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1208172537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43) 망중한, ‘실바’ 관람과 생일파티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12.08 17:25


이역만리서 만난 동포 “고맙재이오, 잘 가오”

러시아 예술의 샘터, 시베리아

열광적인 뮤지컬 보고나니 겹쌓인 여독도 말끔히 풀리고…


노보시비르스크의 재래시장 입구.


건설된 지 120년도 채 안 되는 노보시비르스크는 ‘신흥’ 도시답지 않게 볼거리가 많다. 아마도 러시아의 정중앙에 위치하면서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 가장 큰 기차역과 가장 큰 도서관, 가장 큰 댐 등 기록과 더불어 과학의 메카 아카뎀고르도크와 소문난 박물관과 극장 몇몇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혹한에 부대끼는 일행의 시베리아 답사 노정에서 절반(7일간)을 넘기고 있는 터라 이런 곳에서 잠깐 다리쉼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테면 망중한의 여유다. 노독이 겹쌓이는 여행에서 이것은 여정을 더 활기차게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재충전’이다. 그래서 여기서 이틀 여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첫 날 오브 강 철교와 아카뎀고르도크를 둘러보고 나서 찾아간 곳은 야외 철도박물관이다. 우중충한 하늘에서는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지난 2000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러시아의 3대 철도박물관 가운데 가장 큰 박물관이라고 한다. 나머지 두 개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것은 TSR(시베리아 횡단철도)·TMR(만주 횡단철도)·TMGR(몽골 횡단철도)·투르크-시베리아 철도(중앙아시아의 알마티와 비쉬켁, 타슈켄트 행) 등 주요한 철도가 다 이곳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3000여 평의 공간에 67대의 열차가 진열되어 있다. 앞으로 천장을 만들어 전천후 관람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현장 안내원은 소개한다. 전시품의 위용도 위용이거니와 종류가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다. 100여 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차종별과 시기별, 용도별로 잘 정리해 놓았다. 2002년에 전 구간의 전철화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달리던 각종 증기기관차며 디젤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객차의 변천 모습이다.


150여 년 전인 184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으로 객차가 만들어진 이래 내부 시설은 부단히 변해왔다. 처음엔 4개 등석으로 세분화했으나 혁명 이후에는 2인 1실의 1등석과 4인 1실의 2등석 두 가지로 간소화했다. 1950년대 중반 필자가 처음 타봤던 이런 간소화식 객차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내부시설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그 이름도 지금은 2인 침대칸은 ‘룩스’로, 4인 침대칸은 ‘쿠페’로 달리 부르고 있다. 객차의 길이도 24m나 길어진데다가 24량의 장대 열차로 달리니 열차의 총 길이는 근 500m나 된다. 개통 이래 역사의 고비마다에서 철도운송에 공을 세운 기관차엔 일일이 표창마크가 붙어 있다. 섭씨 1000도를 유지하면서 각종 철을 녹여내는 용광로 열차, 레일을 놓는 열차, 눈 치우는 열차, 병원 열차 등 생전 처음 보는 특수 열차들이 줄줄이 선을 보인다.


애환과 변환(變換)으로 가득 찬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혁을 현장에서 두루 알고 나니 지금 그 위로 달리고 있는 의미가 새롭게 되새겨진다. ‘지즉위진간’(知卽爲眞看), 즉 ‘앎으로써 참이 보인다’라는 우리네 선현들의 말이 새삼 실감난다. 누군가가 현장 답사를 독려하는 데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서양 사람의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되뇌고 있는데, 사실은 우리네 선현들은 그와 맞먹는 지혜로운 말을 이미 벌써 이렇게 써왔다. 제 것은 모른 채 무턱대고 남의 것만을 좇는 허무함을 일깨워주는 일례라 하겠다.


시베리아의 통나무 귀틀집 아즈바를 연상케 하는 한 전통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때우고는 서너 시간 각자 자유 휴식을 취했다. 한결 거뜬한 기분으로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뮤지컬 코미디 극장을 찾았다. 마침 <실바>라는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다. 입장료는 한 장에 450루블(미화 19달러)이다. 약 500명 수용의 극장은 빈 좌석 하나 없이 꽉 차있다. 주말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현지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평시도 이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대답한다. 배우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관람객들의 진지한 모습도 퍽 인상적이다. 원래 러시아인들은 어떤 유의 공연이든 즐기는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모스크바가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전화에 휩쓸리고 있는 그 아찔한 순간에도 극장은 여전히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은 예술에 열광적이다.


