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100119172311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49) 미술의 보고 에르미타주 박물관
정수일 |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10.01.19 17:23 수정 : 2010.01.19 17:27
피카소·세잔… 300여만점 불후의 명작들 탄성
에르미타주 박물관 외경.
근대 유물의 분포 밀도로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마 세계에서 으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면적이 45.6㎢(서울 면적의 약 13분의 1)밖에 안 되는 곳에 250개의 각종 박물관이 있고, 거리마다에는 유적 유물과 볼거리가 올망졸망 붙어 있다. 그러나 그 백미는 단연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이 박물관이다. 해마다 260만명이나 찾는다고 한다. 문제는 어떻게 제한된 시간 내에 그 방대한 내용의 얼개라도 대충 알고 가는가 하는 것이다.
이틀간의 일정에서 첫날 반나절을 박물관 참관에 할애했다. 차창 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네바 강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면서 근 50년 전의 어슴푸레한 기억을 애써 되살려 봤으나 흐리멍덩히 아름아름할 뿐이다. 새벽 한 시에 상판이 들렸다가 다섯 시에 다시 무겁게 내려앉은 네바 강의 여닫이 다리 위로 차량과 사람 물결이 일렁인다. 네바는 ‘여자의 마음’이란 뜻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여자의 잦은 변심처럼 강물 빛이 하루에 세 번 바뀌는 데서 유래된 비유이다. 아침에는 회색이지만 한나절에는 푸른빛으로 변했다가 저녁이면 황금빛을 띤다고 한다. 이것은 햇빛의 조화나 백야의 착시에서 오는 현상일 터이다. 길이 740㎞의 네바 강은 동쪽에 있는 면적 1만8000㎢의 라도가 호에서 발원해 하류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큰 도시가 들어앉을 수 있는 삼각주를 만든 다음 핀란드 만으로 유입한다. 백야는 예나 지금이나 이곳의 인기 브랜드이다. 백야는 고위도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 밤인데도 대낮처럼 환한 현상을 말한다. 보통 6월21일부터 29일까지 새벽 2~3시쯤 잠시 어둑해졌다가 이내 해가 뜨는 심한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몽환의 은빛 세계 속에서 ‘백야의 별 축제’니 ‘백야의 댄스 페스티벌’이니 하는 ‘환희의 장’이 펼쳐지곤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백야>에서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훨씬 아름다웠다”고 예찬도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환상과 우울, 미망을 더 신랄하게 꼬집는다.
세잔의 ‘화병’(1877년, 에르미타주 박물관).
어느새 차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잇닿은 궁전광장에 이르렀다. 체크 무늬의 광장 중앙에 장대한 알렉산드로프 전승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기둥 높이가 47.5m에 달하는 이 기념비는 1812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2년 후에 차르 황제 알렉산드르가 세운 것인데, 무게가 600t에 달하는 자주색 대리석이다. 기둥 꼭대기에는 십자가를 안고 있는 천사상이 얹혀 있다. 이 광장은 차르의 전제주의 폭정에 항거한 ‘피의 일요일’과 10월혁명 사건으로 러시아 현대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수놓고 있다. 장기간 차르의 혹독한 전제 통치에 시달려 오던 피압박 대중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드디어 1905년 1월9일(일요일) 지금의 모스크바 역 광장에서 넵스키 거리를 지나 황궁이 있는 이 광장으로 몰려든다. 군중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존권과 언론 및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는 등 요청사항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평화 행진에 나선다. 막혔던 보가 터지듯 많은 시민들이 합류해 대오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차르가 손을 흔들며 궁전 발코니에 나타나자 시위 군중들은 이제야 차르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되어 그를 향해 환호한다. 순간, 차르가 흔들던 손을 내리자 군중을 에워싸고 있던 군인들이 군중을 향해 일제히 기관총 사격을 퍼붓는다. 삽시간에 새하얀 광장이 4000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상자들의 피로 붉게 물든다. 이 날을 역사에서는 ‘피의 일요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이날 차르의 전제통치를 불살라버릴 혁명의 불씨가 지펴진다.
