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이 '극우의 새싹'? 이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시만난세계_2025] '교실 극우화'를 막는 대안 세 가지
교육 서부원(ernesto) 25.02.21 14:13ㅣ최종 업데이트 25.02.21 14:13
 
12·3 내란 사태 이후, 시민들은 무너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두웠던 광장을 빛으로 채운 건 형형색색의 응원봉뿐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외침은 광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합니다.[편집자말]
 
▲'윤석열 구속'에 지지자들 폭동 흔적윤석열 대통령이 1월 19일 새벽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부지법 외곽에서 바라 본 폭동 흔적.남소연
 
얼마 전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12.3 내란 사태'를 두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됐다. 만약 비상계엄이 선포되지 않았다면, 남은 임기 동안 윤 대통령이 직을 그대로 유지했을 거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윤 대통령 스스로 임기 단축을 초래한 자충수였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각성시켜 준 계기였다고 강조했다. 서구에서 비롯된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이념적 기반이 허약한 현실도 두루 지적하며, 윤 대통령의 파면으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거라는 희망을 설파했다. 언뜻 우리 현대사가 '12.3 내란 사태' 전과 후로 확연히 나뉠 것처럼 들렸다.
 
자격도, 능력도 안 되는 자가 '어쩌다' 대통령 자리에 올라, 온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기를, 하여 임기가 서둘러 끝나기를 온 국민이 오매불망 바랐던 첫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그냥 관저에서 술이나 드시고 부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조롱이 늘 따라다녔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대통령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하고 무지했지만, 하루가 멀다 않고 터져 나오는 '뻘짓 덕분에' 감춰져 있던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점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라는 판검사들과 육사 출신의 고위 장성들, 집권 여당의 중진 의원들의 '수준'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아가 내는 세금만 수십억 원이라는 한국사 '1타 강사'의 극우적 인식까지 드러내 주었다.
 
도올 선생이 부러 반어적 표현까지 써가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것도 그래서다. 오랫동안 부와 권세를 독점해 온 그들의 민낯을 온 국민이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들을 '걸러낼'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낡은 패러다임을 변혁하고 주류 세력을 교체할 '골든 타임'이라는 노 사상가의 일갈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
 
'골든 타임'일지언정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난세의 영웅이 나타나 일거에 구태와 거악을 척결하는 건 판타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분야와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거부한 채 호시탐탐 반동의 기회만 엿보는 '윤석열들'의 싹을 도려내야 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물론, 시간조차 악의 편이다.
 
학교 교실에서 마주친 '윤석열들'
 
▲서부지법 담벼락에 붙어 있는 '좌파 판사 카르텔 척결'윤석열 대통령이 1월 19일 새벽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부지법 담벼락에 붙어 있는 피켓. '좌파 판사 카르텔 척결'이라고 적은 문구가 보인다.남소연
 
현직 교사로서, '윤석열들'과 맞서 싸워야 할 나의 자리는 당연히 학교 교실이다.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지난 '1.19 서부지법 폭동' 이후 온 국민이 청년들의 극우화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한 터다. 구속된 폭도 중 과반이 20~30대 청년이라는 믿기 힘든 보도가 있었다. 심지어 건물 방화를 시도한 혐의로 10대 청소년이 전격 구속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여론은 연일 호들갑을 떨었지만, 교사로서 딱히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수면 위로 떠올라 도드라져 보인 것일 뿐, 극우화한 아이들의 되바라진 언행들은 기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론, 몇 해 전부터 시나브로 극우화하는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분위기를 주제로 여러 차례 기사를 송고하기도 했다.
 
'1.19 서부지법 폭동'이 벌어진 뒤에야 해당 기사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광주의 한 고등학교 축제에서 학생들이 극우 유튜브 채널의 대표에게 축사를 의뢰한 일이 알려지면서, 최근 내게 언론사와 종편, 지역 민방, 심지어 유튜브 채널에서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더욱이 초대를 받은 이는 5.18을 왜곡하고 폄훼해온 대표적 극우 유튜버다.
 
인터뷰는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 특히 얼굴과 육성이 공개되는 방송의 경우라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바로 전화를 끊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격이지만, 이태 전 아무 생각 없이 모 방송의 인터뷰에 응했다가 교무실의 전화가 며칠 동안 불이 난 적이 있어서다. 당시 개인 메일은 온갖 비난과 욕설로 도배되어 당분간 열어보지도 못했다.
 
사실 언론과 방송에서 인터뷰를 통해 내게 묻고자 하는 건 이 두 가지다. 하나는 요즘 극우화한 교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려달라는 거고, 다른 하나는 현직 교사로서 이에 대한 대안이 무엇이냐는 거다. 전자는 이미 이전 기사들에서 아이들의 행태를 범주화한 뒤 상세하게 소개했으니 따로 덧붙일 건 없다. 일독을 권할 따름이다.
 
