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1201172324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42) 과학도시 노보시비르스크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12.01 17:23


팔만대장경의 재료… 자작나무를 울타리 삼은 ‘100년 신도시’

군수 요충지서 첨단과학 메카로 우뚝


자작나무와 다차(주말농장).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 이르쿠츠크와 노보시비르스크 사이 구간은 가장 쾌적한 구간이다. 일망무제한 평지 초원과 수림지대를 가로지르는 노선은 오르막이 별로 없어 마냥 직선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그러니 속도는 전 노선에서 가장 빠르며, 운행의 안전도도 가장 높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 시간으로 2008년 2월14일 밤 10시12분(현지시간은 15일 2시12분)에 떠난 열차가 16일 아침 4시40분(1시간 시차)에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으니 꼭 30시간28분을 달린 셈이다. 4인용 침대칸이 딸린 열차로 좌석은 7열차 17번이다. 세 사람은 일행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극동 콤스몰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50대 초반의 무역업자이다. 러시아어밖에 몰라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본인도 퍽 안타까워하는 표정이다. 그래도 외마디 소리에 손짓과 눈짓을 섞으니 정은 통한다.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으로 여행 8일간의 식량을 대체한다. 차림새도 소박하다. 작금 러시아 중산층의 초상이다.


새벽녘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어느새 수림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다차’의 머리 위엔 흰 눈이 수북이 쌓인다. 극동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는 내내 철도 연변에서 숱한 다차를 목격했는데, 그 밀도는 서쪽으로 올수록 더 짙고, 모양새도 더 다양해진다. 그만큼 서쪽은 동쪽에 비해 부유하다는 뜻이다. 50여년 전 처음 봤던 그 다차와는 이제 차원이 달라져 가는 성싶다. 원래 다차는 시내에 사는 사람들의 주말농장으로 자연과의 만남이라는 데서는 쉼터의 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호사하는 별장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크기나 모양새가 고만고만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판판 달라 보인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주말농장이나 쉼터로서의 본래 기능이 남아 있겠지만, 신흥부자들에게는 부의 상징으로 둔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어마어마한 다차가 경관구(景觀區)마다에 들어앉을 수가 있겠는가. 변화하는 러시아의 축도(縮圖)라고 해도 지나친 말일까.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본부 복도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하는 연구원들.


몇 시간 내린 눈으로 미끈하게 뻗어 올라간 자작나무의 밑동치는 몽땅 흰 옷으로 갈아입고, 가지마다엔 눈꽃이 송송이 피어나 유난히도 청순하게 보인다. 문득 그 시절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백조들이 머리 위로 발레단 상징인 은빛 자작나무 가지를 치켜들고 총총걸음으로 무대의 개막을 알리던 그 황홀하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른다. 지금 그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니 감회가 새롭다.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자작나무는 기백과 청순함으로 우리 겨레를 포함해 북방 민족들에게는 성스러운 나무로 여겨지고 있다. 러시아에 하느님이 자작나무를 타고 내려와 인간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신라의 금관은 이 자작나무 껍질로 내관을 둘렀고 천마총의 천마도나 팔만대장경도 같은 소재로 만들었다. 다들 자작나무를 땅과 하늘,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통로, 즉 우주수(宇宙樹)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는 우주수 가득한 웅숭깊은 신비의 땅이다.


