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1222180309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45)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예카테린부르크
정수일 |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12.22 18:03 수정 : 2009.12.22 18:03
두 대륙 잇는 혼성도시 경계탑엔 저녁놀만 쓸쓸 …
아시아 - 유럽 경계탑. 뒤로 난 도로가 경계탑 동쪽의 아시아길.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사는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한 편의 긴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가 펼쳐진 현장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보름 동안 횡단열차를 타고 하나하나 누비던 끝에 마침내 그 종장을 향하고 있다. 장마다 실로 드라마틱한 역사의 한 단면들을 실토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해 이르쿠츠크를 지나 모스크바로 가는 몽골횡단철도(TMGR)를 타고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난 지 꼭 19시간43분 만에 시베리아의 서쪽 끝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중간에 좀 못 미쳐 옴스크를 지났다. 어두움이 짙게 깔린 한밤중이라서 희미한 전기불빛만이 얼어붙은 이르티시강을 싸늘하게 비추고 있을 뿐, 시가는 통 분간할 수가 없다. 18세기 초 군사 요새로 건설된 이 도시는 시베리아에서 노보시비르스크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약 120만명을 헤아린다. 옴스크하면 필자에겐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추억이 있어 그저 스쳐 지나갈 수가 없다. 30년 전 바로 이맘때 구소련 ‘뚜104’ 항공기편으로 모스크바를 향하다가 악천후로 이곳에 불시착했다. 덕분에 하루 묵으면서 시내를 둘러봤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이 지금껏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다. 19세기 중엽, 그는 이곳에 5년 동안이나 유배되어 당시 시베리아의 고달픈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다. 그 모든 것을 담아낸 작품이 바로 <죽음의 집 기록>이다. 시대의 기수로 우뚝 선 대문호는 시대가 영겁(永劫)으로 흘러가도 죽지 않는 법이다.
경계탑으로부터 유럽 각지까지의 거리 표지판.
예카테린부르크는 러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89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스베르들로프스크 주의 주도로서 우랄산맥 동쪽 기슭, 토볼강 지류인 이티지강 연안에 자리하고 있다. 약 130만명이 사는 이 도시는 우랄산맥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1721년에 건설되었다. 2년 후에 표트르 대제가 황후인 예카테리나(후에 예카테리나 1세 여제)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이곳에 러시아의 첫 제철공장이 세워지면서 야금공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한다. 특히 1783년에 건설된 시베리아 횡단도로와 19세기 말에 부설된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도시를 가로지름으로써 도시의 면모는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1924년 이곳에서 혁명을 이끌었던 스베르들로프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이 스베르들로프스크로 바뀌었지만, 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엔 예카테린부르크란 옛 이름으로 복원된다. 그러나 철도역만은 아직 그대로 스베르들로프스크역으로 불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이 도시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다. 유럽에서의 전란을 피해 군수산업을 비롯한 중공업 공장들이 대거 우랄산맥 동쪽 기슭의 안전지대인 이곳으로 옮겨진다. 이것을 발판으로 전후에도 공업이 계속 성장해 경제규모로는 러시아에서 세 번째를 자랑하는 ‘부자 도시’로 자리매김된다. 오늘날 우랄지방의 최대 중공업 도시로서 80% 이상이 군수산업에 기반을 둔 철강·화학·야금·합성수지·건설자재·직물 등 각종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약 3만개의 기업 가운데 대기업이 1000여개에 달한다. 철강산업으로 유명한 ‘우랄마쉬’의 경우 종업원 수가 1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예카테린부르크는 과학도시이기도 하다. 200개 이상의 연구기관과 우랄대학을 비롯한 16개의 대학이 있으며, 기계공학과 지리학 및 건축학 분야에서는 단연 압권이다. 시내에 산재한 600여개의 기념물 중 43개가 러시아의 국보로 지정되었을 만큼 유서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러시아 연방의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 의해 형성된 이른바 ‘우랄파’란 막강한 정치세력의 본향으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한다. 시 근처 한 시골에서 태어난 옐친은 우랄 공업대학 건축과를 나와 시 공산당 서기장을 걸쳐 일약 모스크바 시당 서기장으로 발탁된 무렵인 1991년 8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항거하는 쿠데타를 묘하게 역이용한다. 그가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서 한 연설이 뭇사람들의 환심을 얻어 급기야 크렘린궁의 주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막강하던 경제가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하는 최악의 곤경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그 거구의 옐친도 알코올 중독과 심장병으로 하야하고 만다. 올해 6월 이곳에서 러시아·중국·인도·브라질의 정상들이 모여 이른바 ‘브릭스 정상회담’을 개최할 정도로 이 도시의 정치적 위세와 명망은 여전히 높다.
