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100105172732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47) 러시아인들의 성소 정교회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10.01.05 17:27 수정 : 2010.01.05 17:29


기도로 1000년을 견딘 ‘러시아의 혼’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사원 외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우중층한 상공에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황금빛 ‘양파머리형’ 교회 지붕과 그 위에 총림(叢林)을 이룬 수많은 십자가들이다. 러시아어에는 많은 교회를 지칭하는 집합적 표현으로 ‘마흔의 마흔 배’(1600)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교회 수가 많다는 뜻이다. 유럽 러시아나 아시아 러시아를 막론하고 그 어디에 가도 정교회 교회를 만난다. 정교회는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 내린 성소이고 기둥이며 고향이다. 그래서 정교회를 ‘러시아의 혼’이라고 한다.


흔히 러시아에 전파된 그리스도교의 일파를 ‘정교회’(正敎會)라고 하는데, 그 온전한 명칭은 ‘동방정교회’이다. 여기서 ‘정교회’의 ‘정교(orthodox)’는 ‘바른 믿음’을 말하며, ‘동방’은 구원과 생명의 빛, 즉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빛나는 태양이 동방에서 떠올랐음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어딘가 정교만이 참 그리스도 신앙이고, 정교회만이 참 그리스도 교회인 양 비쳐지는데, 이것은 러시아인들이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던 그리스도교를 구원의 자세로 받아들였다고 하는 역사적 배경과 자긍심을 반영한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교는 동방의 문화적 배경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리를 잡아가다가 4세기 초 로마제국의 정치적 질서와 타협하면서부터 라틴 서방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상이한 역사 지리적 및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동방 그리스도교와 서방 그리스도교라는 두 개의 큰 흐름으로 갈라지게 되며, 교리적 논쟁을 비롯해 동·서방 그리스도교 간의 갈등이 노정된다. 마침내 1054년 성 소피아 성당에서의 상호 파문 조치를 계기로 결별하게 된다. 결별 후 서방 그리스도교는 크게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양분되고, 동방 그리스도교는 동방정교회와 동방독립교회, 동방귀일(歸一)교회로 3분된다.


이르쿠츠크의 즈나멘스키 수도원 내부의 이콘과 기도 장면.


러시아는 988년 키예프 루시시대에 정교를 정식 국교로 받아들인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0여년 동안 정교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부침을 거듭해 온다. 정교회는 로마 교회와는 달리 모든 종교 활동을 민족 고유어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음으로써 애당초 독자적 성격을 띠게 된다. 루시시대를 이은 킵차크 칸국 몽골 지배시대에는 정교회 성직자들에게 면세 혜택을 주는 등 관용적인 종교 정책을 베풂으로써 정교는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번성한다. 칸국의 왕자를 비롯한 몽골인들이 정교에 귀의해 러시아화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모스크바 근교의 세르게이 삼위일체 수도원과 최북단 백해의 한 섬에 남아있는 솔로베츠키 수도원 같은 화려한 수도원들은 이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몽골 지배시대와 그 직후는 러시아 종교미술의 전성기이다. 15세기 초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성화 ‘삼위일체’를 비롯해 수난을 미로 승화시킨 슬기가 배어있는 명작들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한편 러시아 정교회는 1448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재가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모스크바 수좌 대주교를 선출함으로써 독립수장 교회로 자리매김된다. 5년 뒤 비잔틴 제국이 망하자 러시아는 유일하게 독자적 정교 국가로서의 위상을 굳힌다.


16세기 모스크바 공국시대에 들어서면 모스크바는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계승자란 의미의 이른바 ‘제3의 로마’로 자임하면서 선민의식마저 고취한다. 그 결과 교회와 수도원은 급증하고, 황제 우위의 황제교황주의와 내세의 구원을 추구하는 구원주의, 그리고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평등주의 등을 근간으로 하는 ‘러시아 혼’이 풍미하게 된다. 방만한 성세에는 폐단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무절제한 교권에 제동을 걸고 교회의 질을 높이기 위해 표트르 대제는 1721년 교회헌장을 반포해 종교개혁을 시도한다. 헌장에 따라 신부들을 육성하는 학교를 설립하고, 신부들은 현대 학문을 수학해야 한다. 특히 전래의 총주교제를 폐지하고 대신 정부 산하에 종무원을 두어 재무를 비롯한 모든 교회업무를 공권력의 감시하에 일원화한다.


