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선영 진화위원장, 납북귀환어부에 “월북어부”…“2차 가해”
고경태 기자 수정 2025-02-20 13:02 등록 2025-02-20 13:00

지난해 12월17일 열린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박선영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납북귀환어부 사건의 진실규명을 심의하던 중 “(납북귀환어부가 아니라) 월북귀환어부가 아니냐”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의 핵심이 북한에 납치된 피해 어부들을 자진 월북자로 조작한 것이라, 피해자들은 ‘2차 가해’에 가까운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20일 진실화해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지난 18일 오전 열린 제98차 전체위원회에서 ‘동해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을 비공개 심의하던 중 당시 판결문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이유를 들어 ‘월북귀환어부 사건’으로 명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에 대해 사건을 조사한 조사8과의 홍수정 과장이 “과거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월북으로 판단했으나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선원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납북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위원회 결정 이후 재심 신청을 많이 하고 있고 대부분 법원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져 무죄가 인정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더 이상 반대의견을 피력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날 전체위에서 위원들은 ‘동해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을 심의하고 피해 선원 6명에 대해 진실규명(피해 확인)으로 결정했다. 이는 동해상에서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된 동해호 선원들이 귀환 직후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 불법적인 수사를 받은 후 반공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인권침해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의 수사 공판 기록, 판결문, 형사사건부, 납북귀환어부 심사 보고 등을 확인했으며, 신청인과 참고인 등을 조사해 이같이 결론 내렸다.
박선영 위원장의 ‘월북 납북어부’ 발언에 대해 진실화해위 한 관계자는 “확정판결문 사안이어서 혼돈이 있었다. 큰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 박선영 위원장은 담당 과장의 설명을 듣고 어부들이 월북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은 걸로 전해졌다. 다만 또 다른 관계자는 “박 위원장이 ‘판결문에는 대상자가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조사보고서에 경찰서 의견서를 기초로 ‘납북되었다'고 사건의 경위를 다르게 정리하면 안된다’면서, ‘납북과 '월북은 다르다'고 자세히 설명했다”며 “납북귀환어부사건이 사실은 북한에 의해 납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의해 고의 월북 후 간첩활동을 하였다고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동·서해안의 어로저지선, 북방한계선과 가까운 곳에서 조업하던 어부들은 승진과 훈·포장을 노리던 경찰들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경찰은 우리 해역 안에서 조업하던 중에 북한 경비정 등에 납치되었다는 것을 파악했음에도 이들이 월북한 것인 양 조작해 국가보안법, 반공법으로 처벌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월북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불법구금돼 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한 어부의 숫자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뒤 1987년까지 총 3648명에 이른다.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는 2006년부터 이뤄져 1기 진실화해위에서 17명이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2020년 2기 진실화해위 출범 이후엔 18일까지 32차례에 걸쳐 총 790명이 진실규명을 받았다. 대검찰청은 전향적으로 형사처벌 받은 100명의 납북귀환어부들에 대한 직권재심을 진행하기도 했다.
1971년 제2승해호에 탑승해 선원 21명과 함께 동해에서 조업하다 1년간 납북돼 돌아온 뒤 간첩으로 조작돼 현재 이와 관련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김춘삼(동해안 납북귀환 어부 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판결문에도 ‘당시 국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국가 쪽 변호인의 이야기가 인용된 걸 보고 너무 기분이 나빴다”며 “박선영 위원장의 발언은 무지라기보다 피해자들을 우습게 알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요직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언어를 선택해서 써야 하는데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납북귀환어부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해온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월북귀환어부'라는 발언은 피해 어부들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엄경선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운영위원도 “강제로 납북된 걸 월북이라고 조작해서 반공법으로 처벌받고 평생 빨갱이 소리 들으며 살아온 한 맺힌 피해자분들에게 다시 못을 박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과거 독재정권을 옹호해온 위원장이 어찌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해가스전 수의계약) 곽상언 의원, '대왕고래, 마귀상어' 영문 계약서 2건 최초 공개 [TF포착] - 더팩트 (0) | 2025.02.20 |
---|---|
[12.3내란] 조지호 “윤 대통령,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하라해 ···목소리 다급했다” 계엄 전후 8번 통화 (0) | 2025.02.20 |
'중국인 간첩' 가짜뉴스는 '캡틴아메리카-미주 한인' 합작품 - 뉴스버스 (0) | 2025.02.20 |
[12.3내란] 국회 등장한 계엄군 케이블타이…“김현태 거짓말, 이걸로 문이 잠기냐” - 한겨레 (0) | 2025.02.20 |
[12.3내란]"노상원, 아침에 선관위 온다"…尹 '2시간 계엄' 주장 또 모순 - 노컷 (0) | 2025.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