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석열 석방과 법원·검찰 책임론
뉴스타파 2025년 03월 09일 14시 10분
법원이 대형 사고를 치자 검찰이 수습은커녕 맞장구를 쳤다. 지난 8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의 지휘에 따라 구속된 지 52일 만에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검찰이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한 결과다. 그에 따라 내란 우두머리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기소된 윤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법원의 느닷없는 구속 취소 결정도 기괴하지만, 검찰의 ‘백기 투항’도 그 못지않게 황당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법원 결정을 그토록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다니. 법원이 마땅히 받아야 할 비난을 가로채서 독차지하는 희생정신을 발휘한 셈이다.
형사소송법은 기본적으로 법원 우위이기는 하지만, 법원과 검찰이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예컨대 검찰권 행사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 검찰이 상급법원에 이의 제기를 하는 식이다.
구속 취소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결정이라 검찰은 서울고등법원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대법원에 재항고를 할 수도 있다. 형사재판에서 법원 판결에 불복할 때 항소와 상고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석방 집행은 보류된다.
검찰이 법원 결정이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형사소송의 기본 절차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례적이다. 그 점에서 검찰이 정당한 법적 대응 수단인 즉시항고를 포기한 것은 검찰사에 기록될 만한 특이한 처사다. 아무리 친윤 검사들이 지휘부와 주요 보직을 장악했다고 해도 이처럼 대놓고 호위무사를 자처하다니. 정치검찰임을 자인한 셈이다.

8일 서울구치소를 나오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윤석열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52일 간 구속 수감됐던 윤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결정으로 풀려나 대통령 관저로 돌아갔다. (출처:연합)
검찰 지휘부는 즉시항고를 포기하면서 법원 결정과 헌법재판소의 관련 판례를 존중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내란죄 수사팀이 강력히 반발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빈약한 논리다. 규정에도 관례에도 맞지 않는다.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한 과거 검찰의 공식 입장과도 다르다. 헌재 판례는 구속집행정지에 관한 것이기에 참고할 내용이지 꼭 따라야 할 지침은 아니다. 상급법원에서 법리적으로 충분히 다퉈볼 만한 사안이다. 검찰 발표문에는 항고해 봐야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취지가 담겼지만, 정반대로 상급법원에서 다른 결정이 나올까 봐 아예 싹을 자른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지경이다.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정치검찰 자인한 셈
많은 사람이 검찰을 비난한다. 처음에는 검찰의 잘못 또는 실수에 분통을 터뜨렸다. 야당은 검찰의 ‘산수’ 실력을 조롱하기도 했다. 법원이 검찰의 구속기간 산정 착오를 구속 취소 결정의 주된 사유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검찰이 ‘실수’를 만회할 수도 있는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자 분노가 극에 달했다. 내란 사건에 대한 신속하고도 비교적 정확한 수사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했던 검찰은 이로써 다시 민주시민의 공적이라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긴 해도 비난의 화살을 검찰에만 쏟아붓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번 변고의 1차 책임은 분명히 법원에 있다. 검찰이 실수한 게 아니라 법원이 평소 안 하던 일, 이상한 일을 벌인 게 맞고, 그것이 발단이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팀 반발에는 일리가 있다.
알려진 대로, 최대 쟁점은 구속기간 산정 기준이다. 그간 검찰은 날짜, 즉 일수(日數)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번에 법원은 일수가 아닌 시간으로 산정했다. 이건 실무 관행을 완전히 뒤집는다는 점에서 거의 혁명적인 시도다.
경찰과 검찰의 구속수사 기간은 각 10일이다(형소법 202, 203조). 그런데 검사는 필요시 법원의 허가를 받아 10일 더 늘릴 수 있다(형소법 205조). 따라서 짧게는 10일, 길게는 20일 이내에 기소해야 한다. 피의자는 기소되면 피고인으로 전환돼 구속기간이 2개월로 늘어나고 심급마다 최대 6개월까지 연장된다(형소법 92조).
그런데 이는 원칙이고 실제로는 수사 기간 중 발생하는 변수로 구속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변수가 흔히 영장실질심사라고 부르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따른 구속기간 연장이다.
형소법에 따르면, 법원이 피의자 심문을 하는 기간은 구속기간에서 제외한다(201조 2).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사기관이 조사를 못 하니 줄어든 기간을 보충한다는 뜻이다. 피의자 처지에서는 그만큼 구속기간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제 윤 대통령 사례를 살펴보자.