이때부터 12년이 지난 1917년, 2월 혁명을 거쳐 드디어 10월25일 밤, 네바 강 건너편에서 정박 중이던 오로라호가 동궁을 향해 발사한 공포탄이 10월 혁명의 서막을 알린다. 다음날 새벽 2시, 궁전에서 혁명을 진압하기 위한 모의를 하고 있던 니콜라이 2세와 임시정부 각료들이 현장에서 체포된다. 영욕으로 점철된 로마노프 왕조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그때의 그 모의장 벽에는 새벽 2시에 멈춰선 시계가 걸려 있다. 이 역사적 사변의 일등 공신인 오로라호는 원래 1897년에 건조되어 3년 후 진수한 7000t 급의 순양함이다. 발트 함대 소속으로 1905년 일본과의 쓰시마(대마도) 해전에서 참전 68척 중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2척 중의 한 척이다. 2월 혁명 때는 선원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선장을 살해하고 민중 봉기에 가담한 전력이 있다.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을 보고 나서 인근에 유물로 정박해 있는 이 배를 찾았다. 세월의 풍상 속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노 순양함은 이제 몇 개의 무공훈장만을 달고 부동의 자세로 관광객들을 맞으려 물 위에 적적하게 떠 있다. 몇몇 물오리만이 주위를 맴돌며 무자맥질하고 있다. 마침 해군행사가 열려 내부 구경은 할 수 없다고 해서 외경만 카메라에 담았다.
고갱의 ‘열매를 들고 있는 여인’(1893년, 에르미타주 박물관).
궁전광장을 에워싸고 벌어졌던 이러저러한 일들을 뒤로 하고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들어섰다. 성인 입장료는 450루블이고 내부 사진촬영 시는 100루블을, 캠코더 소지시는 250루블을 추가한다. 예전엔 실내 촬영이 금지되었는데, 지금은 돈 앞에서 그 금기가 무너지고 말았다. 보존과 돈의 역학관계에서 변화가 인 셈이다. 그 시절의 러시아가 아닌 다른 러시아의 한 단면을 읽게 된다. 에르미타주는 프랑스어로 ‘은둔하는 곳’이란 뜻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가 확연치는 않으나, 지하에 많은 은밀한 방이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그럴싸한 설이 있다. 1924년 이래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대영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라고 하는 이 대형 박물관은 건물부터 구도와 전시품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와 폭이 실로 엄청나다.
오늘날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네바 강가에 위치하면서 서로 연결된 다섯 개의 건물, 즉 지붕에 176개의 조각상을 이고 있는 겨울궁전(동궁), 소(말라야)에르미타주, 구(스타르이)에르미타주, 신(노브이)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극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복합구조물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건물로서 본관 구실을 하는 것은 초록과 흰색의 환상적인 로코코풍(18세기 프랑스에서 생겨난 귀족계급의 우아하고 유희적인 예술형식)으로 지어진 동궁이다. 이 박물관의 개관일은 논쟁 끝에 최초의 건물인 동궁의 완공일이 아닌, 미술품의 전시 시작일로 낙착되었다. 동궁은 표트르 대제의 며느리인 엘리제베타 여제가 8년간(1754~1762년) 지은 것으로서 궁전으로만 쓰여 왔다. 이어 표트르 대제의 딸인 예카테리나 여제가 1764~1787년 사이 동궁 옆에 소 에르미타주와 구 에르미타주를, 1783~1787년 사이에 구 에르미타주와 아치 화랑으로 연결되는 에르미타주 극장을 지었다. 신 에르미타주는 한참 후인 1839년 니콜라이 1세 때 건조되었다. 1764년 소·구 에르미타주를 짓기 시작할 무렵 베를린의 한 갑부가 부채 대신 미술 소장품 225점을 러시아에 건넨다. 이를 계기로 당시 서양 계몽주의에 심취해 러시아의 후진성을 개탄해오던 예카테리나 여제는 대뜸 화랑을 열고 서양 귀족들로부터 2000여점의 예술품을 사들인다. 비록 화재를 입고(1837년), 무식한 니콜라이 1세가 1000여점의 작품을 경매에 부쳐 날려 보내기도 했지만, 러시아의 근대화 추진과 더불어 소장품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19세기 말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지면서 적잖은 소장품이 모스크바 국립 표현박물관에 이장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차 두 대 분량의 소장품이 임시로 우랄산맥 너머로 피란했다가 되돌아오기도 했다.
