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rp070322100001

* 한국사DB 자료로 보아 숙신 관련 내용을 잘못 올린 것으로 보임. 숙신 내용을 옥저와 분리했습니다.
* 옥저 내용 밑부분도 내용이 반복되는 오류가 있음.



숙신

삼국유사 키워드사전


중국 동북방의 종족 이름



일반정보


중국 동북방에 위치한 종족 이름으로서 종종 중국사서에서 호시(楛矢)를 바쳤다고 한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기이1 발해말갈조에서는 후위서를 인용하여 말갈을 물길이라 하고 소동파의 「역대지리지장도」를 인용하여 읍루와 물길은 모두 숙신이라 하였다. 이것은 곧 「역대지리지장도」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古今華夷區域総要圖)의 동북쪽에 “읍루・물길은 모두 숙신 땅이다.(挹婁勿吉 皆肅愼地)”라 한 것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숙신의 위치는 『산해경』에서 “숙신은 백민의 북쪽에 있다. … 대황의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은 불함이다. 이곳에 숙신국이 있다.(肅愼在白民北 … 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 有肅愼之國)”라 하였고 진(晋)의 곽박(郭璞)은 이에 대해 주(註)를 달아 “지금의 숙신국은 요동에서 3천여 리 떨어져 있다.(今肅愼國去遼東三千餘里)”고 하였다. 『신당서』에서는 숙신의 고지에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를 두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기록들을 고찰하면 숙신의 위치를 모란강(牡丹江) 중류지역에 비정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孫進己, 1987)


숙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기존의 연구에서는 대부분 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女眞)・만족(滿族)은 하나의 민족이며 일맥상승(一脈相承) 했다고 파악한 연구가 있다.(池內宏, 1951)


한편 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은 단지 동종이족(同種異族)이라 주장한 연구도 있다. 중국 문헌에서는 이 세 종족을 하나로 통칭하여 같은 종족인 것처럼 기술하였으나 , 실제로는 중국사서에서 숙신・읍루・물길을 병렬적으로 기술하며 그 구체적인 위치는 각각 다름을 볼 때 숙신・읍루・물길은 다른 부락이라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숙신이 호시(楛矢)를 바쳤다는 기사가 나온 뒤 『후한서』에서 읍루는 옛 숙신의 나라라고 하여 마치 당시에 숙신은 존재하지 않고 읍루만이 있는 것처럼 기록하였다. 그러나 『진서』 권97 열전67 사이(四夷) 숙신조에는 오히려 숙신씨는 일명 읍루라 한다는 내용이 나오므로 당시에도 숙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 외 『진서』 문제기의 경원 3년(262)과 무제기 함녕 5년(279)에도 모두 숙신이 고시를 헌납했다고 하여 숙신이 등장한다. 곧 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은 같은 족으로 일맥상승(一脈相承)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孫進己, 1987)


또한 일제강점기에 조선(朝鮮)・숙신(肅愼)・식신(息愼)・직신(稷愼)・여진(女眞) 등의 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조선과 숙신이 동일하다고 견해들이 전한다. 그러나 숙신과 조선의 음이 유사하다는 것만으로 동일종족이라 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숙신이 흑룡강 유역에 거주했다는 고아시아족(古Asia族)일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가 있었다.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30 읍루(挹婁)조와 『진서』 권97 열전67 사이(四夷) 숙신조의 기사를 분석하여 숙신의 위치를 흑룡강 유역과 일부 연해주가 포함된 곳으로 보았는데, 흑룡강 유역 주민들의 언어와 민속 연구에 의하면, 기원전후까지 고아시아인들은 동부 시베리아와 흑룡강 분지에 살고 있었으므로 만주인들이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선진(先秦) 시기부터 중국 사서에서 언급되는 숙신은 고아시아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김정배, 1973)



참고문헌


池內宏, 1951, 『滿鮮史硏究』上世篇, 祖國社.

김정배, 1973, 『韓國民族文化의 起源』, 고려대학교출판부.

孫進己, 1987, 『東北民族源流』, 黑龍江人民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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