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0922173147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33) 극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09.22 17:31
유럽과 태평양 잇는 항구 도시
시베리아 출발점에 서다
‘독수리 바위’에서 바라본 블라디보스토크 전경.
초양(草洋, 풀 바다)에서 진주를 건져내는 우리 행각은 계속된다. 그 터를 대흥안령에서 몽골로 옮겼다가 이제 다시 시베리아로 옮기려고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건져내겠는지 기대 반, 걱정 반 속에 2009년 7월1일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대한항공(KE) 981기편에 몸을 실었다. 11시30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시속 966㎞의 속도에 고도 약 1만m를 유지하면서 곧바로 군사분계선과 평행선을 긋는다. 30여분 동안 직행하다가 북동쪽으로 꺾지 못하고 강릉 쪽으로 동선을 잡는다. 여기서부터는 고도를 1000m 더 높이면서 저만치 동해의 공해 상공을 날다가 그제야 기수를 북향으로 튼다. 제 땅 상공을 피해야 하는 이 서글픔을 저 동해의 창파도 씻어내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꼭 두 시간이 걸려서 구름이 자욱하고 물기가 번뜩이는 아르촘 공항에 착륙했다. 기내에서 검역관이 오기를 20여분이나 기다렸는데도 입국장의 혼잡을 피한답시고 승객들을 40명씩 나눠 내리게 하는 바람에 비행기에서 내리는 데만도 한 시간 이상 걸렸다. 20평 남짓한 입국장은 또 입국장대로 북새통이다. 입국 수속에 또 한 시간 걸렸다. 승객의 대부분은 현지 러시아인이다. 그들은 별 군소리 없이 ‘관성의 법칙’에 순응한다. 적어도 겉으론. 기온은 15도, 비가 촉촉이 내린다. 현지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왕년에 없던 일로 지난 6월 내내 장맛비가 내렸으며, 겨우내 무르팍까지 쌓이던 눈도 5~6년 전부터는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상기후의 징조로서 재난일 수도 있다고 동토인들은 불안해한다고 한다.
우리의 시베리아 초원로 답사는 이렇게 이변 속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시베리아는 그리 낯선 땅은 아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알아본 땅 같지도 않다. 정작 이 땅의 동쪽 끝에서 저 멀리 1만여㎞나 뻗어간, 실로 까마득한 서쪽 끝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첫발을 떼자니 그 실체부터가 궁금해 온다. 라틴어 계통에서 부르는 ‘시베리아’는 러시아어 ‘시비르’에서 유래된 것인데, 타타르어로 ‘잠자는 땅’이란 뜻이다. ‘시비르’란 이름은 16세기 타타르인들이 서시베리아에 세운 칸국의 수도 이름에서 따온 것이나, 후일 러시아인들의 동진과 더불어 우랄산맥 동쪽 전 지역에 대한 범칭으로 확대되었다. 그 지역적 범위는 우랄산맥 동쪽 비탈에서 태평양 연안의 분수계까지를 포함하는데, 동서 너비는 7000㎞, 남북 길이는 3500㎞, 면적은 약 1300만㎢로서 러시아 연방의 75%, 아시아의 25%나 차지한다.