지금 일행은 이 땅의 신비를 파헤치려고 또 하나의 명소 노보시비르스크를 찾아가고 있다. ‘새로운 시베리아’라는 뜻이 말해주듯, 노보시비르스크는 100년 남짓한 건설 역사를 가진 ‘새 도시’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의 첫 삽을 뜨던 1893년, 오브 강에 놓을 철교의 부지를 찾다가 마침 강폭이 좁고 바닥이 자갈인 이곳이 선택되었다. 철도 건설자들이 인가를 이루면서 형성된 이 도시는 러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 특성과 유리한 자연환경에 힘입어 20세기 초부터 극동 지역과 우랄산맥 너머의 수도권을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급속히 성장한다. 원래는 니콜라이 2세의 이름을 따 ‘노보니콜라옙스크’라고 불리다가 1925년 오늘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비행기와 탱크 등 무기와 군수물자 생산의 요충지로 두각을 나타냈다. 전후에는 소련 최고의 공단 지역으로 변모하면서 1959년에 이르러서는 과학도시 ‘아카뎀고로도크’의 조성을 계기로 첨단 실용과학의 메카로 자리를 굳힌다. 그래서 오늘은 인구 150만명을 거느리는 러시아 제3의 도시로서 인근 위성도시들을 통합해 대도시군을 형성하고 있다. 급기야 러시아의 정중앙,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장 큰 도서관, 가장 큰 기차역, 가장 큰 비행장, 가장 큰 댐이라는 신나는 기록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이제 숨차게 달려온 열차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역,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앙역에 서서히 들어선다. 1939년에 지어진 이 역사는 연한 하늘색의 기차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몇 년 전에 개축해서 내부 시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화려하다. 역사 안에는 철도공사가 직영하는 고급 호텔도 있다. 이 역이 하루에 취급하는 물동량은 1990년대에 비하면 30~40% 줄어들었는데도 여객열차 150대와 화물열차 100대가 드나들며 화물 수송량은 약 55만t에 달한다. 현재 러시아 철도공사 산하에는 17개 지사가 있는데, 그 중 이곳에 본부를 두고 12만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서시베리아 철도지사가 화물 수송량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한다. 그것은 이 역이 러시아 철도 운송의 심장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에 도착하니 현지 여행사에서 파견된 안내원 아나스타샤가 기다리고 있다. 예쁘고 상냥한 아가씨는 일행에게 환영의 뜻으로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씩 건네준다. 러시아 사람들은 유난히 꽃을 좋아한다. 그 추운 겨울 거리 어디에서도 손에 꽃을 들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을 쉬이 발견하게 된다. 크고 작은 모든 행사에는 꽃 증정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추운 곳이라서 꽃 가꾸기가 어려우니 꽃이 귀해서 그렇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역사를 빠져나와 시 중심 레닌 광장 곁에 있는 첸트랄나야(중앙)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6층 618호실이 배정되었으나 수도에서 찬물이 나오지 않아 그만 638호실로 옮겼다.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인데도 화려한 역사에서 받은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시설이 부실하다.


처음 찾아간 곳은 이 도시 역사의 산 증인인 오브강 철교이다. 러시아의 큰 도시는 대개 한복판에 강을 끼고 있다. 노보시비르스크도 예외는 아니다. 도시의 중심을 관통하는 길이 3680㎞의 오브강은 서부 시베리아의 중요한 강 중 하나로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부설될 때 그 위에 철교가 놓이게 되었다. 다들 이 다리가 1893년에 개통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민영환(閔泳煥)은 <해천추범(海天秋帆)>에서 1896년 9월1일 맑은 날 이곳에 도착했는데, 철교가 놓이는 중이라서 기차에서 내려 배를 타고 오브강을 건넜다고 기록하고 있다. 생생한 현장 기록이라서 믿음성이 있다. 지금은 신·구 철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자잘한 보수를 해오다가 1995년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마쳐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높은 교각이 인상적이다. 강변의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넓은 풀숲, 20도 안팎의 수온, 여름철에는 수영과 피서를 즐길 수 있는 훌륭한 휴양지라고 한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본부 입구.


