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091732335&code=900305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52)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 그 변모
정수일|문명사학자·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10.02.09 17:32
역사는 진행형… 크렘린의 변신 뒤로한채 귀국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밀도 높은 탐방을 마치고 시베리아 초원 실크로드의 종착지 모스크바를 향했다. 백야의 여운이 희불그레하게 드리운 저녁 7시25분 풀코바 제1공항을 이륙한 러시아 국내선 SU 848편 비행기는 2시간25분을 날아 목적지 모스크바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공항에서 직행한 한 식당 곁에서는 카지노가 현란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지금 모스크바에서 카지노는 성업 중이라고 한다. 카지노, 그 옛날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다. 언필칭 모스크바는 이 시대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세상을 보는 창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반 세기 동안 이곳을 10여차례 드나들면서 그 변모상을 쭉 지켜봐 왔으며, 그 변모를 이번 답사의 화두로 잡았다.
크렘린 궁과 레닌 묘.
시 중심에서 저만치 비켜간 ‘뚜리’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옛날 소비에트 시대에는 그럴싸한 초대소였으나 지금은 현대에 밀려 빛이 어지간히 바랬다. 윗바람도 제대로 막지 못해 방안은 써늘하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이튿날 시내의 다른 호텔로 옮겼다. 옮기는 길에 모스크바의 ‘어제’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여러 곳을 스쳐 지나간다. 거리는 훤칠하게 뚫리던 옛날의 모습과는 생판 다르게 붐비고 막힌다. 차는 오다가다를 반복한다. 덕분에 일행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길어졌다.
모스크바의 어원에 관해서는 ‘습지’와 ‘석장들의 성채’ ‘소 건너는 목’ ‘밀림’이라는 등 어종에 따라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축축한 강’ ‘젖소의 강’이란 뜻의 모스크바 강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모스크바란 이름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147년에 나온 <이라피예프 연대기>란 책에서다. 이 연대기는 수즈달 공후인 유리 돌고루키가 한촌(寒村)이던 이곳에 주춧돌을 놓고 나무로 된 방벽을 쌓기 시작해 1156년에 완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모스크바의 창건자는 유리 돌고루키이고 창건 연대는 1147년으로 알고 있다. 그 ‘나무 방벽’이 바로 크렘린의 전신이다. 유리를 이어 이곳 공후가 된 다밀이 이곳에 상주하면서 저택을 지어 도시 면모를 갖춰보려고 했으나 1237년 몽골 서정군의 침입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만다.
그러다가 간신히 공후의 명맥을 이은 ‘돈주머니’란 별명의 이반 칼리타는 당시 러시아 땅의 거의 반을 석권하고 있던 몽골제국 예하 킵차크 칸 국의 환심을 사서 인근 러시아 공국들의 토지를 수중에 넣는 한편, 당시 키예프를 떠나 블라디미르에 옮겨 앉은 정교회의 수도 대주교를 모스크바로 영입한다. 이제 모스크바는 러시아 정교회의 본산이 된다. 이것은 신정체제를 표방한 모스크바 공국의 세 확장에 결정적 계기가 된다. 국운이 트기 시작할 때 이반 칼리타를 이은 드미트리는 1380년 쿨리코보 전투에서 킵차크 칸 군을 무찔러 ‘몽골 불패의 신화’를 깨뜨리고 일약 러시아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15세기에 접어들면서 킵차크 칸 국이 쇠잔해가는 틈을 타서 이반 3세는 1480년 드디어 그 예속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포한다. 이때부터 모스크바 공국 시대가 열리면서 인구 30만~40만명을 가진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심장으로 부상한다. 이반 3세는 내성인 크렘린과 성당들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을 서구식 하얀 석조 건물로 개축한다. 모스크바의 첫 변모이다.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조카와 결혼한 이반 3세는 대공 대신 비잔틴 황제 호칭인 ‘군주’나 ‘차르’로 자칭한다. 그러면서 모스크바 대공의 문장이던 말을 탄 성 게오르기 상에 비잔틴 황실 문장인 쌍두독수리를 결합해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이렇게 모스크바 대공은 비잔틴 황제의 계승자로, 모스크바는 ‘제3 로마’로 변신한다. 17세기 초 모스크바 공국은 로마노프 왕조의 제정러시아(1613~1917)로 탈바꿈한다. 이때 수도가 오늘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가지만(1711), 모스크바의 러시아 중심축 위상은 여전하다. 그리하여 소비에트 시대에 접어들자 러시아의 수도로 다시 되돌아가 면적 1000㎢에 인구 1000만명을 헤아리는 세계 굴지의 도시로 성장한다. 이렇게 모스크바는 시대 영합적인 변모에 능수능란하다.