도심에 연못을 낀 예카테린부르크는 ‘수채화 같은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촐할 뿐만 아니라, 높낮음과 색조가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유럽식 도시이다. ‘탈아입구(脫亞入毆)’, 즉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가는 정서가 물씬 풍긴다. 조금은 들뜬 기분 속에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족이 처형된 자리에 세워진 이른바 ‘피해성당(일명 로마노프 성당)’이다. 성당은 곤욕이나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채 하얀 눈 속에서 야릇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5년 전에 지은 성당의 1층은 처형지와 박물관이고 2층은 기도소이다. 몇몇 신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성가를 부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벽에는 낯익은 성화나 이콘화들과 함께 처형된 황제 일가족 7명(황후, 4명의 딸, 11살의 황태자 알렉세이)의 초상화, 그리고 그들의 감금생활상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다.
니콜라이 2세 처형지에 세워진 ‘피해성당’ 외경.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차르의 전제통치에 항거하는 2월혁명이 일어나자 퇴위한다. 그리곤 켈렌스키 임시정부의 감시 하에 우랄지방의 한 평범한 민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7월16일 예카테린부르크의 이파체프란 사람의 집에 감금된다. 그런데 그를 구심점으로 삼는 백군(白軍)이 구출작전을 펼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적군(赤軍)은 서둘러 당일 황제 일가족과 의사 및 하인 등 11명을 지하실에서 총살한다. 황제는 비명에 갔다. 대관식에서 목걸이가 땅에 떨어져 불길한 징조라고 하던 수군거림이 성자의 예언처럼 맞아떨어졌다. 시신들은 소각되었다느니, 광산에 버려졌다느니, 야산에 파묻혔다는 등 추측이 난무한다. 한때 타다 남은 황제의 두개골이랍시고 DNA 검사를 한 결과 가짜로 판명된 소동까지 일어났다. 막내딸 아나스타샤 공주의 생사에 관한 미스터리는 오랫동안 세간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공주가 학살되기 직전 경비병의 도움으로 피신한 후 신분을 바꿔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920~30년대에는 공주임을 자처하는 미모의 여인들이 나타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 예카테린부르크 근처 숲속에서 발견된 시신들이 황제 일가족 7명의 시신들이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공주의 죽음에 관한 소문은 낭설로 그치고 말았다. 러시아 정부는 비운의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을 순교자로 인정, 정교회의 성인으로 시성(諡聖)하고 1998년 황제의 시신을 성 페테르부르크의 성 베드로 성당에 안치했다. 이로써 희대의 비극은 막을 내린다.
