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1229174900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46) 러시아의 정체, 그 두 얼굴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12.29 17:49 수정 : 2009.12.29 17:50


쌍두 독수리 아시아 - 유럽 ‘왜 나뉠까’

지역·이념따라 정체성 뒤섞여…두 대륙 결합의 상징으로 국장(國章) 채택


러시아의 유럽화를 이끈 표트르 대제의 기마동상(상트페테르부르크).


우랄산맥의 동쪽 기슭에 자리한 아시아 러시아의 서단(西端)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유럽 러시아로 이어지는 길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아닌 항공로를 택했다. 현지시간 새벽 4시(모스크바 시간 새벽 2시)에 일어나 어슴새벽이 채 가시기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우랄의 삭풍을 헤가르며 러시아 항공 WR 019편은 정각 8시에 공항을 이륙해 기수를 서쪽으로 튼다. 흐릿한 날씨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간 우랄이 어스레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그제야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들어간다는 실감이 난다. 순간, ‘나지막한 산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지역이 갈라져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 구경은 그 어떤 정체성, 이를테면 자연 지리적 정체성이나 인문 사회적 정체성이 달라서 오는 갈림일 텐데, 그렇다면 그 갈림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인다.


사실 지구상에서 맞붙어 있는 육지가 두 대륙으로 나눠진 경우는 러시아 말고는 거의 없다. 러시아는 한 몸체에 아시아와 유럽이란 두 얼굴을 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 독특한 현상을 역사는 외면해 오지 않았다. 그 정체성을 놓고 예나 지금이나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무성하다. 그 중심에는 러시아사람들이 서 있는데, 그들의 말을 빌리면 두 얼굴의 정체성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쌍두 독수리 국장(國章)에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원래 독수리는 용맹한 새로서 로마제국의 상징으로 쓰여왔는데, 로마제국 계승의식이 강했던 비잔틴에서도 국가 상징으로 채용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머리가 하나인 원형 독수리 그대로이다. 그러다가 13세기 이후 쌍두에다가 오른발엔 십자가를, 왼발엔 황금구(黃金球)를 덧씌운 형상의 국장으로 변형된다. 이때 쌍두는 제국의 서방과 동방 영토(혹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를, 십자가는 교권을, 황금구는 세속권력을 각각 상징한다. 원래 쌍두는 그 옛날 히타이트나 페르시아 시대에도 있었으나, 당시는 신화 속의 영물로나 나타나지 문장으론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15세기 러시아가 이 형상을 이어받는다.


1472년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딸 조에(소피아)와 결혼한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3세가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로, 그리스정교의 수장으로 자처하면서 쌍두 독수리가 새겨진 깃발과 옥새를 사용한다. 여기로부터 이른바 ‘모스크바 제3 로마설’이 나오고, 쌍두 독수리가 러시아의 전통 국장으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모양새가 약간씩 달라진다. 처음엔 단순 소박했으나, 16세기에 이르면 모스크바 상징인 성 게오르기 상 도안이 가슴에 삽입된다. 17세기 로마노프 왕가가 들어선 후에는 오른발에 왕관을, 왼발에 교권을 뜻하는 황금구를 추가하고, 두 머리 한가운데 왕관 3개를 올려놓는다. 이로써 국장으로서의 러시아 쌍두 독수리 전형이 완성된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 시기에는 이런 식의 국장은 폐지된다. 그러다가 러시아연방 시기가 도래하자 2000년 의회가 국장 부활을 공식 가결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줄로 세 왕관을 연결하고, 좌우 발에 홀(笏)과 구(球)를 쥐게 한다. 세 왕관은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을 의미하고 홀과 구는 주권수호 의지와 나라의 통일을 상징한다고 풀이한다.


