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찢은 헌법재판관 사진...한남동 탄핵 반대 집회는 지금
[현장] 주말 대통령 관저 앞 보수 집회...취업난에서 중국까지 증오 대상 '중구난방'
25.01.14 09:11 l 최종 업데이트 25.01.14 09:48 l 서부원(ernesto)
 
 지난 11일 한남동 지하철역에서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육교까지의 모습은 '혐오의 전시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난 11일 한남동 지하철역에서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육교까지의 모습은 '혐오의 전시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 서부원
 
'순국 결사대, 북벌 의병단, 좌파 척결, 빨갱이 처단...'
 
집회에 나선 단체의 이름마다 결기인지 광기인지 모를 노기가 서려 있었다. 대형 깃발이 군중 위를 펄럭였고, 그들이 착용한 조끼와 모자마다 붉은 글씨가 선명했다.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그들의 무기는 맹목적 증오였다.
 
지난 토요일(11일), 종일 대통령 관저 주변을 서성거렸다. '응원봉'을 가방에 넣고 광화문을 향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 불현듯 한남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군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긴 쉽지 않지만, 그들을 평생 보지 않을 것처럼 배척하면서 살아갈 순 없다. 뭐가 됐든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어쩌면 나 역시 색안경을 쓴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자면 어떻든 그들을 만나야 한다.
 
물가, 취업... 그들의 분노는 중구난방
 
점심시간이 갓 지난 오후 2시,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은 안팎으로 북새통이었다. 손에 쥐고 가방에 매단 태극기와 성조기가 그들의 목적지를 알게 해준다. '부정선거 검증'과 '이재명 구속'이라는 맥락 없는 주장들이 시끌벅적하게 오갔다. 그곳에서부터 이미 탄핵 반대 시위는 시작되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나와 맨 먼저 마주친 이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교통경찰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 수가 시위대만큼이나 많았다. 인도와 차도가 사람들로 가득 찼고, 경찰 버스로 경계벽을 세워 오가는 차량의 숨통을 틔웠다. 이미 그곳을 지나는 노선버스가 우회한다는 안내가 떴다.
 
증오심에 불탄 거친 말들이 크레인에 매단 스피커를 통해 아래로 쏟아졌다. 동시다발적인 구호가 뒤엉키는 데다 소리가 너무 커서 웅웅거렸지만,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들리진 않아도 단상의 구호가 이미 손에 쥔 팸플릿에 적혀있어 그대로 따라 외치면 될 일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건너가는 육교는 차라리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의 전시장'이었다. 비상계엄은 정당하다거나 체포영장이 불법이라는 현수막을 버젓이 걸고 있다. 차마 탄핵을 부정하기는 뭐했던지, '그래도 이재명의 나라는 안 된다'는 하소연 같은 내용도 있다.
 
무대 위에선 자유 발언이 한창이었다. 집회 참가자의 대다수는 어르신들이었지만, 단상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30대 비정규직 노동자와 40대 소상공인, 특정 교회의 신도, 탈북민, 심지어 앳된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이라고 소개하는 이들도 있었다.
 
분명 탄핵 반대를 위한 집회인데, 그들의 분노가 향하는 '표적'은 중구난방이었다. 물가가 너무 올라서 살기 힘들다는 푸념과 외국인 노동자가 물밀듯이 들어와 취업이 힘들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터무니없는 집값에 청년들은 미래를 꿈꿀 자유조차 빼앗겼다고 부르대기도 했다.
 
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과 원전 폐기 정책은 '동네북' 신세였다. 우리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한 주범이라며, 어디서 본 것인지 모를 조악한 통계 수치들이 그들의 입에서 술술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단상 아래 군중들은 함성으로 화답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중국을 여전히 '중공'으로 불러... 구호에 '아멘' 화답
 
어르신들은 주로 '이념'을 문제 삼았다. 전 정부가 북한과 중국에 굴복하다 보니 미국, 일본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주장이었다. 'China Out'이라고 적힌 팸플릿을 들고 "중국인 꺼져!"라는 구호를 공공연히 외쳤다. 성조기와 오성홍기는 광장에서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그들에게 북한과 중국은 '공공의 적'이자 '만악의 근원'이었다. 북한은 핵 개발로 안보 불안을 조장해 우리 경제를 파탄 냈고, 중국은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핵심 기술을 빼가는 파렴치한 나라라며 낙인을 찍었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침소봉대의 주장들이 그곳에선 '진실'이었다.
 
여기에 구호를 따라 외치는 대신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개신교 신도들까지 합세했다. 군중 사이에선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즉시 단절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나왔다. 놀랍게도 그들은 중국을 여전히 '중공'으로 부르고 있었다.
 