<실바>는 1915년 독일 작가와 헝가리 작곡가의 합작품으로 창작된 유명한 뮤지컬인데, 이곳에서 공연하는 <실바>는 러시아어로 번안한 것이다. 줄거리는 신분이 낮은 카바레의 기녀(妓女) 실바를 둘러싼 사랑의 이야기이다. 에드먼드라는 지체 높은 젊은이가 예쁘고 착한 실바를 사랑하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친다. 혹여 변호사 앞에서 혼인증서를 쓰면 부모의 반대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부모는 막무가내다. 부모는 다른 여자와의 정혼을 강요한다. 그 즈음 에드먼드의 어머니도 실바와 같은 기녀 출신임이 밝혀지자 부모의 고집은 한풀 꺾인다. 드디어 에드먼드와 실바는 결혼에 골인하면서 무대는 환희의 축제 속에 막을 내린다. 장장 두 시간 반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진다. 노래와 춤, 음악의 대하모니이다. 연극의 짜임새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 내용을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없다.


야외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증기기관차와 객차.


러시아는 어느 자그마한 도시에 가도 극장이 다 있다. 지난 80년대 말 통계에 의하면 구소련 전역에 640여개의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극장은 시대마다의 산 증인으로서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찍이 8세기경부터 나타난 일종의 유랑연극단인 ‘스코모로히’(어원은 그리스어의 ‘익살꾼’)가 바로 그 모태다. 소규모의 연극이나 노래·춤·만담·연주·요술·인형극·동물 재주 등 다채로운 연기 종목을 갖고 도시나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문자 그대로 익살을 부린다. 많은 경우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지배계층들의 낯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 그래서 1648년 황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는 칙령을 내려 이런 유의 공연을 금지시키고 익살꾼들을 벽지로 추방한다. 그러나 누를수록 튀어 올라오는 것이 사회의 대응법칙일진대, 익살꾼들의 활동은 오히려 더 활발해지고 극장은 늘어난다. 1856년 처음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상설 극장이 선을 보였으며, 심지어 농노 출신들로 구성된 농노극장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전통이 계승되어 소련 시절에는 곳곳에 대형 극장들이 세워져 러시아 예술의 선도 구실을 해왔다. 러시아 극장은 모두 국립이나 공립으로 운영되며, 극장과 극단은 일체로서 상설 극장에는 전속 극단이 있다. 이 뮤지컬 코미디 극장의 복도 벽에 붙어있는 공연 프로그램을 보고 깜작 놀란 것은 상연 종목이 매일 바뀐다는 사실이다. 일요일에는 마티네(오후에 행하는 흥행)로 대체한다.


신비의 땅, 시베리아는 러시아 예술의 샘터이자 보고이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그 시절 러시아를 알기 시작한 것은 이 광활한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무대로 한 영화를 통해서이다. 그래서 이틀 전 이곳에 오는 열차 속에서 일행과 함께 DVD로 감상한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와 <닥터 지바고>는 그 시절과의 수십 년 간극을 뛰어넘어 감회를 새롭게 한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시네마스코프의 웅장한 화폭에 담아낸 대서사시가 펼쳐진 그 황홀한 현장들을 지금 막 지나가고 있다. 시베리아의 대초원을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처연한 울음으로 표현된 연인들의 그 애절한 사랑은 마냥 ‘잠자는 미녀’ 시베리아의 우울한 어제를 속삭여주는 듯하다. 다행히 <실바>는 시베리아의 이러한 고질적 비극에서 탈피해 낙관적 종막을 고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뮤지컬 <실바>의 두 주인공 실바와 에드먼드.


