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1117172406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40) 이채로운 딸찌 민속촌

정수일 |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11.17 17:24


자작나무 귀틀집과 페치카 ‘도도한 고풍’


딸찌 민속촌의 통나무 귀틀집 망루.


무려 11개의 시간대를 거쳐야 하는 길고 먼 시베리아 초원로만큼 계절에 따라 삶의 리듬, 문화의 리듬, 여행의 리듬이 다르고 바뀌는 길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이 길의 매력이다. 그래서 필자는 올해 여름철(7월)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지난해 겨울철(2월)엔 이르쿠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두 구간으로 나눠 이 길을 답파했다. 지금까지는 여름철 이야기를 썼고, 이제부터는 겨울철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2008년 2월12일 오후 1시50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모스크바행 몽골횡단철도 열차를 타고 일망무제한 설원을 지나 이튿날 오후 3시20분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장장 25시간30분을 달렸다. 휘몰아치는 삭풍(朔風)에 대낮인데도 기온이 영하 20도를 넘어서 얼굴이 아릿했던 매서운 몽골 추위와는 달리 뜻밖에도 그 북쪽에 자리한 이곳 온도는 영하 8도, 눈이 녹고 있다. 왕년에 보기 드문 이상기후라고 한다.


숙소는 바이칼 호반에 있는 리스크비얀카의 바이칼 호텔에 잡았다. 리스크비얀카는 이르쿠츠크 동남쪽으로 앙가라 강을 따라 65㎞ 지점에 있는 자그마한 항구 도시이다. 호숫가 언덕배기에 자리한 호텔 전망대에 서니 눈 덮인 바이칼이 한눈에 안겨온다. 아침 햇살이 저만치 피어날 무렵 바이칼 관광에 나섰다. 얼음 축제가 방금 끝났지만 기기묘묘한 얼음 조각물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하나가 정교한 예술작품이다. 설경도 설경이거니와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을 지치면서 환히 트인 물밑을 들여다보는 것은 문자 그대로 황홀경이다. 8m 이상의 두께로 얼어붙은 물밑에서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노닐며 수초가 나풀거린다. 한겨울 얼음 두께가 10m 이상이면 5t 트럭이 다닌다고 한다. 그때면 환바이칼철도 노선이 얼음 위에 가설되기도 한다. 리스크비얀카는 비릿한 내음이 풍기는 어항이다. 선창가에 붙어있는 어물시장에는 이곳 명물인 오물을 비롯해 각종 어류들이 매장에 즐비하다.



이어 이곳에서 약 4㎞ 지점, 리스크비얀카 어귀에 자리한 바이칼 생태박물관을 찾았다. 1928년에 설립한 이 박물관은 1961년에 소련 과학아카데미 소속 호수학 연구소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층으로 된 작지만 알찬 박물관에는 유구한 바이칼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호수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서식하는 각종 어류와 동식물에 관한 기록과 유물, 도표와 모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고 있다. 1층은 수족관이고 2층은 전시장이다. 바이칼에는 7개 과(科) 50여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투명한 물고기 갈라만카나 민물 새우 에피슈라, 철갑상어(길이 1.8m에 무게 120㎏), 바이칼 바다표범인 네르파 같은 특이한 물고기가 살고 있어 어류학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네르파는 지구상 민물에 사는 유일한 바다표범이다. 바다에 사는 표범이 어떻게 민물에 살게 되었는지는 생태학자들 사이에도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더러는 북해와 바이칼을 잇는 비밀동굴을 통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그런 동굴을 본 사람은 없다. 바이칼 주변에 서식하는 2600여종 동식물 가운데서 4분의 3 정도가 이곳만의 희귀종이라고 하니, 바이칼은 명실공히 생태학의 보고이다. 그래서 매해 3만여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각종 동식물의 박제품은 그토록 생생할 수가 없다. 박제기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명록에 ‘바이칼이여, 영원하라!’라는 짧은 글 한 마디를 남기고 박물관을 나섰다.