지형적으로는 우랄산맥과 예니세이 강 사이의 해발 200m 이하의 시베리아 저지대, 예니세이 강과 바이칼 산지대 사이의 해발 500~700m의 중앙시베리아 고원지대, 고생대의 습곡(褶曲)운동에 의해 조성된 알타이산맥에서 자바이칼산맥에 이르는 남시베리아 산간지대, 중생대에 조성된 동시베리아 산간지대 등으로 구분한다. 기후는 심한 대륙성 기후로서 영구동토지대(툰드라)가 많으며 영하 70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지대도 있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연평균 기온은 영도 이하다. 남부에 동서로 초원지대(스텝)가 형성되고, 그 북쪽에 자작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우거진 타이가 지대가 펼쳐져 있다. 우리가 타고 갈 시베리아 황단철도는 스텝과 타이가가 지그재그로 얽혀있는 지역을 숨바꼭질하듯 헤집고 지나간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광대한 처녀지를 갈무리하고 있는 시베리아는 세계 굴지의 보물단지이다. 그 속에서 수만년 전 현생인류인 몽골로이드와 그 후예인 고아시아인들이 이곳을 요람으로 삼고 삶을 개척해 왔다. 이곳에 나타난 첫 국가는 기원 전후 바이칼 호까지 영역을 넓혔던 흉노이며, 그 뒤를 이은 유연(柔然)이나 선비(鮮卑) 같은 북방계 민족들도 시베리아 남부나 동남부 일원에서 나름의 역사를 엮어왔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이르러 몽골 제국의 킵차크 칸국(1243~1480년)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잠자던 땅’ 시베리아는 마침내 그 면모를 세계에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면모를 드러내자마자 야심찬 러시아의 ‘동진정책’이란 격랑에 휩쓸린다. 몽골의 압제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모스크바 대공국은 러시아 통일제국의 틀을 갖춰가면서 대외 팽창에 눈을 돌린다. 그 주안점이 바로 시베리아에 대한 ‘동진’이다. 러시아는 킵차크 칸국의 고토에서 일어난 카잔과 아스트라 칸국을 차례로 공멸한 다음 1582년 카자흐의 모험가 예르막을 내세워 시비르 칸국을 평정한다. 예르막은 시비르 지방을 통째로 러시아 황제 이반4세에게 공물로 바친다. 그러자 러시아는 서시베리아의 이르티시 강과 토볼 강의 합류 지점에 동방 진출의 전초기지로 토볼스크 시를 건설한다. 여기를 거점으로 해 러시아의 동방 진출은 본격화된다. 강력한 카자흐 기마군단은 동진을 계속해 반세기도 채 안 된 동안에 극동의 오호츠크 해안까지 도착한다.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대제는 시베리아 경략에 대한 강한 야욕을 품고 오호츠크 해로부터 남하를 시도했으나 흑룡강 방면에서 청나라의 제지에 부딪힌다. 그러자 양국 간에는 동시베리아와 극동을 놓고 물고 물리는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대체로 노후한 청나라가 고배를 마신다.
블라디보스토크 거리 풍경.
이러한 혼탁스러운 역정에서 이제 인종의 순수성이란 옛말로 되고 말았다. 러시아의 동진 물결을 타고 밀려든 슬라브계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벨로시아인이 4000만 인구 가운데서 약 90%를 차지한다. 원주민인 알타이계의 터키인이나 몽골인, 퉁구스인, 고아시아계 인종은 오히려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터전을 잃고 변방에 쫓겨가 주로 수렵이나 어업에 종사한다. 주민의 대부분은 남부 철도 연변에 몰려 살고 있으며, 북부는 갈수록 인구밀도가 희박하다. 하루 종일 가도 인적 하나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개척되고 변모된 시베리아,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황단철도로 대표되는 초원 실크로드란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동진에 의해 우랄산맥 동쪽 기슭으로부터 남러시아 초원지대를 지나 부분적으로 북방 침엽수림 지대를 가로질러 흑룡강 일대까지 이어지는 길이 바로 시베리아 초원로이다. 이 길의 서단은 몽골 초원에서 알타이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로 이어지는 전통적 초원로 구간이나 동단은 새로 개척된 초원 ‘모피로’이다. 동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모피를 수입해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시베리아는 천혜의 보고이지만, 한때 종신 유형지가 되었을 정도로 황막하고 고달프며 동떨어진 이상야릇한 신기루의 땅으로 비쳐졌다. 게다가 굴절된 프리즘을 통해 흘겨보다보니 왜곡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껍데기를 벗겨버리면 시베리아는 진정 인간의 성찰과 깨달음을 촉발한 마그마로, 지혜와 문명을 함양한 도량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러시아 문호 체홉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장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고, 어려운 환경에 적응해 ‘책임 있는 과업을 수행’하는 민중의 공적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무저항과 현실 안주에 만족하는 정신적 스승 톨스토이와 결별하고 1890년 마차를 타고 장장 다섯 달 동안 시베리아를 거쳐 사할린 섬까지 다녀온다. 다녀와서 초지(初志)를 담아 써낸 것이 <사할린 섬>과 <6호실>이다. 그에 앞서 다른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10년간의 시베리아 유배생활에서 자신이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면서 그 성찰을 <죄와 벌> 같은 대작에 낱낱이 풀어놓는다. 모두는 시베리아 예찬론자들이다.