러시아의 상징적 건축물인 성 바실리 성당 외경.
이제 그 현장 몇 곳을 찾아가 보기로 하자. 처음 찾아간 곳은 국립 모스크바 로모노소프대학이다. 차는 숲속 길을 따라 야트막한 산, 그러나 평지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곳인 ‘참새 산’에 오른다. 옛날부터 이곳에 참새가 많이 모여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월 혁명 직후 산 이름을 ‘레닌 산’으로 고쳤다가 소비에트가 해체되자 다시 제 이름으로 부른다. 산 전망대에 서니 푸슈킨이 말한 ‘흰 돌의 모스크바’ ‘둥근 지붕의 모스크바’ ‘금빛 십자가의 모스크바’가, 그리고 톨스토이가 말한 ‘어머니인 도시’ ‘수없이 많은 교회가 늘어선 아시아풍의 성스러운 도시’ 모스크바가 한눈에 안겨온다. 1947년 모스크바 창건 800주년을 맞아 지은 26층에서 32층에 이르는 이른바 ‘스탈린 7대 건물’을 비롯해 크렘린 궁과 숱한 크고 작은 성당들, 올림픽을 치러낸 중앙 종합운동장, 지어 스키장 도약대까지 시 전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모스크바 전경을 감상하고 나서 모스크바 대학 후문을 통해 대학 구내에 들어선다. 꼭 50년 전 향학에 불타던 그 시절, 카이로 대학 유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러 걸었던 바로 그 길을 밟으니 실로 감회가 새롭다. 반세기의 풍상 속에서도 저 32층 240m의 첨탑별은 여전히 의젓하게 하늘 높이 솟아 있다. 그 별빛을 등대 삼아 ‘학문의 배’는 망망대해를 항진하고 있을 성싶다. 모스크바 대학은 예전의 명성 그대로 규모나 내용을 갖춰나가고 있다. 1755년 과학자이자 ‘러시아 문학의 표트르 대제’라고도 일컫는 로모노소프가 이 대학을 창건할 때는 시 중심에 자리했으나, 1953년 이곳에 새 청사를 짓고 옮겨왔다. 320㎢의 부지에 17개 단과대학을 가진 종합대학으로서 100여개의 외국 유학생을 포함해 3만1000명 학생과 8000명 교수, 700만 장서의 도서관, 4개의 천문대, 3개의 박물관, 1개의 식물원 등을 아우르고 있는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복합적 대학 캠퍼스이다. 창건자 로모노소프가 지향한 교육이념의 하나는 러시아 학자들을 길러 냄으로써 당시 러시아 학계를 지배하던 외국인 학자들의 횡포를 막고 자체의 힘으로 러시아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 이념이 실천되었기에 오늘의 모스크바 대학이 있다. 현지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학생이 세 번 지각하거나 한 번 무단결석만 해도 제적하며. 대학 주변에 유흥가는 불허한다. 교육이 살아있다는 증좌이다.
크렘린 궁 내 황제의 대포(1585년 안드레이 쵸호프 제작).
저녁에는 여행의 말미에 ‘망중한’을 즐기게 하는 오페라 관람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스타니슬랍스키 극장에 가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근 3시간 동안 감상했다. 원래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궁전을 연상케 하는 역 단장과 편리함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추억을 무색하게 한다. 북적대는 인파에 발 디딜 틈이 없다. 떼밀려서 가까스로 전동차 문을 통과했다. 푸슈킨의 동명 원작에 기초해 창작되어 1897년 초연된 이 3막의 오페라는 주인공 오네긴과 타치나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는데, 그 애절한 아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가슴을 옥죈다. 그 시절 아마 같은 장소라고 기억되는 이곳에서 본 <예브게니 오네긴>과는 내용이나 형식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는 것 같은데, 무대 규모나 화려함은 분명 덜하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예상한 바대로 경비를 줄이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다.
국립 모스크바 로모노소프대학 본관과 창건자 로모노소프의 동상.