다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여기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유명한 딸찌 민속촌이다. 이름부터가 딸찌 ‘민속촌’이니 ‘마을’이니 ‘건축박물관’이니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건축-인류학박물관 딸찌’이다. 명칭에서 읽을 수 있다시피, 이곳은 건축물을 통해 전통적 삶의 양식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야외 전시장이다. 폐쇄된 실내에서가 아니라 우리네 용인 민속촌처럼 탁 트인 바깥 공간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교육장이다. 1969년 바이칼 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수몰지역의 건물들을 그대로 옮겨다가 관광명소로 꾸린 지혜의 산물이다. 무려 67만㎡나 되는 호숫가 넓은 대지에 40여종의 건축기념물과 8000여점의 전통문화재를 한데 모아놓고 있다. 전시물들을 통해 17세기부터 이곳에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과 부리야트인이나 카자크인 같은 원주민들이 누렸던 생활모습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는 역사의 생동한 현장이기도 하다.


딸찌 민속촌의 전통적 통나무 귀 틀집 아즈바.


그래서 하나하나 깐깐히 살펴봤다. 입구의 우거진 자작나무부터가 눈길을 끈다. 물론 시베리아 땅 어디에서나 지천에 깔려있는 것이 자작나무이지만 여기 것은 관광지라서 그런지 한결 달라 보인다. 하얀 껍질을 두르고 미끈하게 자란 가지마다엔 흰 눈꽃이 송송이 피었으니 숲은 온통 백화원(白花園)이다. 보통 20m 이상으로 쭉쭉 뻗어있는 자작나무의 껍질은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데, 겉면은 흰빛이고 안쪽은 밝은 갈색이니 천혜의 미술소재가 아닐 수 없다. 불에 잘 타면서도 습기에 강해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과 시베리아에 주로 분포되어 있지만, 한국과 일본 홋카이도에도 자생한다. 특히 그 신비성으로 인해 우리의 전통문화와 끈끈한 연을 맺고 있다.


제주도 민가의 나무 대문처럼 몇 대의 통나무를 가로댄 빗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즈바’라고 부르는 전통적 목조 가옥이다. 뾰족한 지붕과 다양한 모양새와 아기자기한 문양을 갖춘 문과 창문, 그 외경부터가 이채롭다. 몇 채는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져가고 있지만 그 고풍만은 여전히 도도하다. 러시아 목조문화의 상징물이다. 소나무와 전나무, 물푸레나무, 자작나무와 같은 침엽수로 지은 통나무 귀틀집이다. 나무집은 나무의 보온력과 통기성으로 말미암아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이런 집은 나무에 못을 박지 않고 홈을 파 잇는 방법으로 짓는다. 빗물에 젖어 못을 박은 언저리가 쉽게 썩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내리는 눈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한다. 창문은 한기 때문에 되도록 작게 내고, 유리가 아직 없던 시절이라서 송진을 먹인 아마포로 막는다. 하나하나에 옛사람들의 슬기가 깃들어 있다.


이즈바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원룸 형태가 연상된다. 크게는 ‘페치카’라고 하는 벽난로가 있는 주방, 식탁과 그 위에 이콘(종교 같은 관념적 대상을 형상화한 미술품)을 걸어두는 ‘아름다운 구석’, 그리고 침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페치카이다. 페치카는 음식을 만들고 방안을 덥히는 실용적인 쓰임새만이 아니다. 집안이 화평하면 “페치카가 잘 놓여 있다”고 말하며, ‘페치카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라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로 집안의 상징물이자 필수불가결의 시설물이다. 페치카 뒤에는 집 귀신이 살고 있어 잠자리에 들 때는 귀신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새집에 이사할 때면 으레 이 귀신에게 선참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이즈바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문턱은 특별히 높게 한다. 이유는 악마나 역병 같은 부정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벽사진경(피邪進慶)은 인간의 공통심리인가보다.


딸찌 민속촌에서 만든 각종 수공예품.