근대화를 향한 이러한 종교개혁이 단행되었음에도 역대 차르는 국가 우위의 황제교황주의에 입각해 정권에 대한 교회의 충성이나 순종, 침묵을 일관되게 강요해왔다. 소비에트 연방시대에는 종교 활동의 자유와 제재가 엇갈려왔다. 그러다가 지금의 러시아 연방시대에 이르러서는 교회가 국가에 예속되는 세속권 우위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크렘린의 중요한 확대 국무회의에서 최고 권력자인 옐친이나 푸틴의 좌측 옆자리에 총리가, 우측 옆자리에 엄숙한 제복 차림의 정교회 수장이 앉아 있는 이색적인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2008년 5월 신임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곧바로 총대주교 관저로 알렉세이 2세를 예방하고, 같은 해 11월 대통령의 연방의회에 대한 첫 연차교서 연설 때도 맨 앞줄 중앙에 총대주교가 푸틴 총리 및 상하 양원 의장들과 나란히 자리를 함께 한다. 러시아 연방 내에서의 국가와 교회 간의 관계를 집약적으로 과시하는 한 장면이다. 제아무리 정교(政敎)가 밀착된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정교회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포용은 역대 당국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종교로 호도하고 마약이나 매춘, 이혼 같은 사회적 타락을 종교의 힘으로 막아보려는 데 그 이유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회제도와 역사적 환경 속에서 숱한 기복을 거듭하면서도 러시아 정교회가 1000여년 동안 시들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주요인은 그 민족성과 독자성에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이르쿠츠크의 즈나멘스키 여(女)수도원과 노보시비리스크의 버니아잔스키 교회, 예카테린부르크의 ‘피해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몰리 수도원과 ‘피의 구원성당’,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과 구세주 성당 등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둘러보면서 이 점을 절감했다. 정교회 건물의 외형과 내부, 촛불과 종소리, 십자가와 성호, 전례와 성가, 사제 등 하나하나의 세부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세계를 그대로 읽을 수가 있다.


교회의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노아의 방주처럼 ‘바실리카’라고 부르는 선박 모양과 ‘로톤다’라고 부르는 원형, 그리고 십자가형 등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몇 년 전 터키의 아라랏 산 건너편 ‘방주박물관’에서 화석으로 굳어진 ‘노아의 방주’ 모양(길이 167m)을 본 적이 있다. 실체 여부는 차치하고 인간을 죽음에서 구출해낸 방주의 모양을 따른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노보시비리스크의 보즈니아잔스키 성당 외관.


‘바실리카’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로마 공회당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근행한 까닭에 교회 건축양식의 하나가 되었다. 원형도 가끔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정사각형의 그리스식 십자가 형태이다. 아무래도 러시아 정교는 그리스 정교를 모태로 한 만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제단인데, 제단 가운데서도 감실 역할을 하는 지성소(至誠所)이다. 항상 동쪽을 향하게 되어 있는 이 지성소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인 성물이 보관되어 있다. 성소가 동쪽을 향하는 것은 동쪽으로부터 구원과 생명의 빛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교회 건축의 외양을 살펴보면, 서구 라틴 세계의 로마네스크나 고딕 양식은 별로 찾아볼 수 없고, 주로 비잔틴 건축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양파머리형’ 쿠폴(돔)과 목조 건물이란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인들의 창의성 발현이다. 겨울철 많이 내리는 눈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지붕을 양파형(돔형)으로 만들며, 풍부한 삼림자원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목재인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몰리 수도원 외관.


