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수첩' 내용 입수... 수거대상 목록과 처리 계획
강현석 2025년 02월 14일 18시 14분
 
12·3 비상계엄을 설계한 비선으로 지목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 내용 일부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수첩 내용은 A4용지 1장 분량으로 ‘수거대상’ 및 ‘수거대상에 대한 처리 방법’ 등이 적혀 있다.
 
수거대상은 계엄법에 의해 체포돼 구속수사를 받거나 임의적으로 처단될 인사들을 뜻한다. 수첩 내용을 보면, 수거대상의 신병 확보를 목적으로 ‘작전요원’을 투입하고,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수거대상을 처단 또는 단죄하려 했던 계획이 확인된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을 활용”한다거나 작전요원들에게 “휴대폰을 지급”한다는 세부 계획까지 수첩에 적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거대상'에 주요 정치인과 법관 명단 확인
 
‘노상원 수첩’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거나 윤석열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인사 수십명이 수거대상으로 분류돼 있다. 정치인 중에선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이 수거대상으로 지목됐고,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등 법관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이중, 김 전 원장과 권 전 대법관은 지난 2020년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무죄 의견을 냈고, 유 판사도 2023년 9월 대북송금 등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대표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은 법관들을 수거대상으로 분류한 것인데, 더 나아가 노 전 사령관은 “이재명 지원 판사, 검사들”을 수거대상으로 적시했다.
 
뿐만 아니라, ‘노상원 수첩’에는 “전교조, 민변, 민노총(민주노총),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유시민, 김어준, 좌파방송, 더탐사, 좌파유튜버, 가짜뉴스 양산공장” 등 언론인·언론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채해병 수사 외압’ 사건의 당사자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방송인 김제동, 체육인 차범근 씨도 수거대상으로 표기된 사실이 확인됐다.
 
'노상원 수첩'에 적힌 수거대상 명단, 입수한 제보 내용 통해 재구성
 
계엄군의 특별수사본부 구성 계획... 서울중앙지검 활용 방안 담겨
 
‘노상원 수첩’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이들 수거대상을 처단하기 위해 검찰을 중심으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할 계획을 세웠다. “수거대상 처리방법 연구”라고 쓰인 메모 뒤에는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한다고 돼 있다. 수사본부는 “6개월~1년 정도 구성”하고, 검사와 판사, 서울중앙지검을 활용한다고 적혀 있다. 문맥상 검찰을 동원해 부정선거 관련 수사를 벌이거나 이재명 대표와 얽힌 비위 등을 캐내 처벌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재로선 노 전 사령관이 어떤 배경으로 ‘서울중앙지검’을 특정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특별수사본부를 움직일 별도의 ‘지휘소’를 구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계엄 상황을 관리할 지휘소는 국방부 또는 합동참모본부(합참)에 설치될 계획이었다. “지휘소 파견”이라고 적힌 메모 뒤에는 “거기(검찰)서도 오고, 경찰요원, 국방부 조사본부”라고 적혀 있다. 문맥상 검찰과 경찰,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지휘소 인력’을 파견받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메모에는 “합참, 국방부서 별도 파견관을 운영하고, 거기서 지휘소로 보고하도록 한다”고 기재돼 있다. 해당 지휘소가 ‘수거대상 처리’를 보고받고 지휘하기 위해 구상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노상원 수첩'에 적힌 수거대상 처리 방법, 입수한 제보 내용 통해 재구성
 
특히 노 전 사령관은 “지휘통신/보안”이라고 적은 메모를 통해 지휘소의 구체적인 운영계획을 밝혔다. “작전요원들 휴대폰 지급”, “지휘소 구성요원은 지급된 휴대폰으로 통화”, “사적통화금지, 불이익 준다”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작전요원들은 수거대상을 처리하는 특수 임무를 맡은 ‘군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휘통신/보안” 항목에 적힌 메모에는 “500계열 제외”라고 돼 있는데, 500은 군사상 기무부대를 지칭하는 은어로 파악된다. 
 
또 노 전 사령관은 “통신보안문제 논의 필요”, “사적 대화자는 2박 3일간 사적대화, 휴대폰 압수”라는 메모를 통해 자신들의 계획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 방안을 검토했다. “사후조치시 관리” 대목에선 수거대상을 모두 제거한 뒤에 작전에 투입된 ‘작전요원’들을 “토사구팽”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수거대상과 함께 폭사 또는 수장시킨다는 비현실적 방안 등이다.
 
아울러 수거대상을 임의로 처리할시, 즉 수거대상이 사라지면 수반될 “법적 문제(수사진행시)”를 고민한 대목도 나온다. “경찰인원 선발”, “수사진행시 막을 수 있나?”와 같은 수거대상에 대한 후속처리 방안을 고심한 글도 발견된다.
 
노상원, 비상계엄 전후 김용현과 수차례 회동... "상원아,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하냐"
 
‘노상원 수첩’은 계엄군의 소위 ‘반국가세력’에 대한 ‘척결 작전’이 실제 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다. 노 전 사령관은 수첩에서 “향후 정국 운용시 주도권 문제”라는 메모를 남겼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평화적·일시적 계엄”이라고 주장하며, 비상계엄을 끝까지 실행할 의지가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반대로 노 전 사령관은 “향후 정국 운용”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계엄 정국이 장기화될 상황에 대비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번 12·3 비상계엄을 앞두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정치인 체포 작전’을 수립하거나 ‘선관위 직원 감금 작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핵심 인사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김 전 장관은 12·3 비상계엄 직전인 지난해 11월 말부터 비상계엄 당일인 12월 3일까지 매일 노 전 사령관과 만났다. 12월 4일 계엄 해제를 앞두고도 노 전 사령관과 통화한 내역이 확인됐다. 공개된 통화 내용 중에는 김 전 장관이 “상원아,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하냐”고 한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상원 수첩’이 이번 계엄과 전혀 무관한 기록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 노 전 사령관은 경찰 조사에서 수첩에 적힌 메모에 대해 “김 전 장관이 불러주는 대로 적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상원 수첩’에 적힌 반국가세력 척결 계획이 김 전 장관의 지시에 의해 수립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더해 ‘계엄 2인자’였던 김 전 장관이 윤 대통령의 승인 없이 이 같은 무도한 계획을 시도했을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노상원 수첩’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지시 여부가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
디자인  이도현
웹출판  허현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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