다음날엔 아침 일찍이 붉은 광장과 크렘린 궁, 그리고 그 경내와 인근에 있는 여러 성당과 명물들을 두루 돌아봤다. 17세기부터 ‘모든 아름다운 것’이란 뜻의 슬라브어 ‘끄라시나야’란 이름으로 불려오던 광장이 현대 러시아어에서는 ‘붉은’이라는 의미로 바뀌면서 지금은 ‘붉은 광장’이라고 부른다. 광장 언저리에 80여년 동안 묻혀있으면서 참배의 대상이 되어오던 레닌의 시신은 조만간 딴 곳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묘문은 굳게 잠겨있다. 평일(목요일)인데도 크렘린 참관자들은 장사진을 이룬다. ‘성벽’이란 뜻의 크렘린은 부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총 길이는 2235m에 달하며, 평균 무게 8㎏의 벽돌로 지면의 기복에 따라 높이가 5m에서 19m에 이르게 벽을 쌓았다. 성벽에는 구세주 탑과 삼위일체 탑을 비롯한 탑 18개(높이 28~71m)가 배치되어 있다. 참관 코스를 따라 처음으로 들른 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국립 무기궁전이다. 1485년 ‘국고’란 이름의 특수 창고로 발족한 이 궁전에는 전래의 각종 무기류뿐만 아니라 역대 황제들이 대관식 때만 쓰는 ‘모노마흐 대관모’를 비롯해 화려함이 극치에 이른 각종 궁전 의상과 장식품, 가재와 마구류가 전시되어 있다. 이어 오밀조밀한 양파모양의 돔에 십자가를 이고 있으면서 일찍이 “아, 여기가 바로 천국이로다!”라고 보는 이들의 경탄을 자아낸 15세기의 성모승천 성당(일명 우스펜스키 성당)과 성모수태 성당, 모스크바 시대 대공들과 황제들의 장례가 진행된 16세기 초의 천사 성당, 그리고 대 크렘린 궁전과 망루 궁전 등 기념비적 유물들을 차례로 둘러봤다.
모스크바의 대표적 수공예품인 마트로시카(목제 인형).
이어 크렘린 궁과 마주하고 있는 굼 백화점에 들렀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큰 백화점으로서 늘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그 백화점이 웬일인지 썰렁하다. 알고 보니 외제를 비롯한 고가품만 팔다보니 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변모가 실감나는 현장이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붉은 광장’ 언저리에 자리한 성 바실리 성당이다. 예언자 바실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성당은 러시아의 전통적 목조건축술과 비잔틴과 서유럽의 석조건축술을 융합시켜 만들어낸 러시아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이 성당은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뇌제 황제가 1552년 카잔 칸 국을 멸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560년에 완공한 성당이다. 가운데 높이 47.5m의 뾰족 지붕을 한 성모출현 교회를 중심으로 8개의 교회가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얼마나 화려했으면 폭군 뇌제가 설계한 두 러시아 건축가를 불러놓고 칭찬한 다음 즉석에서 다시는 그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두 건축가의 눈을 도려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시간에 쫓겨 점심을 거른 채 1000여년의 러시아 미술을 집약한 러시아 4대 미술관의 하나인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찾았다. 상인인 파벨 트레티야코프의 개인 미술품 수장고에서 국립 미술관으로 발돋움한 이 미술관에는 러시아의 대표적 사실주의 작품 10만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문학 예술에서 사실주의를 이상으로 추구하는 필자에게는 미의식을 점검하고 충전하는 절호의 장이었다.
이번의 모스크바 체류는 그간 줄곧 지켜봐오던 그 변모를 재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역사는 변모의 과정이다. 모스크바는 2000년 동안, 특히 지난 한 세기 동안 변모의 시도를 많이 해왔다. 오늘도 그 시도는 진행형이다. 무엇이 참 변모인지는 역사가 해답을 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것을 착실히 지켜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반추하면서 귀국 길에 올랐다.
2007년 6월27일부터 2009년 7월10일까지 약 2년 동안 초원 실크로드를 대흥안령 초원로, 몽골 초원로, 동·서 시베리아 초원로의 네 구간으로 나눠 답사했다. 그 답사 견문을 지난 1년 동안(2009·2·5~2010·2·10) 모두 52회에 걸쳐 실어 온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의 문명기행문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풀밭에서 문명의 옥석을 가려 주옥을 주워보려던 애초의 바람이 얼마나 이뤄졌는지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각필하게 됨을 독자 여러분께 고백하는 바이다.
<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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