피카소의 ‘부채를 들고 있는 여자’(1908년, 에르미타주 박물관).
그렇다면 이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라는 위상을 그대로 유지해온 이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06년 출판사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출판한 도록 <에르미타주>의 어디에도 구체적인 양이나 규모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체로 연구자들이나 관심 있는 관람자들의 추산만이 난무한다. 총 면적 4만6000㎡나 되는 350여개 방에 조각 1만2000점, 회화 1만6000점, 판화와 데생 60만점 등 총 300만점이 소장되어 있다. 10㎞나 되는 동선을 따라 한 작품을 10초씩, 하루 8시간 본다고 해도 장장 4년이 걸린다느니, 1050개의 전시실에 전시된 작품 하나를 1분씩만 감상해도 5년이나 걸린다느니, 창문과 오르내리는 계단 수는 각각 2000개와 120개나 된다는 등 갖가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통계가 나돌고 있다.
작품들은 3층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1층에는 선사시대의 문화와 예술,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오리엔트 문화, 아시아 문화와 예술,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화와 예술에 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과 3층에는 주로 서구의 명작들이 선을 보이고 있는데, 명작들의 ‘총집합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 다 빈치의 ‘꽃을 가진 성모’와 라파엘로의 ‘성모상’, 네덜란드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프랑스 세잔의 ‘화병’과 마티스의 ‘음악’, 고갱의 ‘열매를 들고 있는 여인’, 레넨의 ‘우유를 파는 여자의 가족’, 독일 홀바인의 ‘젊은 남자의 초상’, 스페인 피카소의 ‘부채를 들고 있는 여자’ 등 듣기만 해도 미감에 흠뻑 젖는 세기의 초상들이다. 물론 명성대로 미술품 위주이지만, 2층에는 서유럽 지역의 무기류와 의전용 홀(笏) 전시실이, 3층에는 화폐 전시실 같은 유물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다. 아무튼 에르미타주는 명실상부한 미술사 공부의 전당임을 새삼 느낀다.
레넨의 ‘우유를 파는 여자의 가족’(1640년대, 에르미타주 박물관).
미술에 관한한 에르미타주가 타자의 초월을 불허할 만하다는 데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주로 1층에 덤으로 전시된 선사시대나 고대의 유물은 무척 빈약하다. 사실 이번에 이곳을 찾아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그래도 러시아가 많이 소장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와 알타이 지역 문화유산이다. 특히 아직껏 가보지 못한 북방 유목문화의 보고 파지리크 고분군 유물에 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26호 파지리크 유물 전시실을 비롯한 중앙아시아관은 수리 중이라서 11월 말까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사정 끝에 겨우 추가 입장권을 구입해 중앙아시아관의 전시실 한 곳만 ‘말 타고 꽃구경하는’ 식으로 휙 둘러봤다. 주로 실크와 의상에 관한 유물이라서 기대엔 못 미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적잖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스키타이관을 세세히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의외의 소득은 선사관에서, 남러시아에서 출토된 인류 문명교류의 최초 유물이라고 하는 전형적인 비너스 상 두 점을 발견한 것이다. 피카소의 인물화 한 점을 구입하고 박물관을 떠났다.
미술에 관한한 러시아인들은 천부적인 재능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인 것 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도 이 에르미타주 말고도 일행이 방문한 러시아 박물관을 비롯해 30여개의 전문 미술 박물관이 있다. ‘페트로코프’, 즉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 같은 가볼 만한 유적 유물들을 뒤로 남긴 채 이번의 짧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답사를 마쳤다. 여행이란 늘 다음을 위해 아쉬움을 남겨두는 법. 어쩌면 이것이 여행의 유혹이요 매력일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을 전하면, 한·러 수교 20주년이 되는 올해에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에르미타주 한국유물전’이 예견되며, 이를 계기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유물 조사 및 한국실 개관도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실로 경하해 맞이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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