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파장…몰랐던 소방대원들 "힘 빠진다" 허탈·당혹
강지은 기자 2025. 1. 19. 08:15
 
허석곤 청장 등 지휘부, 참고인 조사 줄소환
이상민 전 장관, '단전·단수' 지시→하달 의혹
"단전·단수 소방 업무 아냐"…일선 사실 몰라
"계엄동조? 사기꺾여" "정권의 하수인" 자조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허석곤 소방청장. 2024.07.11. xconfind@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허석곤 소방청장. 2024.07.11. xconfind@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12·3 비상계엄 당시 허석곤 소방청장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 지시를 받고, 이를 내부에 하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소방 당국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단전·단수 조치가 소방청 고유 업무도 아닌 데다 일선 현장에선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져 각종 재난 현장에서 최일선에 있는 소방 대원들의 허탈감만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소방청과 수사 당국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14일 허 청장을 시작으로 16일 황기석 서울소방재난본부장, 17일 이영팔 소방청 차장을 각각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공수처는 이들을 상대로 언론사 단전·단수 관련 이 전 장관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이를 위한 후속 조치가 있었는지 등을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허 청장은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계엄 당시 소방청장 주재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안다. 그 때 행안부 장관으로부터 지시 사항이 있었느냐'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회의 중에 전화를 한 번 받았다"고 했다.
 
이에 윤 의원이 '그 내용이 혹시 주요 언론사 단전·단수 관련이었냐'고 묻자 허 청장은 "단전·단수 지시가 명확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경찰에서 협조 요청이 있으면 협조해달라는 뉘앙스였다"고 말했다.
 
해당 언론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MBC, JTBC,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인 것으로 파악됐다.
 
윤 의원이 '그런 지시를 제3자에게 이관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허 청장은 "그날 옆에 소방청 차장이 있어서 의논했는데, 특별하게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며 "단전·단수가 소방의 의무는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단전·단수는 한국전력과 수도사업소 업무다.
 
그러나 윤 의원이 지난 15일 공개한 서울소방재난본부 자료를 보면 이 차장은 계엄 직후인 지난달 3일 오후 11시40분께 황 본부장에게 전화해 계엄 선포와 포고령 내용을 아는지 물은 뒤 "경찰청에서 협조 요청이 오면 잘 협조해달라"고 했다.
 
10분 뒤인 오후 11시50분께에는 허 청장이 직접 황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은 사항이 있는지 확인한 뒤 "서울에 상황이 많을 수 있으니 발생 상황을 잘 챙겨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만 허 청장은 이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단전·단수'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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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의혹과 파장이 커지자 소방 당국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일선 현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거나 지시 받은 사항이 없다는 게 소방청의 주장인데, '소방마저 내란에 동조했다'는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면서다.
 
실제로 소방청이 계엄 당시 각 시·도 본부에 발송한 '비상계엄령 선포 관련 소방청장 긴급지시사항' 알림을 보면 '전국 소방관서 재난대응 긴급구조 출동태세 강화', '유사 시 신속한 상황전파 체계 강화' 등의 지시만 담겼다.
 
소방청 관계자는 "저희는 곳곳의 집회·시위로 인해 국민이 다치거나 충돌이 발생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즉시 출동 태세를 확립한 것밖에 없는데, 계엄에 동조했다고 하니 직원들의 사기가 꺾이고 힘이 빠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수습과 화재·폭설·응급의료 대응, 연말연시 소방안전대책 추진 등으로 현장에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소방·구조 대원들의 노고가 자칫 빛을 바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 관계자는 "제주항공 사고 수습 대원들은 현재 트라우마 상담도 받고 있는 중"이라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고생해온 직원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고, 청 내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힘 없는 조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소방 공무원은 "물론 청장 등 지휘부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소방청이 '독립청'으로 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부가 소방을 '정권의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소방 당국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해 맡은 업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성명을 통해 "지금이라도 소방청장과 동조자는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이것이 국민의 무한 신뢰를 받아온 소방관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만일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국회 건물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부터 취했을 것이고, 방송 송출도 제한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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