교회 내부는 출입부와 예배를 드리는 장소인 회중석(會衆席), 그리고 회중석과 지성소 사이의 ‘이콘의 벽’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중석은 가톨릭이나 개신교와는 달리 의자가 없어 신자들은 선 채로 의식을 치른다. 회중석의 양 벽에는 프레스코화와 이콘이 걸려있다. 신자들은 이콘 앞에서 초를 봉헌하고 기도를 드린다. 일명 ‘이코노스타스’라고 하는 ‘이콘의 벽’, 혹은 ‘성격’(聖隔) 앞에는 설교대가 놓여 있다. 이코노스타스는 그리스도와 성모, 사도, 성인들의 일대기를 담은 다양한 이콘들로 장식되어 있어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실로 교회 내부는 성스러운 이콘들의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교회의 황금빛 양파머리 지붕(쿠폴)은 타오르는 대지의 촛불을 상징하며, 촛불은 자신을 정화하고 자신을 불태우는 지고의 희생과 죽은 자를 기억하는 표시이다. 쿠폴은 수에 따라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달라진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둘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셋은 삼위일체를, 넷은 사도들과 복음서를, 일곱은 정교회의 일곱 가지 중요한 의례와 일곱 차례의 공의회를 각각 상징한다. 쿠폴의 황금빛은 천상 세계의 초월적 아름다움을, 푸른색은 천상의 영원성을 의미한다. 쿠폴과 더불어 종소리는 또 하나의 정교회 상징물이다. 일요일이나 축일에 다양한 종소리를 조화롭게 울린다. 타종은 밖에서 치는 우리네 외타식 종과는 달리 종 안의 쇠방울을 울려서 소리 내는 내타식이다. 일찍이 서양 문명사가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러시아 대지의 지평선 위에 울려퍼지는 종소리와 쿠폴의 광휘야말로 ‘러시아적 혼’의 근원적 상징이라고 평한 바 있다.


러시아 정교회 앞을 지나다보면 누구나가 그 특이한 십자가 구조에 의문을 던진다. 횡목과 경사진 나무가 덧붙어 있으니 말이다. 그리스도의 매달린 육신을 표현하는 정교회의 십자가는 끝이 6면이거나 8면이다. 십자가의 맨 윗부분은 그리스도의 머리를, 중간의 긴 횡목은 못 박힌 그리스도의 두 팔을 의미한다. 그리고 경사진 나무는 그리스도와 함께 처형될 때 좌우에 매달린 두 강도의 처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인정해 천국에 승천한 강도는 위로 올라간 오른쪽이고 반대로 부정해 나락에 떨어진 강도는 아래로 처진 왼쪽을 상징한다고 한다. 고대의 신화 구조에서 왕왕 오른쪽은 긍정을, 왼쪽은 부정을 나타내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는가 보다. 정교회는 성호에서도 그 특징이 엿보인다. 이콘 앞에서 인간을 악으로부터 구제해달라는 의미로 성호를 긋는데, 세 손가락을 먼저 이마(성부)에서 배(성자)로 그은 다음 가톨릭과는 반대로 오른편 어깨(성자들)에서 왼편 어깨(성령)의 순으로 긋는다. 원래는 성호에 두 손가락을 사용하다가 12세기부터 삼위일체를 뜻하는 세 손가락 성호로 바뀐다.



정교는 ‘리투르기아’, 즉 전례(예배의식)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이해함으로써 정교회의 통일성과 정체성을 보장하려고 한다. 정교는 다른 종교에서와 같은 성직자의 설교가 없이 단순히 전통적이고 의례적인 전례를 통해 교리의 이해에 접근한다. 그리하여 전승에 바탕한 초기 그리스도교적 요소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회중석에서 신자들이 부르는 성가로 시작되는 전례는 대교회에서는 매일, 일반 성당에서는 일요일과 축일에만 거행된다. 성가는 반주 없는 8음조의 비잔틴식 단선율 노래이다. 정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의 사제는 결혼을 하고 흰 옷을 입는 백승과 독신 수도승으로서 검은색 옷을 입는 흑승으로 대별한다. 일반 교회의 사제는 대부분 백승이다.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 즉 ‘알아야 참이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구구히 정교회의 세부를 살펴본다. 이것은 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타자관(他者觀)의 요청이기도 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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