윤석열 대통령 구속기간 논란 관련 정리
아무런 변수가 없다면 윤 대통령 구속 만료 기간은 1월 24일 자정이다. 법원이 검찰의 구속기간 연장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차 수사를 맡은 고위공직자수사처가 경찰과 달리 검찰과 대등한 독립적 수사기관이니 검찰이 추가 수사를 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기간 3일을 빼면 구속기간은 1월 27일로 늘어난다. 검찰 셈법으로는 27일이 지나기 전에 기소하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법원은 심문 기간이 실제로는 33시간 7분이니 1월 26일 오전 9시 7분에 구속기간이 만료됐다고 계산했다. 법원 주장대로라면 검찰이 9시간 45분이나 지나서 기소한 셈이고, 그 시간 동안 윤 대통령은 불법 구금된 셈이다.
어떤 계산법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떠나 법원의 이번 결정은 일단 피의자의 방어권이나 인권 보호 차원에서는 바람직해 보인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소법 취지에도 부합한다. 법원이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았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
그런데 형소법을 살펴보면 검찰의 구속기간 산정이 잘못됐다고 볼 근거가 없다. 즉 법에 맞지 않지만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온 게 아니라 법적으로도 검찰이 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형소법 201조 2항을 꼼꼼히 살펴보자.
제201조의2(구속영장 청구와 피의자 심문) ⑦피의자 심문을 하는 경우 법원이 구속영장청구서ㆍ수사 관계 서류 및 증거물을 접수한 날부터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검찰청에 반환한 날까지의 기간은 제202조 및 제203조의 적용에 있어서 그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분명히 ‘날’이라고 돼 있다. 형소법 어디에도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규정이 없다. 내란죄 수사를 맡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펄쩍 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검찰은 체포적부심 기간도 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체포와 구속은 다르다”는 취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 주장은 억지가 아니다. 법원이 피의자 심문을 위해 수사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접수해서 검찰에 반환할 때까지의 기간은 구속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형소법 214조2 13항(체포와 구속의 적부심사)에 근거한 것이다.
시간을 언급한 조항이 있기는 있다. 나는 관련 형소법을 열심히 찾던 중 다음 조항에 눈이 번쩍 뜨였다.
기간의 계산에 관하여는 시(時)로 계산하는 것은 즉시(卽時)부터 기산하고 일(日), 월(月) 또는 연(年)으로 계산하는 것은 초일을 산입하지 아니한다. 다만, 시효(時效)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아니하고 1일로 산정한다(형소법 66조 ‘기간의 계산’).
비록 수사기관이 아닌 법원의 구속기간에 관한 조항이지만, 충분히 준용할 만한 내용 아닌가? 형소법에는 곳곳에 ‘준용’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준용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표준으로 삼아 적용하다. 2. 어떤 사항에 관한 규정을 그와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사항에 적용하다(네이버 국어사전).
비상계엄에 놀란 국민 가슴에 법의 총부리를 들이대다
앞서 살펴본 대로 검찰이 법원의 심문 탓에 피의자 조사를 못한 기간은 실제로는 하루 반도 안 되는데 3일로 계산해 구속기간이 그만큼 늘어나는 건 피의자 처지에서는 부당하다. 그 점에서 지귀연 판사의 이번 결정은 진보적이다. 형소법 규정을 새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창의적이다. 관행을 격파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아마도 전국 피의자들의 줄소송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결정이 위법 소지가 있는 데다 그 첫 수혜 대상이 내란 우두머리라는 점에서 ‘선의’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한 망상가의 초현실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놀라 밤잠을 설쳤던 국민의 가슴에 법의 총부리를 들이댄 셈이다.
법원은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해 구속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런 논란을 그대로 두고 재판을 진행하면 상급심에서 파기 사유는 물론, 재심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뜻은 좋다. 일리도 있다. 그렇긴 해도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이 중차대한 국면에서 법과 관행을 뒤집으면서까지 그런 파격적 결정을 한 것은 상식과 합리의 틀에서 벗어나고 국민 법감정에도 맞지 않는다.
물론 구속 취소와 내란죄 재판, 탄핵 심판은 별개다. 탄핵 인용을 전제로 말하면, 극우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윤 대통령이 풀려나는 것은 보수우파 진영에 독이 될 수도 있다. 내란 우두머리가 구심점이 된다면 중도층 민심이 급격히 반대쪽으로 쏠릴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된다면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은 역사적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내란을 일으킨 현직 대통령이 갇혀 있는 것과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제2 계엄이 선포되더라도 석방에 공을 세운 판·검사들은 무사하려나.
제작진
기고 조성식 언론인
출판 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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