청년들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어르신들의 분노, 개신교 신도들의 기도는 모두 '반공'으로 귀결됐다. 급기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깃발까지 등장했다. 단상 위에서 자유 발언을 마친 한 시민은 군중 앞에서 구호 대신 "멸공!"이라고 경례를 붙였고 군중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대통령 관저 입구는 막혀 있었다. 집회 군중 때문이 아니라 경찰과 바리케이드, 차벽 등이 길을 이중삼중 가로막았다. 순간 이곳이 극락세계와 아수라장의 경계선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평화로워 보이는 안과 서슬 퍼런 구호가 난무하는 바깥의 풍경이 그로테스크하게 포개졌다.
 
입구엔 정반대 주장을 펴는 시위대가 일찌감치 자리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을 즉각 체포하라고 외치는 이들이다. 그들 주변엔 마치 두터운 차단벽처럼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긴장감마저 감돌게 한다. 탄핵 찬반으로 엇갈린 집회 참가자들 사이의 충돌을 예방하려는 조치다.
 
이곳의 집회 참가자 숫자로만 보면, 탄핵 반대 여론이 더 높다고 오해할 만하다. 탄핵 찬성 집회가 탄핵 반대 집회에 겹겹이 포위된 모양새였다. 같은 시간 광화문 광장에서 수십만 명이 모여 탄핵 찬성 집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여기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윤 대통령을 즉각 체포하라고 외치는 이들은 한눈에 봐도 젊은이들이 태반이었고 성별의 차이도 없었다. 공수처의 신속한 영장 집행을 기다리며,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응원군을 자처하는 듯했다. 그 자리엔 날 선 구호보다 '다시 만난 세계' 등의 노래가 자주 울려 퍼졌다.
 
시간이 갈수록 탄핵 반대 집회의 구호는 거칠어졌다.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자거나 암약하는 간첩을 색출해야 한다는 철 지난 색깔론까지 무시로 튀어나왔다. 한남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는 규모는 작았지만, 그 앞을 지나가기 두려울 정도로 살벌했다.
 
헌법재판관도 공격 대상
 
 한남초등학교 교문 앞 탄핵 반대 시위 현장. '이곳에서 미래의 희망들이 자라고 있다'는 내용의 교문 현수막이 겹쳐져 쓴웃음이 났다.
▲한남초등학교 교문 앞 탄핵 반대 시위 현장. '이곳에서 미래의 희망들이 자라고 있다'는 내용의 교문 현수막이 겹쳐져 쓴웃음이 났다. ⓒ 서부원
 
'순국 결사대'와 '북벌 의병단'을 만난 곳도 거기였다. 윤 대통령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구호가 이어졌고,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의병을 자처하는 이들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북벌'은 북한을 토벌하자는 뜻을 넘어 중국을 혐오하고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북벌 의병단, 순국 결사대 등의 살벌한 이름의 대형 깃발이 시위 현장마다 나부꼈다.
▲북벌 의병단, 순국 결사대 등의 살벌한 이름의 대형 깃발이 시위 현장마다 나부꼈다. ⓒ 서부원
 
그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됐다. 공수처는 물론, 체포영장을 발부한 법원도, 탄핵 심판 중인 헌법재판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불법 증거'를 채택했다는 황당한 이유로 현직 헌법재판관의 이름을 거론하며 욕보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얼굴 사진을 칼로 도려낸 모습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얼굴 사진을 칼로 도려낸 모습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 서부원
 
그들의 주장은 단순명료했다. 윤 대통령이 종북 좌파와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므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건 종북 좌파와 반국가 세력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곧, 탄핵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과 야당은 공산주의에 경도된 반국가 세력이라는 논리다.
 
 탄핵 반대, 부정선거 검증, China Out 등의 구호가 적힌 팸플릿이 곳곳에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탄핵 반대, 부정선거 검증, China Out 등의 구호가 적힌 팸플릿이 곳곳에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서부원 
 
민주당의 대표인 이재명은 공산주의자이며, 자유 대한민국의 혼란을 부추기는 진짜 '내란 수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민주당의 당명도 스스럼없이 '더불어 공산당'이라고 바꿔 불렀다. 누가 봐도 '아무 말 대 잔치'였으나, 구호를 외칠 때마다 "이재명을 구속하라"로 화답했다.
 
그들에게 윤 대통령은 절대지존의 왕이었다. 윤 대통령의 탄핵을 막는 게 도탄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는 길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부정선거 검증' 팸플릿을 든 한 어르신께 "부정선거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지 않았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혀를 끌끌 차시며 답변 대신 당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주셨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극우 유튜브 채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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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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