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kdd/GisaView.jsp?menuCd=3004&menuSeq=12&menuCnt=30917&writeDate=20121106&kindSeq=1&writeDateChk=20120516

<69>무장중립국 안시성
당 태종 안전 고려 요동성 인근 안시성 공격
2012.05.16

연개소문 “황제만 죽이면 승전” 15만 대군 투입 저격 공격 기획

안시성전투 장면을 추정 재현한 기록화. 전쟁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645년 6월 4일께였다. 보초병들이 빽빽이 둘러싼 천막으로 당 태종을 필두로 한 수많은 장군들이 질서 정연하게 들어왔다. 당 제국 최고의 무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전회의에서 백암성을 함락시킨 직후 공격의 방향을 놓고 말이 오갔다. 문제는 안시성이었다. 그 성을 건너뛸 것인지 아니면 뽑아내고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자치통감’은 당 태종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안시성은 험하고 군사도 날카로우며 그 성주도 재주와 용기가 있어 막리지가 어지럽힐 때에도 성을 지키면서 복종하지 않아 막리지가 이를 쳤으나 떨어뜨릴 수가 없어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642년 집권한 연개소문은 성주들을 자기 사람으로 물갈이 했다. 국방에 대한 고려가 없는 정치성 인사였다. 안시성주가 반기를 들었다. 연개소문이 중앙군을 이끌고 공격했다. 하지만 그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안시성주를 유임시켰다. 

당 태종은 병부 산하의 정보부 ‘직방’으로부터 이 같은 고구려 정황을 보고받았다. 당 태종은 안시성이 연개소문과 어떠한 관계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건안성의 군사는 약하고 양식도 적어서 만약에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나아가서 이를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이세적공은 건안성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고, 건안성이 떨어지면 안시성은 우리 배속에 있게 된다. ‘병법’에 이른바 성에는 공격하지 않아도 될 것도 있다고 한다.”

안시성을 건너뛰어 건안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그것이 고립돼 자연히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요동성과 백암성이 이미 함락됐고, 건안성까지 뽑히면 안시성은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고립된 성의 함락은 시간문제다. 

그는 속전속결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만만치 않은 성은 건너뛰되 주변 성을 모두 점령해 고립시켜 힘을 뺀 다음에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안시성 공격에는 막대한 시간과 인적 물적 자원이 소모될 것이 불 보듯 하다는 것이다. 

당 태종은 ‘손자병법’ 권2, 작전 편의 다음 내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확실하다. “굳은 성을 공격하면 전력이 소모되기 마련이고(攻城則力屈) 장기간 군대를 혹사시키면 물자도 부족해진다(久暴師則國用不足)” 군대가 무뎌지고 힘이 떨어지면 다른 나라들이 그 틈을 노려 군사를 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지모(智謀)있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사태 수습이나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나중에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손자(孫子)의 지적은 적중했다. 

군부의 수장으로서 이세적의 답변은 이러했다. ‘자치통감’은 전한다.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는 북쪽에 있으며 우리 군사들의 양식은 요동성에 있는데 지금 안시성을 건너뛰어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만약 도적(고구려군)들이 우리들의 (군량) 운송로를 끊게 된다면 장차 어찌 합니까? 먼저 안시성을 뽑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안시성이 떨어지면 북을 울리며 가서 건안을 빼앗으면 됩니다.” 

당 태종이 대답했다. “공(公)을 장수로 삼았으니 어찌 공의 계책을 쓰지 않겠소, 나의 일을 그르치지 마시오.” 노련한 그는 현장 사령관의 말을 존중해 주었다. 전쟁의 달인 이세적에 대한 신뢰였다. 어린 시절부터 무정부 상태의 전장을 떠돌며 살았던 이세적이 안시성을 건너뛰자는 당 태종의 견해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고 할 수 없다. 

수많은 전투 경험과 병법서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춘 당 태종이었다. 하지만 황제 경력 20년은 신하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무디게 만들었다. 자신이 당나라 군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인 것을 몰랐다. 앞서 5월에 그가 요동성 앞에 나타나자 신성과 건안성을 공격하던 병력 모두 요동성 공략에 투입됐다. 그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신성은 몰라도 건안성은 벌써 함락됐을 것이다. 

전선에 와 있는 황제는 짐이었다. 전쟁이 순수한 작전으로 실행되지 못하게 했다. 항상 경호문제가 우선이었다. 연개소문은 이러한 당군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당 태종 한 명만 죽이면 만사가 해결된다. 공격 목표가 너무나 명확한 것은 연개소문에게 최대의 이점이었다. 연개소문은 황제에 대한 저격성 공격을 기획했다. 한 사람을 노리고 15만 대군을 투입했다. 

6월 11일 요동성에서 병사들과 함께 휴식을 끝낸 당 태종은 운명의 안시성을 향해 출발했다. 안시성은 완전한 하나의 독립국이었다. 이번 전쟁에서도 연개소문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당 태종도 평등하게 대했다. 황제의 수많은 깃발을 든 행렬이 안시성 앞에 나타나자 군사들이 고슴도치같이 창을 들고 성위로 올라갔고,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준 사격 신호였다. 당 태종의 깃발이 보이면 언제나 그랬다. 황제는 기분이 나빴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을 보고 화가 치밀어 고함을 질러댔다. 전쟁터에서 적에서 화를 내는 것만한 ‘삽질’도 없다. 영리한 이세적이 맞장구를 쳤다. ‘자치통감’은 전한다. “이세적은 성을 함락시키는 날 (안시)성의 남자건 여자건 모두 (땅에) 생매장하겠다고 했다.” 이 소문은 안시성에 금방 들어갔고, 성민들은 결사항전을 다졌다.

6월 20일 안시성에 대한 당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하지만 다음날 연개소문이 보낸 고구려·말갈 15만 대군이 안시성과 멀지 않은 곳에 집결을 완료했다. 당군은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군대를 돌렸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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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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