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해군론의 허구… 현실성 없고, 전략도 대안도 아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입력 : 2012-03-12 22:06:25ㅣ수정 : 2012-03-13 00:25:35
(1) 구호뿐인 전략, 안보상황과 안 맞아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논리 중에는 ‘대양해군’이 맞물려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대양해군을 언급하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 추진 의지를 밝혔고, 이틀 뒤인 24일 김관진 국방장관과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를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12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도 “제주 기지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양, 글로벌한 입장에서 안보 플러스 경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대양해군론에 힘을 실었다.
대양해군과 제주 해군기지가 맞물리는 접점은 한국 수입 물량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남방 해상교통로의 안전 확보다. 그러나 대양해군의 전략적 타당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대양해군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4월1일 안병태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취임사에서 ‘대양해군 건설 준비’를 주창하면서 해군의 미래비전으로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제기된 대양해군론은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후 사실상 폐기됐다가 올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함께 부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양해군을 지향하기 위한 해군전력의 규모나 예산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
2010년 7월 ‘2010 환태평양훈련’(림팩)에 참가한 한국 최초의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왼쪽)이 미 하와이 인근 태평양에서 열린 기동훈련에서 미 해군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오른쪽)를 호위하며 순항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5년 해군본부 공보파견대장(중령)으로 대양해군 논의에 관여했던 오철식 국방홍보원장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비전으로서 제시를 한 것이었지, 거기서 더 이상 나아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해군 관계자도 “대양해군은 신임 소위들에게 비전을 주는 슬로건 기능이 크다”고 말했다.
대양해군 개념은 국방전략의 변경을 수반한다. 육해공의 역할·예산을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군이 해군의 대양해군 구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대양해군 구호가 제주 해군기지와 맞물려 증폭되고 있는 셈이다.
대양해군 전략의 투자 대비 효용성·타당성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예산·인구 규모에서 수십조~수백조원의 밑그림이 그려질, 제국함대식 해상교통로 확보 전략이 필요한지에 물음표가 붙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서든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대양해군은 미국만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의 해군력은 미국은커녕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에도 미치지 못한다. 웬만큼 국방비를 지출해서는 이들 국가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한국의 군사비는 절대액으로는 중국의 40%, 일본의 70% 수준이지만, 이를 국민총생산(GDP)으로 환원해보면, 중국의 2배, 일본의 3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대양해군 증강 계획이 ‘합리적인 투자’인지 근본적 질문에 부딪히는 것이다.
(2) 경제·예산규모 안 따진 해군력 증강
겉보기에 그럴듯하지만 대양해군이란 ‘표어’는 해군이 전력증강에 도움받기 위해 꺼내든 ‘구호’에 가깝다.
1995년 대양해군 논리를 처음 꺼낸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은 ‘북한이 경제사정 악화로 군 전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미래 전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해·공군의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당시만 해도 군 전략은 북한의 현존하는 위협에 대응하는 데 중점이 두어지고, 이런 필요성이 약화됐기에 지나치게 육군에 편중된 전략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래를 위해서는 한반도 연안에만 작전 범위를 두는 ‘연안해군’이 아니라 먼바다에까지 군 전력을 투사하는 ‘대양해군’이 필수적이며 북한 다음에 한반도를 위협할 세력은 중국과 일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당시 육군은 북한의 위협이 여전히 엄중하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길 꺼렸다. 그러나 육군 편중 전력에 분명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지는 못했다. 육군은 국방부와 합참의 요직과 예산을 독점하다시피 해 눈총을 사고 있었다. 때마침 김영삼 정권도 비대해진 육군 중심 전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국방부도 해군에 힘을 실어줬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중국·일본에 맞선 대양해군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은 6만7500t급 항공모함 바랴그호를 시험 운항 중이다. 일본도 7200t급 이지스함 6척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지스함이 3척에 불과하다. GDP나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대양해군으로 가는 예산 증액 규모가 예상외로 크고 장기적일 것이라는 뜻이다. 군사전문지 디앤디포커스 김종대 편집장은 “한국 해군에 대양해군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3) 군비 확장은 되레 동북아 갈등 소지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미국·일본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가 포진하고 있는 ‘대륙세력’ 사이에 놓인 한반도는 강대국 간 패권 경쟁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받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대양해군과 최근 논란이 된 제주 해군기지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지리군사학·지경학적 차원에서 득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양해군은 동북아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지속적인 전력 증강으로 주변국과 외교적·군사적 마찰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양해군은 북한을 넘어 중국과 일본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군 관계자들의 주장대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힘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더욱 현실적인 방안은 외교적 해결이다. 군사적 무장으로 지킬 수 있는 평화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주변국 영토, 인구 등을 고려해도 한국의 해군력이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해군기지를 늘린다는 것이 국가안보상 필요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과는 독도를 둘러싸고, 중국과는 이어도를 둘러싼 마찰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외교적 마찰이지 군사적 위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외교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이어도와 독도는 국제 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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