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kdd/GisaView.jsp?menuCd=3004&menuSeq=12&menuCnt=30917&writeDate=20121106&kindSeq=1&writeDateChk=20120620
<73> 포로 처리하는 당태종
비상<飛翔:공중을 날아 다님>하는 당나라 비상<非常:뜻밖의 긴급 상황>걸린 고구려 
2012.06.20

포위에 걸린 고구려군 2만명 살육 포로 일부 생매장-당군 편입-석방
‘패전’ 전해지자 주변 성들 속속 항복 생환 병사들 입선 ‘공포 씨앗’ 뿌려져

안시성 안의 전경, 성문이 서남문 방향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주필산으로 여겨진다. ‘큐비앤맘’ 김기동 제공

포위망을 빠져 나오지 못한 많은 고구려군 2만이 살육됐다. 당태종은 ‘전당문’에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고구려군이 크게 무너졌다(因而大潰). 피가 흘러 내가 넘쳐, 푸른 물결이 잠깐 사이에 붉게 물들었다(流血川溢, 滄波爲之暫丹). 목을 친 머리가 무덤이 되어 머리뼈로 큰 산을 이루었다(斬級彌山, ?骨以之成岳). (그 위에) 화살과 칼끝이 아래로 교차하여 덥혀 옥석 같이 꽂혀있었다.(?由鏑鋒交下, 玉石同湮). 가히 불쌍하지만 다스려짐이니 구제할 수는 없도다(雖則可哀, 理無兼濟).” 

포위망을 빠져나와 고지 위로 올라간 고구려군은 곧 포위됐고, 그들의 마지막 퇴로가 될 수도 있는 하천의 다리도 철거됐다. 그들은 이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혔다. ‘수당가화’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군의 울부짖는 소리가 산과 계곡을 뒤흔들었다(高麗哭聲動山谷).” 이번에도 안시성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굳게 침묵했다. 

고연수는 당태종에게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했다. 그리고 휘하 생존병사 3만6800명을 이끌고 고지를 내려왔다. 그들의 무장은 해제된 상태였다. 당군은 갑옷 1만 벌과 이와 맞먹는 무기들, 말 5만 필 소 5만 두를 노획했다. 

‘신당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당태종이 만들어 놓은 이동식 조당 옆 장막 앞에서 고연수와 그 휘하의 장군들이 꿇었고 기어서 장막 안으로 들어가 당태종 앞에 절을 하고 처분을 내려달라 청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앞으로도 감히 천자와 싸우겠는가? 고연수는 두려워서 땀을 흘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포로가 된 고구려 모든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앞서 당태종은 천신(天神)에게 감사를 올렸다. ‘구당서’는 이렇게 전한다. “고구려가 나라를 기울여서 온 것은 존망이 달려 있어서인데 대장기 한 번에 패전하고 말았으니 이는 하늘이 우리를 도운 것이다. 이에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며 사례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얻은 승리였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주마등처럼 그의 머리를 지나갔으리라. 돌이켜보면 정반대의 입장이 됐을 수도 있었다.

장손무기의 병력이 배후로 접근해 오는 것을 조금만 일찍 고구려가 알아차렸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들은 고연수가 보낸 예비 병력에게 제압을 당했을 것이고, 이세적의 군대는 고구려와 말갈군에게 전멸을 당했을 것이다. 산위에 숨어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이 포위됐을 것이다. 

그 소문이 중원과 주변 나라에 퍼졌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안시성에서 성문을 열고 나와 당군을 공격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로 재앙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고연수의 고구려군이 역으로 포위됐고, 안시성의 문은 끝까지 굳게 닫혀 있었다. 

요동의 지신(地神)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였을까. 당나라 병사들이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삽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당군을 가장 많이 살상했던 말갈기병 3300명이 줄줄이 묶여 끌려 왔다. 꼼짝 못 하도록 포박된 그들을 당나라 병사들이 차례차례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앞에 산 같이 쌓여 있는 흙더미들이 그들 위로 떨어졌다. 생매장은 고구려 아래에서 군사적인 복무를 하고 있는 모든 말갈 부족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했다.

말갈인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듣고 고구려 병사들은 모두는 넋이 나가 있었으리라. 어떠한 처벌이 이뤄질까. 고구려군 3만6800명 처리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태종은 그들 가운데 군관 3500명을 가려냈다. 

노련한 군인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당나라 무관(武官) 임명장인 융질(戎秩)이 주어졌다. 당태종으로부터 장안 서북방 농우(?右) 지대 근무 발령장을 받은 것이다. 영원히 고향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알 수도 없는 곳으로 가야 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나머지 3만3300명은 황제의 사면으로 포로 신분에서 해방됐다. ‘당회요’를 보면 “나머지 3만 인은 모두 풀어주어 평양으로 돌아가게 했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방면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3만의 병사는 언제든지 다시 고구려의 전투력으로 바뀔 수 있다. 일부는 풀어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억류해 뒀을 것으로 생각된다. 임명장을 강제로 받은 3500명의 고구려인 무관들도 자신의 정상적인 군무를 위해 전쟁터에서 함께한 기존의 부하들이 필요했다. 

당태종은 포획한 이민족 군인들을 자신의 병력으로 이용해 세계를 재패했다. 그것은 전쟁을 하면서 숙련된 군사력 소모를 막고 오히려 증강시키는 그의 비법이기도 했다. 사면을 받은 고구려 군인들도 대부분 직속상관을 따라 당나라 서북방 변경으로 갔다고 여겨진다.

패전의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 고구려의 성들도 항복했다. ‘자치통감’은 전한다. “고구려에서는 온 나라가 크게 놀랐고 후황성(後黃城)과 은성(銀城) 모두 스스로 성을 포기하고 달아나니 사람이 보이지 않고 (밥 짓는) 연기도 나지 않았다.”

방면돼 생환한 소수 병사의 입은 공포의 씨앗을 뿌리는 파종기였고, 돌아오지 못한 아들 남편 아버지를 둔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그 싹을 틔우는 자양분이었다. 안시성 앞에서 얼마나 많은 병사가 포위돼 고통스럽게 죽어갔고, 죽기 직전에 그들이 어떠한 공황상태에 놓였었는지 소문이 돌았다. 평양의 조야가 술렁거렸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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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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