내친김에 ‘망중한’을 더 즐기라는 하늘의 뜻으로 보아 오늘은 일행 중 차은숙 선생의 생일파티를 마련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호텔 4층 로비에 다들 빙 둘러 앉았다. 누구는 축하 케이크를, 누구는 음료수를, 또 누구는 당과류를 장만해 왔다. 나지막한 소리로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축가를 부르고 나서 곧바로 덕담으로 이어진다. 필자에게 청이 들어왔다. 금방 떠오르는 것이 ‘나이론(論)’이다. 인간의 나이에는 생물학적 나이와 사회학적 나이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무 테나 상어의 지느러미, 그리고 달력처럼 한해 한해를 넘기는 숫자를 따지는 ‘생물학적’ 나이다. 작금 이런 계산법의 ‘불합리성’이랍시고 지적하는 역설적인 반어(反語)로 “나이는 숫자가 아니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이에 비해 사회학적 나이는 경륜에 빗대는 ‘사색’과 ‘인내심’을 잣대로 헤아리는 나이이다. 사색과 인내심은 동전의 양면으로서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큼 깊어지며 또 깊어져야 한다. 바꿔 말하면, 사색과 인내심은 속된 말로 ‘나이 값’을 매기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고 인내심에 인내심을 보태면서 나이를 먹어가야 한다. 물론 사회적 나이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노화는 막을 수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노화하는가 하는 것이다. 노화는 육체적 늙음을 말하는데, 그 늙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늙어서 죽는’ 것보다 ‘늙어서 낡아지는’ 것이다. 인간에게 늙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낡음은 결코 그렇지 않다. 늙음과 낡음은 정비(正比)관계도 아니고 동격어는 더더욱 아니다. 늙음이란 성숙이나 기여를 뜻하지만, 낡음은 썩음이나 쓸모없음의 대명사이다. 그래서 늙었다고 해서 낡아서는 안 되며, 늘 새롭고 젊게 살아야 한다. 한 마디로 ‘늙은 젊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흔히 말하는 노익장(老益壯)의 본새이다.


이튿날 정오께 재래시장 참관에 나섰다. 시장은 문어귀부터 장꾼들로 붐빈다. 옛날엔 시장도 국영이었으나 지금은 태반이 사영(私營)이라서 물건 값도 천차만별이다. 시장의 한쪽 구석엔 고려인 아주머니들의 판매대가 눈에 띈다. 주로 김치나 두부, 콩나물, 부침개, 자반 같은 한국식 반찬감을 팔고 있다. 인사하자 너나없이 답례는 하는데, 더러는 러시아 말로 한다. 한국말인 경우도 “어디서 왔슴두”라고 억양 짙은 함경도 사투리다. 아무튼 이역만리에서 혈육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이것저것 구입했더니, “고맙재이오, 잘 가오”라고 인사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촬영을 일절 못하게 한다. 인파 속에 사라질 때까지 손을 저으며 바래주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이어 발길을 옮긴 곳은 시립역사박물관이다. 49루블을 물고 촬영권을 얻었다. 작지만 알찬 박물관이다. 15만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소비에트 해체시기까지의 시베리아 역사발전 과정을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구분해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횡단철도 건설을 비롯해 시베리아 개척사에 눈길이 모아진다. 쟁기와 낫, 맷돌을 비롯한 여러 가지 농기구가 우리의 것과 흡사한 점이 너무나 신기로웠다. 박물관을 나서자마자 지하철을 둘러봤다. 이 도시에는 3개 노선의 지하철이 있다. 러시아 지하철은 어디 가나 지하의 깊은 곳을 운행하므로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길고 속도가 빠르다. 역 벽면 장식은 화랑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하다. 우리네 지하철역과 다른 점은 1회용 표는 입구의 개표기에 집어넣기만 하면 그만이고, 출구에는 개표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출구에서 개표기를 통과하느라 기다리는 번거로운 일은 없게 된다.


정감이 드는 도시 노보시비리스크에서의 마지막 망중한은 오브 강변의 얼음조각공원에서 보냈다. 채색 얼음으로 조각한 각종 모형들, 특히 우람한 뉴욕의 여신상과 이곳 성 니콜라이 예배당은 오브 강의 눈부신 저녁노을을 머금고 신비의 빛을 발하고 있다. 얼음 조각도 조각의 유의미한 한 장르임을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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