다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유명한 광물박물관이다. 겉보기에는 허름한 집 2층에 차려놓은 박물관이지만, 속은 실로 알차다. 안내원 마리나는 사설 박물관이라고 소개하는데, 규모나 가치로 미루어 잘 믿어지질 않는다. 2층 전체가 진열장인데, 왼쪽 벽에는 이곳 특유의 광물을, 오른쪽 벽과 중앙에는 러시아 전역에서 나는 광물을 두루 전시하고 있다. 한결같이 기기묘묘하고 현란하다. 예카테린부르크에는 멘델레예프 원소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광물이 매장되어 있으며, 세상에 알려진 광석과 광물의 절반 이상이 우랄산맥 속에 묻혀 있다고 하니 이 지역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광물천국’이다. 그리하여 보석가공업이 발달해 여러 가지 자연산 보석을 이곳 나름의 방식으로 세공해 값진 보석을 만들어내고, 시내 곳곳에 화려한 자연석으로 만든 브로치나 반지 같은 장신구 공예점들이 즐비하다. 어떤 보석은 이곳에서만 가공되고 생산된다. 그래서 전문 보석 매매상이나 보석 애호가들이 이곳에 폭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좋은 보석은 경매처럼 불티나게 팔린다. “눈에 띌 때 사두라”는 러시아 속담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예카테린부르크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 도시라는 인상이다. 그만큼 이 도시는 아시아와 유럽의 두 얼굴을 함께한 혼성도시로 유명하다. 그 만남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시 중심에서 17㎞ 지점에 자리한 아시아-유럽 경계탑이다. 남북으로 2000여㎞나 길게 뻗은 우랄산맥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이루다보니 넘나드는 길이 여러 갈래이다. 그래서 경계탑(혹은 경계비)만도 44개나 있고, 그 모양도 오벨리스크형이나 첨탑형 등 각이하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그 가운데의 하나이다. 원래 ‘우랄’이란 ‘돌로 이루어진 경계’라는 뜻이다. 보통 ‘우랄’이라고 하면 유라시아 대륙의 북부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갈라놓는 분계선으로서의 산맥을 말하나, 넓은 의미에서는 이 산맥을 중심으로 동서에 펼쳐진 넓은 평원을 지칭하기도 한다. 우랄산맥은 북유럽의 카라해로부터 카자흐스탄 북부까지 뻗어 있다. 지질대로 놓고 말하면 북쪽의 툰드라에서 시작해 타이가와 삼림 스텝을 지나 남쪽의 사막지대로 이어진다. 평균 높이가 300~500m로 산세는 낮은 편이다. 특히 중간 지대는 상대적으로 낮다. 북쪽에 가장 높은 나로드나야봉(1894m)이 솟아있고, 남쪽에 다음으로 높은 야만타우봉(1638m)이 있다. 약 3억년 전에 조성된 이래 침식이 심해 오밀조밀한 호수와 아기자기한 바위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 카스피해로 흘러들어가는 우랄강(길이 2534㎞)은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다.
교통안전을 기윈해 채색 천을 둘러놓은 ‘세르게’.
경계탑 입구에 들어서자 교통안전을 기원해 여러 가지 색깔 천을 두른 ‘세르게’(한국의 서낭당이나 몽골의 오보와 비슷함)와 경계탑으로부터 유럽 각지까지의 거리 표지판, 그리고 아시아-유럽 경계이론의 창시자인 타티쉐프의 석판상이 눈에 띈다. 350루블의 입장료를 물고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가 경계탑에 이른다. ‘아시아’와 ‘유럽’이란 러시아어 단어가 새겨진 받침돌 위에 20여m쯤 되어 보이는 삼각 뾰족 철탑이 세워져 있다. 받침돌 한가운데를 지나는 선이 바로 두 대륙을 나누는 분계선이다. 사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것은 일찍부터 지리학계의 논제였다. 특히 두 대륙을 공유한 러시아가 16세기부터 이 문제를 상정하자 그 논의에 일부 서구 학계도 가담한다. 그러나 오리무중으로 있다가 18세기에 이르러 러시아의 타티쉐프가 수자원의 원천과 식물의 분포가 확연히 다르다는 자연 지리적 근거에 준해 우랄산맥-우랄강-카스피해-흑해-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하는 경계 설정을 주장한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우거진 적송 숲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 냉철한 경계 철탑에 저녁노을이 비끼기 시작한다. 경계탑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아시아길이, 서쪽으로 유럽길이 휑하니 뻗어 있다. 무엇이 이 두 대륙을 갈라놓고 있는가? 꼭 갈라놓아야만 하는가? 분명 다름이 있기에 갈림이 있는 법, 그렇다면 둘 사이의 다름은 과연 무엇일까? 왜 그런 다름이 생겼을까? 새삼스러운 상념은 아니지만, 그 경계 지점에 서고 보니 그 해답이 더더욱 간절해진다. 역사란 부침(浮沈)의 과정일진대, 유럽과 아시아는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늘로 이어져 왔다. 그 과정은 선의라기보다 악의 경쟁에 더 치우쳤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러한 어제를 뒤로 하고 상부상조하면서 나란히 공생공영하는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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