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 한일 극우의 데칼코마니
목격자들 2025년 03월 05일 18시 00분
폭력화되는 극우
지난 1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법원에 난입한 사람들이 있었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붙잡겠다며, 판사실을 찾고 경찰과 공수처 직원, 언론인을 폭행하는 등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전담수사팀에 의해 구속기소 된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극렬 지지자들이었다.
일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위 모습을 보면 일본회의 시위와 굉장히 닮았습니다.
- 스가노 다모쓰 / 독립 언론인
광복 80주년이 되는 올해 삼일절을 맞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를 놓고 집회의 성향은 좌우로 극명하게 갈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 극우의 뿌리를 찾는 여정
삼일절을 맞아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함께 일본 극우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이동했다. 시모노세키로 이동하는 바닷길은 일제강점기인 1905년부터 40년간 운항됐던 부관연락선의 항로였다.

▲ 시모노세키 철도 잔교에 정박한 경복환 케이후쿠마(부관연락선)
부관연락선, 침략과 수탈의 항로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의 거리는 200km, 11시간을 이동하는 항로다. 배가 운행을 시작한 1905년은 을사늑약이 체결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강제로 박탈 당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배는 남만주철도 주식회사가 운영하면서 철저히 한반도의 자원을 수탈하는 루트로 이용됐다. 지금은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됐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선조들의 절망과 눈물이 흐르던 항로이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정한론’의 기원지
과거 조슈번으로 불렸던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 이곳에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의 신사와 과거 학교(쇼카손주쿠)로 이용하던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쇼카손주쿠는 요시다 쇼인이 열었던 서당으로 여기서 배운 학생들이 성장해 일본 메이지 유신을 만드는 주역이 됐다. 제자로는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같이 한반도를 일본의 영역으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성장한 곳이다.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은 내부 갈등을 외부로 돌린다는 논리로 일본 제국주의 사상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메이지 산업유산의 구성자산으로 들어가 있다.
만일 이것이(쇼카손주쿠) 포함돼 있어서...(중략)...메이지 산업 시설에 들어가지 않아야 할 곳으로 우리가 문제 제기를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 요시다 쇼인의 동상
차별과 혐오의 헤이트 스피치
극우에서부터 지역 사회에서의 외국인 차별, 혐오 구조를 주제로 활동하는 언론인 야사다 고이치 씨. 그는 우익 시위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영상 속 일본인들은 욱일기와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를 들고 있었다. 야스다는 그들이 그저 인종 차별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보여준 다른 영상에는 일본에 사는 쿠르드인 축출 시위 장면이 들어 있었다. 그들에게 일본을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신오쿠보에서 한국인에게 혐오의 말을 퍼붓던 사람들이었다. 야스다는 윤 대통령의 12.3 내란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일본과 동일하다는 기시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말하는 내용과 말투도 한일 극우들이 서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혐오주의자들은 대상을 손바닥 뒤집듯 여러번 반복해서 바꾸고 있습니다. 대상이 일본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멋대로 판단한 국가나 사람이 대상이 됩니다.
- 야스다 고이치 / 독립 언론인

▲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왼쪽)와 독립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 씨

▲ 일본 우익 시위
언론인 스가노 다모쓰 씨도 한국 극우의 모습이 일본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관저에 경찰들이 진입하려는 순간 대통령을 지키는 시위대 속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의 다윗의 별, 일장기와 태극기를 봤다는 그는 그들이 힘에 대한 동경, 신앙을 버리지 않는 이상 애국심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힘에 대한 동경은 정작 국가와 격렬하게 대립하는 개념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애국자라면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것에 대한 동경.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캐치프레이즈는 힘에 의한 평화였다. 스가노는 일본이 힘없는 우리를 지배했다고, 이건 당시 국제 정세에서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는 말들은 일본 우익이 하는 말과 동일하다고 했다.
최근 한국에서 극우 유튜버들이 대학을 순회하며 난동을 부린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2월 26일 이화여대에 무단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학생들의 멱살을 잡고 밀쳐 넘어뜨리고, 피켓을 부수는 등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 것. 그들은 폭행과 재물 손괴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건국대에선 탄핵 찬성 집회를 저지하려는 극우 유튜버가 학생들에게 시진핑을 욕하라고 요구하는 등 노골적인 언어 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 씨는 "확산하는 파시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익잡지 왼쪽에서 순서대로 <WiLL>, <Voice>, <Hanada>, <正論(정론)>
혐오의 흐름
과거 우익 잡지에서 일했던 가지와라 마이코 씨. 그녀는 잡지를 팔아야 하므로 내용에 자극적인 표현을 쓰게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충격적인 제목으로 '넷우익' 층을 겨냥해 판매랑을 유지한다는 것.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한국의 극우 논객 이야기를 일본의 혐한 서적이 이용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흐름이 다시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두 개의 흐름이 순환하며 논리를 형성해 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남 교수는 "그럴수록 진실에서 멀어지고 가상의 현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이 여전히 한반도의 정치와 외교, 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한론'에서 발원한 일본 극우는 이제 무력 대신 자본과 이념으로 한국 사회에 침투하고 있다.
작년 8월 16일 KBS 뉴스 W에 출연한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제1차장. 그는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죠”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김태효 차장은 2005년 나카소네 세계평화연구소가 주는 제5회 나카소네 야스히로 상을 받았던 인물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일본의 71~73대 총리를 연임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1965년 8월 15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해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 국민들을 분노케 했었다.
김태효 차장은 학자 시절부터 줄곧 일본과의 안보협력과 강화를 주장했다. 2006년에 낸 논문에선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지원 역할'을 강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당이 극우와 결합하면 엉망이 되는 거예요. 정당이 극우하고 결합하면 민주주의는 부정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 신주백 / 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김 차장과 비슷한 사례로 미국 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있다. 그는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장학생이다. 1970년대 미쓰비시가 하버드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 대가로 일본을 연구하는 석좌 교수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 첫 수혜자가 바로 램지어 교수였다. 램지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매춘부"라고 하는 등 친일 주장을 해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신우익을 표방하는 일수회(一水会) 대표 기무라 미쓰히로 씨. 그는 과거 한국 보수파 저널리스트가 일본은 잘못이 없다고 한 말을 언급했다.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많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비슷한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면, 왜곡된 내셔널리즘으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제작진
기획 한상진
프로듀서 송원근
자료조사 조용기
내레이션 남기정
글 구성 최미혜
촬영 연출 박정남
출판 허현재
웹디자인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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