아무튼 쌍두 독수리 문장의 두 머리가 상징하듯 15세기 말엽 이래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서양과 동양이란 두 얼굴을 가진 양면(兩面) 국가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 특이한 두 얼굴(양면성)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해답은 자연환경과 인문지리 및 역사발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초원과 평원이 아득히 펼쳐진 유럽 러시아 땅과 툰드라와 타이가로 뒤덮인 아시아 러시아 땅이 저력이나 기능에서 같을 수가 없다. 그 속에는 원초적으로 뿌리가 다른 인간집단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생업과 삶의 형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이러한 다름과 갈라짐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 바로 역사이다. 역사가 있었기에 그토록 이질적인 두 땅이 맞붙고, 한 마리 독수리에 달린 두 머리(얼굴)가 상징성으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자연과 인문학의 조화라고 한다.


오늘로 이어진 러시아의 역사는 크게 키예프 루시시대, 몽골 지배시대, 모스크바 공국시대, 제정 러시아시대, 소비에트 연방시대, 러시아 연방시대의 여섯 개 시대로 나뉜다. <초기 연대기>라는 러시아어 사적(史籍)에 의하면 러시아의 역사는 키예프 루시시대부터 막이 오르는데, 그 막을 올린 주인공이 누군가는 러시아사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노르만 학파는 원주민인 슬라브족이 노르만 계열의 바랑고이(바랴그)인들을 초청해 지배자로 옹립함으로써 나라가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슬라브 학파는 키예프 지역에 살던 슬라브족 스스로가 세웠다고 반박한다. 이른바 외래설과 자생설 간의 각축이다. 누구에 의해 세워졌던 간에 약 400년 동안(9~13세기) 키예프를 수도로 하고 북으로는 발트해, 남으로는 흑해, 서로는 카르파티아산맥, 동으로는 모스크바에서 약 200마일 떨어진 오카강까지의 꽤 넓은 지역에 키예프 루시란 이름의 한 공국이 번성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아직은 유럽 땅이어서 머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유럽-아시아를 상징하는 러시아 연방의 쌍두 독수리 국장(모스크바 연방의회 의사당 정문).


그러다가 1240년 몽골의 서정에 의해 공국은 사라진다. 이때부터 250여 년간 외래의 몽골 지배가 시작된다. 볼가강 하류의 사라이에 도읍을 정한 킵차크 칸국(1243~1480년)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일원에 세워진 두 번째의 아시아 제국이다. 첫 번째는 일찍이 근 100년 동안(4~5세기)이나 유럽을 석권한 훈 제국이다. 몽골 지배는 유럽 러시아에 아시아적 정치 문화요소들을 이식시킴으로써 문예부흥이나 종교개혁, 시민운동 등 근대를 지향하는 서구적 시대 흐름으로부터 러시아를 격리시킴은 물론, 러시아로 하여금 장차 두 얼굴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편, 모스크바 유역에서 일어난 모스크바 공국(1271~1613년)은 출범과 더불어 킵차크 칸국과의 불안한 공존 속에서 화전(和戰) 양면 전술로 대응해 오다가 마침내 칸국을 제압하고 유럽 러시아를 통일한다. 그래서 일부 사학자들은 정체성 확립이란 측면에서 키예프 루시시대와 몽골 지배시대를 전사(前史) 시대라고 하며, 모스크바 공국시대부터를 진정한 러시아 역사시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 러시아를 발판으로 하여 일어난 이 모스크바 공국은 15세기 후반 이반 3세 때부터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로 자임하면서 쌍두 독수리를 정식 국장으로 채택한다. 그 쌍두가 유럽과 아시아를 상징한 것인지는 천명된 바가 없지만, 그의 뒤를 이은 이반 4세가 카자흐 기병 원정대를 보내 시베리아를 거머쥐기 시작한 점으로 미루어 공개적이건 암묵적이건 간에 쌍두 독수리의 한쪽 머리는 아시아 시베리아를 지향한 것임이 분명하다. 17세기 초엽에 모스크바 공국을 계승한 로마노프 왕조의 제정 러시아시대(1613~1917년)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정체는 국장에 새겨진 독수리의 쌍두처럼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른 두 얼굴, 즉 양면성인 것이다. 오늘에 와서 이 양면성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른다는 의미의 합성어인 ‘유라시아’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러시아가 유라시아 국가로 변모되어 온 과정은 모스크바 공국시대부터 끊임없이 추구해 온 팽창주의의 소산이다.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3세(1462~1505년) 때부터 1917년 제정 러시아시대(차르시대)가 끝날 때까지 약 450년 동안 영토는 하루 평균 약 50평방마일씩 늘어난다. 결과 이반 3세가 즉위할 때 모스크바 공국의 영토는 약 1만5000평방마일이었던 것이 1917년 10월 혁명 당시 러시아의 영토는 그것의 약 567배가 되는 850만평방마일로 급증한다. 영토는 소비에트 연방시기에도 여러 지역을 병합하는 바람에 전 세계 육지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 땅에 각이한 혈통의 128개 민족이 살고 있으며, 동서로 11시간대에 걸쳐 있는 세계 최대국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어 연방을 구성했던 14개 공화국이 떨어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러시아 연방은 여전히 지구 육지면적의 8분의 1 이상을 점하고 있는 대국으로 남아 있다.