돌아오는 길에 그 유명한 과학도시 아카뎀고로도크에 들렀다. 시 남쪽 30여㎞ 지점에 자리한 인구 10만명의 아담한 공원도시이다. ‘아카뎀’은 ‘아카데미’, 즉 ‘과학(기술)’이고, ‘고로도크’는 ‘작은 도시’란 뜻이니, 아카뎀고로도크는 ‘작은 과학도시’란 말이다. 우리네 대전 대덕연구단지를 연상케 하는 고장이다. 냉전시대를 가파르게 치닫고 있던 1950년대, 미국의 첨단 과학 육성정책에 자극을 받은 흐루시초프는 이 과학도시의 조성을 결심한다. 드디어 1950년대 말에 고속으로 소련 과학의 교두보로 완공된다. 핵물리학·우주과학·천체물리학·특수금속학·미생물학·위성통신·지질탐사 등 다양한 첨단과학 분야에 특화된 50여개의 연구소와 400여개의 보조연구소가 들어섰다.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과 23개의 단과대학은 우수한 과학도들을 양성하고 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본부도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러시아어로 ‘동반자’란 뜻, 1957년 10월 발사)와 전투기 대표주자인 수호이 기종도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첨단과학 분야의 가장 우수한 연구자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졸속한 페레스트로이카는 그들의 해외 유출로 나타났다. 한동안 웅성거리던 과학도시는 일시에 암울한 유령의 도시로 변했다. 다행히 지금은 고부가가치의 과학연구에 시동이 걸리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상해 매해 90여회의 과학 박람회가 열리고 1000개의 외국 회사를 유치하게 되자 쓸쓸히 빠져나갔던 사람들이 슬슬 돌아온다고 한다. 과학과 학문의 숭고성이 무망한 정치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통절한 교훈이다.


울타리가 쳐진 과학도시는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울창한 수림 속이다. 휴양림을 방불케 하는 쾌적한 환경이다. 주택과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모든 과학연구 활동을 총지휘하는 통합기관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본부를 방문했다. 본관 1층만을 여행객들에게 공개하는데, 과학도시가 걸어온 길을 알리는 홍보물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어 곁에 있는 ‘돔우쵸니크’, 즉 ‘과학의 집’을 방문했다. 1층에는 휴식공간을 겸한 갤러리가 있다. 호방한 러시아의 대자연을 그린 몇 장의 유화는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2층에 있는 도서관과 콘서트홀을 둘러봤다. 일반 홍보용 시설에 불과해 과학의 도시 심연에 깔려있는 최첨단의 비경(秘境)은 접할 수가 없다. 단, 과학도들의 영롱한 눈빛과 얼굴에서 불타는 탐구열을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인종의 학도가 삼삼오오 컴퓨터 앞에 모여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토론하는 모습은 자못 대견스러웠다. 이 과학도시에는 물리수학 영재학교란 특수학교가 있다. 시베리아 전역에서 11~12세의 우수한 아동들을 선발해 물리수학 등 기초과학을 교육한다고 한다. 이들이 있기에 이 나라 과학의 전망은 창창하다.


오브 강 위의 신·구 철교.


떠나기에 앞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이 과학도시의 창시자인 미하일 라프렌티예프(1900~80)의 동상을 숙연한 자세로 둘러봤다. 카잔에서 태어난 그는 모스크바대학 물리학 및 수학부의 학부와 대학원을 수료하고 잠깐 프랑스에 유학하고 돌아온 후 평생을 폭발에 관한 연구에 바쳤다. 1957년 소비에트연방 과학학술원이 성립되면서 시베리아 지부의 첫 지부장으로 아카뎀고로도크의 창설을 주도했다. 오늘도 과학의 아버지로서 후학들의 앞길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학자와 학문의 무게를 제대로 헤아려볼 줄 아는 사회만이 비전이 있는 문명사회다.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식 견학이었지만, 아카뎀고로도크는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이 시대의 참 학문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사색의 불을 지폈다. 일정한 소명이 부여된 시대를 사는 인간의 사색은 결코 시대와 동떨어질 수 없다. 시대의 소명에 따르는 것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사명이고, 소명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명감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사명인(使命人)이다. 사명인만이 진정한 시대인이다. 소명에 따른 사명을 자각하는 것은 인간의 최고 지각이며, 그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인간의 최고 가치이다. 따라서 시대의 소명에 충실한 학문만이 참 학문이다. 흔히들 학문은 ‘초시대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참된 학문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빛을 발하며 미래지향적으로 학문을 추구하라는 뜻이지, 초연하게 시대의 소명을 떠나 학문이 존재할 수 있다거나, 소명을 무시한 채 유아독존 격으로 상아탑 속에서 학문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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