가 고추기름이 목젖을 때려 죽을 뻔했다. 누가 말했던가. 어떤 클리셰는 폭력이라고.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시도한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서로 싸우기만 한다'는 말은 온당할까.
 
시선을 돌리려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이번엔 가수 나훈아의 발언이 난리다. "왼쪽, 니(너희)들은 잘 했냐?" "우리 엄마는 형제가 싸우면 둘 다 팼다" 옆에서 고량주에 탕수육 먹던 아저씨에게도, 가수 나훈아에게도 의문이다. 이게 둘 다 똑같이 맞아야 할 일인지. 둘 다 패면 뭐가 달라질 일인지.
 
수백 년간 유교의 나라였기 때문일까.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정치판이 권력 투쟁의 장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TV뉴스를 틀면 '경제가 이 모양인데 허구한 날 싸우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라는 시민들의 인터뷰가 꼭 한 번 이상은 나온다. 이게 다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라면서.
 
이러한 사회의 인식 속에서 권력은 회피해야만 할 것으로 여겨진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다음 왕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자 냇가에서 귀를 씻었다는 고사처럼.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권력의지가 없는 리더를 원한다니. 형용모순 아닌가?
 
물론 바람은 자유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마저도 '청렴하고 슬기로운 참주(독재자)가 나오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적시한 바 있다. 그만큼 권력은 달콤하다. 권력이 달콤하기에 인간들은 이것을 갖기 위해 싸우고 다툰다. 중앙권력에서 녹봉을 받음은 가문의 영광이고, 영달의 증거이자, 오래 누리고 싶은 일이다.
 
정치는 원래 시끄럽다, 왜 시끄러운지를 아는 게 시민의 덕목
 
김용만 노려보는 권성동...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나경원 의원의 긴급 현안질문 도중 고성으로 항의하는 야당 의원들을 제지해줄 것을 의장석에 요구한 뒤 돌아가다 권 원내대표의 처신을 비판하는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응시하고 있다.
▲김용만 노려보는 권성동...왜?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나경원 의원의 긴급 현안질문 도중 고성으로 항의하는 야당 의원들을 제지해줄 것을 의장석에 요구한 뒤 돌아가다 권 원내대표의 처신을 비판하는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응시하고 있다. ⓒ 남소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곧 정치권력을 둘러싼 투쟁이었으며,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를 원천적으로 근절할 방법은 없다. 실제로 서구의 정치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 파벌을 형성하며, 지도자의 전횡과 독재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영토와 인구가 클수록 다뤄야 할 이권과 권력 또한 커진다. 이전 시대에 비해 인구와 경제 규모가 비대한 현대에서 파벌 간 투쟁은 필연이다.
 
이런 세계에서 냇물에 귀를 씻는 현자의 등장만을 바라는 건 무책임하다. 서구의 정치학자들은 인간의 권력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신 제도권 내에서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권력투쟁의 길을 열어주고, 이를 어떻게 공익 증진과 결부시킬지 고민했다. 이것이 근대 보호민주주의 전통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와 원로원이 공존하는 혼합정을 제안했다. 몽테스키외는 삼권분립을,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제를 고안했다. 제레미 벤담은 보통선거를 통해 시민의 복리를 추구하는 자가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해보니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권력은 더욱 제한돼야만 했고, 그 행사조차도 시민들의 기본권과 타 권력기관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했다. 이로써 파벌들끼리 총칼과 무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정치게임의 룰이 완성됐다.
 
이제 현대의 정치는 말로 싸운다. 그러니까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다. 본래 정치는 시끄러운 것이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선거 제도, 그리고 국회의 존재는 제발 말로만 싸우라며 헌법이 깔아 준 멍석이다.
 
둘 다 잘못했다? 당신들의 기본권도 이 싸움에 달려 있다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앞 도로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구속’ 촉구 집회가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주최로 열리는 가운데, 한 참가자가 은박 담요를 쓴 태 응원봉을 들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앞 도로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구속’ 촉구 집회가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주최로 열리는 가운데, 한 참가자가 은박 담요를 쓴 태 응원봉을 들고 있다. ⓒ 권우성
 
12.3 내란의 본질은 말로 싸우는 정치게임의 규칙을 총칼이 통하는 시대로 돌려놓으려 했다는 데 있다. 내란이 성공했다면 더 이상 헌법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며, 시민들은 법이 아닌 통치자의 자의적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란의 주도자들은 향후 권력을 행사하는 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권력 추구가 공익으로 승화하도록 고안된 대의 민주주의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죽음이 사회를 전쟁 상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권력행사에 제한이 사라졌으니 시민들을 향한 강제력 집행을 멈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둘 다 패야 한다'는 양비론은 부질없다. 그리고 위험하다. 둘 다 잘못했다 말하는 당신들의 헌법적 기본권도 이 싸움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이미 전 국민의 기본권이 세 시간 동안 발가벗겨진 바 있다). 이런 인식은 특정 유명인사 몇몇의 발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나훈아의 발언은 정치를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일상 속 수 많은 소시민들의 정치혐오를 대변한다. 옆 테이블 탕수육 아저씨의 말처럼.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다. 어떠한 대립도, 이익추구도 없는 순수한 공생은 없다. 특히나 여러 파벌의 이익이 대립하는 정치판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 겪어봤으리라. '둘 다 잘못했다' '둘 다 싸우지 말라'는 식의 말로는 애들 싸움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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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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