여기선 오랫동안 숙고해 온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거에 해결되는 '도깨비방망이'도 아닐뿐더러 언뜻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이 길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극우화를 막아낼 수 없다는 것. 이대로 방치했다간 무풍지대로 여겨온 여자 고등학교조차 위험해질 수 있다.
 
물론, 고등학교에 한정될 문제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일상에서 '일베 용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극우 유튜브를 통해 역사를 공부한다고 한다. 일베의 업데이트 버전이라는 '펨코'가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인터넷 놀이터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초등학생은 '극우의 새싹'이고, 고등학생은 '극우의 전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거칠게 말해서, 초중고 나눌 것 없이 학교가 극우 세력의 '양성소'라는 이야기다.
 
초등학교까지 침투한 '교실의 극우화', 막아야 한다
 
▲1월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 후문쪽 입구에 지난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일으킨 서부지법 폭동사태로 부서진 건물 외벽과 유리창이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권우성
 
첫째, 교실 수업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획일적인 강의식 수업과 대입 준비를 위한 맹목적인 기출 문제 풀이 방식은 교실의 극우화를 부추기는 원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언하건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극우화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수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토론과 협동학습이 최선이다. 한 해는커녕 한 달만 지나도 쓸모없는 지식이 되는 교과서의 내용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건 바보짓이다. 단원별 학습 목표에 부합하는 질문을 던지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이야말로 머리를 일깨울 수 있다. 또, 모둠별 과제를 함께 수행하면서 역할을 분담하고 조정하며 완수하는 경험만이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각인시킬 수 있다.
 
한가하게 디지털 교과서나 인공지능 활용 수업의 필요성 운운할 때가 아니다. 전국의 모든 교실마다 밀물처럼 들어오는 '에듀 테크'와 스마트 기기 열풍은 마치 서너 살짜리 아이의 손에 칼을 쥐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유컨대, 그들이 요리사가 된 뒤 칼을 쥐여줘도 늦지 않다. 지금 아이들에게 절실한 건 '기능'이 아니라 '인성'이다.
 
둘째,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독서는 극우화를 막는 특효약이다. 꾸준한 독서로 단련된 뇌는 범람하는 가짜 뉴스에 쉬이 휘둘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출처와 근거를 의심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며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따져본다. 심지어 책에 기록된 내용조차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비판적으로 읽으며 반론 거리를 찾는다.
 
대입 준비를 위한 인터넷 강의(인강)가 보편화하면서 교실 극우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요즘 아이들은 모든 교과를 인강으로 공부한다는 이야기가 더는 놀랍지 않다. 어느덧 인강이 '교과서'이고, 유튜브 채널이 '교실'이며, 유튜버는 '교사'를 대체하고 있다. 공교육을 무릎 꿇린 거리의 학원들마저 이젠 유튜브에 적수가 되지 못하고 포획된 상태다.
 
유튜브를 통한 학습과 소통은 수동적일뿐더러 일방향적이다. 필기구만 손에 쥐고 있을 뿐, 영화를 관람하고 TV의 쇼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구독자와 조회 수에 목매단 유튜브 채널은 다루는 주제와 상관없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교육의 본령을 생각할 때, 유튜브와 교육은 상극이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독서만 한 게 없다. 독서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금언도 있다. 이제는 교사와 부모도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책과 멀어진 기성세대의 극우화가 유전 형질처럼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이되고 있다는 분석마저 내놓고 있다. 혹자는 극우화를 '현상'이 아닌 '질병'이라고 규정한다.
 
셋째, 우리 사회의 전방위적 '예능화'를 제어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단순명료하다. 재미있으면 선이고, 재미없으면 악이다. 또래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개인기'를 가지고 있는 게 그들 사이의 '교양'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대신 자기 방에 틀어박혀 유튜브에 몰입하는 것도 그래서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최고의 교사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수업을 잘한다는 의미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아무리 알차고 풍부한 내용이라도 재미없는 수업은 배척당한다. 차라리 속 빈 강정일지언정 웃기는 수업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아이들이 수업 때 인공지능과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에 찬성하는 이유도 지금보다는 더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에서다.
 
'재미 중독'으로부터 아이들을 서둘러 구출해 내야 한다. 이른바 '극우화의 온상'이라는 일베와 '펨코'가 철부지 초등학생 사이에서조차 득세하는 건 징후적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단순히 재미있음과 재미없음으로 치환하는 경박한 교실을 나 몰라라 하면, 머지않아 아이들은 '극우의 선봉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