독수리의 쌍두로 상징되는 유럽과 아시아의 두 얼굴을 가진 러시아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19세기 러시아 시인 표트르 주트체프는 이렇게 읊조린다.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나라 러시아, 일반의 잣대로 잴 수 없는 나라 러시아, 자신만이 독특한 모습을 지닌 나라 러시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나라 러시아.” 그 정체성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으면 이렇게까지 읊조리겠는가. 작금 많은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유럽 나라로 보지 않는가 하면, 아시아인들은 또 나름대로 러시아를 아시아 나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러시아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가 자못 궁금하다.


대체로 자기의 처지와 입장에서 출발해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 유라시아주의의 세 가지 이념에 따라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온다. 서구주의자들은 러시아를 유럽의 일부로 보나 유럽만큼 발전하지 못한 유럽으로 보며, 슬라브주의자들은 서구와는 차별되는 우수한 슬라브적 전통을 지닌 독자적 나라라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근간에 대두한 유라시아주의자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긍정적 요소들을 두루 공유하고 있는 유라시아 나라라고 절충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상이한 발전모델을 찾고 있는데, 서구주의자들은 ‘추격형 발전모델’을, 슬라브주의자들은 ‘독자적 발전모델’을, 유라시아주의자들은 ‘복합적 발전모델’을 각각 추구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오늘날 러시아 연방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유럽 러시아의 여학생들(슬라브족).


근래에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가 옛 냉전시대에 미국의 단독 파트너로서 누렸던 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야심찬 시도이다. 그러한 시도는 아시아에 낯을 돌리고, 미래와 우주 정복의 ‘비밀병기’인 시베리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올해 6월 우랄산맥 너머의 첫 아시아 땅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러시아·중국·인도·브라질의 정상들이 모여 이른바 ‘브릭스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리고 지난 7월3일 블라디보스토크의 독수리산 전망대에서 2012년 바로 이곳 앞바다의 루스키 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을 위해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 건설 등 준비가 한창인 것을 확인했다. 러시아의 미래가 극동지역 개발과 직결되는 현실이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곳곳에서 감지하다시피 18세기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가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유럽에 가까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면서까지 유럽화를 추진해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으나,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활로는 바야흐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베리아 극동지역에선 지금 엄청난 인력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 젊은이들은 유럽 러시아 쪽으로 빠져나가고, 대신 인근 동북 3성의 1억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인력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얼마 안 가서 극동지역은 중국인들의 천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것은 러시아 두 얼굴의 무게 추에 기울음 현상이 일어날 징조가 아닐 수 없다.


구름 위를 날고 있어 다른 일에 한눈팔 여지가 없다. 이제 곧 맞닥뜨리게 될 유럽 러시아의 현실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늘 아리송하던 러시아의 정체성을 이렇게 한 번 짚어본다. 소형 비행기의 말단 좌석 19B는 앞좌석과의 사이가 10㎝도 채 안 된다. 골똘한 생각에 불편을 느낄 겨를도 없이 1시간 40분 만에 목적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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