우리에겐 시베리아가 이런 예찬 말고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먼 옛날 우리네 한 조상의 태가 그곳에 묻혔을 법하며, 그곳에서 일렁이던 문명의 여파가 우리 땅에 밀려왔다. 우리 역사의 자랑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가 자리했던 고지(故址)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우리의 50만 혈육이 그곳에서 삶을 일궈가면서 애국의 정열을 불태웠다. 오늘은 새로운 유대로 우리와 유럽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베리아의 무한한 초양 속에는 주옥 같은 보물이 무궁무진하게 깔려있다. 이제 우리는 시베리아 초원로를 따라 그 채집에 나선다. 그 출발점이 바로 시베리아 극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이다.
극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의 항구.
아르촘 공항에서 56㎞ 떨어진 블라디보스토크는 흔히 연해주라고 부르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 주 주도로서 길이 30㎞, 폭 12㎞의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반도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어로 블라디보스토크는 16세기 러시아의 동방 진출을 의미하는 ‘동방 정복’(블라디=정복, 보스토크=동쪽)이란 조금은 살벌한 느낌이 드는 복합어다. 우리말로는 자리한 주의 이름을 따서 ‘연해주’라고 하나, 중국어로는 ‘하이선웨이(海參외)’라고 한다. 그 뜻에 관해서는 몽골어의 ‘해변가의 작은 어촌’이나, ‘해삼이 많이 나는 저지(외=低地)’란 두 가지 설이 있다. 원·명대까지만 해도 ‘영명성(永明城)’이라고 불려 온 이곳은 17세기 중엽 러시아의 동방 진출 전까지만 해도 청나라 길림부도통(吉林副都統)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러시아와 만청 간에 영토분쟁이 일어나 얼토당토 싸우지만 무능한 만청은 러시아와 불평등한 ‘북경조약’(1860년)을 맺고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우수리강 이동 약 40만㎢에 달하는 넓은 땅을 러시아에 내주고 만다. 이즈음 러시아는 비밀리에 군대를 파견해 초소를 지으면서 항구란 이름을 붙이고 이주를 시작한다. 얼마 안 가선 일약 시로 승격시킨다.
일행은 아무르강 하구에 황소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금각만(金角灣, 조로토이로 만)가에 자리한 아무르 바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바다처럼 펼쳐진 수면에 반사된 황금빛 노을은 문자 그대로 황홀경이다. 백야(白夜) 속에 황홀경은 두세 시간 지속된다. 30여년 전만해도 블라디보스토크는 군항이란 철의 장벽에 가려져 외래인은 허가증을 소지했어도 항구는 물론, 해변가도 얼씬할 수가 없었다. 그저 차를 타고 우중충한 거리 몇 군데만 주마간화(走馬看花)식으로 스쳐 지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문이 활짝 열렸다.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곳곳에 ‘Sale’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다. 큰 탈바꿈이다.
다음날은 발해 유적지 답사로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태평양함대사령부가 자리한 군항 광장이다. 광장 언저리에는 꺼지지 않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탑이 자리하고 있다. 탑 왼편엔 대전에서 공훈을 세운 대형 잠수함 한 대가 실물로 전시되어 있다. 적에게 포위되자 승무원 전원이 자폭으로 불굴의 절개를 과시한 잠수함이다. 그런가 하면 바로 그 앞바다 군항에는 대형 군함들과 나란히 ‘C-56 잠수함박물관’이 바다에 떠있다. 역시 이 대전 때 10척의 적함을 침몰시켰다는 전설적 잠수함을 개조해 전시한 박물관이다. 전쟁의 상처와 더불어 그 전쟁을 이겨낸 사람들의 전공은 영원히 역사를 되살려가는 불멸의 불씨로 남아있게 된다.
이어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214m의 ‘독수리 바위’ 전망대를 찾았다. 68만 인구를 한품에 안고 있는 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동방의 진주’란 명성에 걸맞은 빼어난 경관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곳곳마다 육중한 컨테이너와 촘촘한 기중기로 숲을 이룬 무역항이나 어항, 군항, 그리고 9288㎞를 달려온 철마가 멎는 마지막 역사는 이곳이 러시아가 아시아나 태평양으로 뻗어나가는 극동의 관문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눈 아래에서는 2012년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 장소로 쓰일 루스키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한창 건설 중에 있다. “우리에게는 무엇인가?”라고 물음을 던질 정도로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와 가깝다. 그러기에 어느 곳 하나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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