몇 집 방안에 걸려 있는 빛바랜 사진을 쳐다보니 이곳은 원래가 가부장적 대가족제였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어로 ‘가족’을 뜻하는 ‘세미야’는 ‘씨앗’이란 ‘세먀’와 어원을 같이 하고 있다. 이를테면 농경과 유착된 가족이란 말은 씨앗과 같이 많이 퍼지고 자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3대가 함께 사는 것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러시아 농민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러시아의 가부장적 대가족제도하에 지탱되고 있는 가정생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64개 장의 <도모스트로이>가 16세기 이반 4세에 의해 반포된 바 있는데, 그 내용이 유교적 가정생활 지침과 많이 닮아서 흥미롭다. “가장의 교훈이 없으면 집안사람들이 여러 죄를 범하게 된다. …자식을 사랑하면 할수록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일례가 그것이다. 이네들에게도 고부갈등은 골칫거리어서 자주 작품의 주제로 등장하는가 하면, 축제 때는 화목을 위해 며느리가 시어머니나 시누이를 초청하는 풍습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가재도구나 장식품, 수공예품, 그리고 등자를 비롯한 마구와 마구간, 각종 농기구와 사냥기구가 유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인골을 올려놓는 풍장(風葬) 풍습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어느 요새에 쓰인 대문짝도 옮겨놓았으며, 1679년에 지은 카잔스키야라고 하는 작은 예배당은 지금도 예배당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시의 목공예나 수예, 도자기공예를 재현하거나 실제 제작해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눈에 띈다. 이러한 수공예품들이 골목골목에 차려놓는 매대에 가득 쌓여있다. 그 가운데 남다른 인기를 끄는 것은 러시아의 상징적 기념물인 마트로시카이다. 어머니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마테르’(mater)에서 기원한 이 여성 인형은 원래 시베리아에서 여신을 금상으로 만들어 그 속에 똑같은 여신들을 차곡차곡 집어넣던 민간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은 인형은 보통 대여섯개, 큰 것은 15개까지도 들어간다. 가장 큰 바깥 인형은 어머니를 상징하며 그 속의 인형들은 계승될 다음 세대들로서 모계적 다산성을 의미한다. 러시아에서 어머니는 대지이고, 대지는 곧 어머니이다. 매대에서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네트파’라고 하는 피리를 기념품으로 샀다. 흙으로 빚은 것인데, 등과 배에 하나씩 난 구멍이 공명을 일으켜 소리를 내는 깜찍한 전통 악기이다.


러시아의 전통적 목욕인 바냐에서 사용하는 물통과 바가지.


두 시간 남짓 이채로운 딸찌 민속촌을 둘러보고 이르쿠츠크로 돌아았다. 한두 군데 더 돌아보고 나서 해질 무렵에 여기서 36㎞ 떨어진 자임간으로 향했다. 울창한 수림 속에 통나무집이 띄엄띄엄 널려있다. 러시아의 전통목욕인 바냐로 이름난 삼림휴양지이다. 시간당 160루불(한화로 약 4800원)을 물고 3~4명을 수용하는 바냐 욕장에 들어갔다. 먼저 가볍게 샤워를 한 뒤 증기실로 들어간다. 증기실에는 바싹 마른 자작나무 장작으로 두세 시간 시뻘겋게 달군 돌들이 채워져 있는 난로통이 있다. 난로통에 나무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면 순식간에 뜨거운 증기가 살갗을 파고들어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그러면 몸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적당한 온도와 습기를 유지하기 위해선 물을 조금씩 계속 난로통에 끼얹는다. 온몸에 땀이 흥건할 때 자작나무 가지로 몸을 때리곤 바깥에 뛰어나가 눈이나 얼음 속에서 한참 뒹굴다가 다시 돌아와서 증기 쐬기를 반복한다. 러시아인들이 겨울에 즐기는 일종의 놀이이자 체력단련 방법이라고도 한다. 바냐는 단순한 증기목욕이나 습식사우나를 넘어서 사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왕왕 주술(呪術)이나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성스러운 교회 공간과 대립되는 ‘부정한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무튼 한탕 바냐를 하고 나니 쌓여오던 노독이 일시에 말끔히 가셔진 기분이 든다.


남을 아는 데는 오늘보다 어제가,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남의 유적을 찾아다니고 남의 습속에 젖어본다. 이것이 오늘 일과의 맺음말이다. 바냐가 달린 식당에서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정을 넘긴 새벽 2시12분, 역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한 30여시간의 장도에 올랐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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